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저수지의 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입력 2020.11.15 18:00
  • 기자명 권혁주(충남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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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충남 부여)
권혁주(충남 부여)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니 농사일 말고도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그건 농민들의 무감각과 무력감의 일상화이다. 최근 환경부가 수자원관리법을 개정하고 통합 물관리 계획이란 것을 마련해 수세부활, 용수사용 허가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덧 농업·농민·농촌의 처지가 마치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에서 뚜껑이 닫힌 채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살아있는 개구리 신세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부터 저수지의 물이 말라가고 있다.

그동안 언제부터 물이 새고 있었는지, 물은 어떤 이유로 말라가고 있었는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수지 바닥에 쥐구멍이라도 났을지, 아니면 싱크홀이라도 생긴 건지 알 길이 없다.

저수지는 상대적으로 비가 덜 오면 자연발생적으로 마르기도 할 테고, 개울에서 내려오는 물이 적어도 물이 부족해지게 마련이다. 그동안 저수지의 물을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다보니 해결방안을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구는 확인해볼 길 없는 저수지 바닥에 콘크리트라도 발라서 물을 가두자 소리칠 것이고, 물이 부족하면 아껴 쓰면 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생태환경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누구의 말이 정답에 가까운지는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는 시간만큼 마치 공기와도 같았던 저수지 물은 계속 말라간다.

농촌에서의 저수지는 농민들의 주 생활공간인 읍·면지역이다. 칠순이 돼도 동네에서 잔치 벌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고령층이 넘쳐나고, 읍·면사무소에 출생 신고하러 오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농가소득 급감으로 농사지어 먹고 살기가 더욱 어렵게 된 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람 수가 없어지는 만큼 활력이 없어진 것 또한 분명하다. 행정에서 주도하는 회의나 행사 모임에는 늘 같은 사람들이 돌려막기하듯 참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할진데 내놓은 대책들에서 전혀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음이 절망스럽다. 21세기를 넘나드는 스마트팜 첨단농업과 6차산업, 그리고 귀농·귀촌을 비롯한 마을 만들기 같은 것들이 대세 아닌 대세가 됐지만 대안이 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것들은 주로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것들인데 경험상 돈 낭비, 시간 낭비, 자원 낭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농촌에 발딛고 있는 농민조직 내에서 저수지는 읍·면단위의 현장 지회조직이다. 모든 농민단체에서 한결같이 하는 말이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다. 현장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고 늙어가고 있으며, 어쩌다 있는 젊은이들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기보다는 개인적 삶과 활동에 치중하다보니 단체마다 발전적인 전망이나 미래를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 뿐이다. 농촌에서 작은 단위의 목적의식적인 모임은 계속 줄어들고 있고 의욕은 줄었으며 남 탓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더 큰 문제다. 읍·면지역에서 사람을 재구성하고 조직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하는 데 사활적인 요소가 돼버렸다.

노는 물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노는 물이 달라지게 하려면 놀기에 적당한 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이 유입되는 물길을 정비하고 수초 같은 장애요인도 제거해야 하며, 인위적으로 물을 채울 수도 있겠다. 생태계를 유지·복원할 수 있도록 각종 생물들도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그 역할을 해낼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누구나 주문처럼 읊어대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는 길이다. 차근차근 저수지의 물을 다시 채울 채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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