[농민칼럼] 조사받는 농민들

  • 입력 2020.08.30 18:00
  • 수정 2020.08.30 18:29
  • 기자명 박형대(전남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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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대(전남 장흥)
박형대(전남 장흥)

8월 중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발신지는 정부 기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장흥군사무소다. 공익직불제 신청 농지의 준수사항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필지와 농가를 현장 조사하겠다는 사전 통지이다. 이 문자메시지는 전국의 농민들이 받았다.

농민들이 느닷없이 조사를 받게 됐다. 그것도 조사 받을 내용이 17개 항목이다. 영농일지도 검사할 뿐 아니라 온갖 농업활동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준수하지 않으면 벌칙도 엄격하다. 조사해서 준수 미이행으로 판정되면 기본직불금 총액의 10%에서 최대 100%까지 감액한다.

공익직불금이란 이름으로 농민의 삶을 마구잡이로 들여다보고, 농민의 역사적 공동체 활동을 노역으로 전락시키는 등, 정부 지원금이 농민의 자존심을 훼손하고 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자메시지가 오고 행정집행이 시행되는가? 도저히 촛불혁명 정권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농촌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공익직불제는 시작부터 잘못된 탁상행정이었다. 본래 직불제는 WTO 쌀 개방으로 쌀값이 하락하고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도입됐고, 법률에서도 농업소득지원으로 명시돼 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때 쌀값이 대폭락하면서 직불금 규모가 커지게 되자 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조중동과 경제신문을 중심으로 있었고, 이를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했다. 그러던 것을 문재인정부의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나서서 ‘공익’이라는 모자를 씌워 ‘정책 전용’을 해버렸다.

기본직불금 예산을 증액했지만 쌀값이 떨어지면 일부를 지원해주는 변동직불금을 폐지했다. 그리고 공익이란 이름으로 온갖 의무사항을 갖다 붙인 것이다. 여기에 소농직불금이란 제도를 뒀지만 현장에서는 농지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농업 예산을 마뜩찮게 바라보는 관료들과 유럽식 농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농업전문가들이 책상위에서 한국의 직불제를 엉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탁상행정의 표본이 된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의 조급함이 작용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법률개정을 다급하게 밀어붙이면서 예산을 통과시키고 법을 개정했다. 법을 통과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기본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다보니 더욱 엉터리가 됐다. 심지어 일부 조항은 위헌소지가 있음이 최근에 확인되고 있다.

현장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공익직불제에 대한 민원이 쇄도하고 관련 공무원들은 진땀을 빼고 있다. 현장에서 설명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공무원들도 이 제도가 문제가 있음을 쉽게 인정하고 있는 지경이다.

문제는 이렇게 현실에 맞지도 않고, 농민의 자존심을 뭉개는 정책이 집행되고 있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농민 길들이기를 강화할 요량이다.

정부는 지금이야 17개 의무조항을 다 적용할 수 없다고 한 발 빼고 있지만 앞으로 엄격히 따지기 시작하면 농민들은 항상 ‘조사받는 농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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