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이 전주혁신도시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이전과 관련해 일부농민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이 정조대왕의 근대적 농업구상의 발원지인 수원에 터를 잡고 농업근대화의 기수로 50년 넘게 한국농업을 상징하고, 앞으로도 한국농업의 힘과 위상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뜻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의 이전이 근대화의 청산이라는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변화라면 이전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균형발전이라는 틀에서 진행되었다. 아쉽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하나 놓친게 있다. 그것은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농촌진흥청 이전의 당위성으로 확보하지 못한 점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
매실을 딴다. 작은 것을 한 알씩 따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만도 하다. 한 시간을 따도 20kg 한 상자 채우기가 어렵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상자들이 채워져 간다. 저것이 몸에 좋다니 사람들이 불티나게 가져갈 것이고 그로인해 농사지은 맛이 나는 게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매실이 넘쳐난단다. 해마다 그나마 몇 줌씩 팔아주던 소비자 쪽에서 가져 오지 말라고 한다. 가격이 너무 싸서 시장에서 샀노라 한다. 검색을 해보니 말도 안되는 가격에 경매되고 있다. “매실 10kg짜리 5상자 경매가격이 만원! 농가수취가격 300원!” 에라 이럴바엔 인심이나 쓰자. 여기저기 나눠 주고도 100kg이 넘게 남는다. 그냥 다 효소 담그기로 한다. 효소 만들어 놓으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키울 때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마다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두신 매실고를 먹였었다. 그래서 요즘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매실고나 매실청을 만들어 기숙사 생활하는 딸아이에게 한 병씩 보낸다. 곧 여름철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습도와 기온이 높아 식재료나 음식들이 쉽게 상하고 눈으로 확인되지 않아 잘못 먹은 음식으로 인해 배탈이 나서 복통이나 설사에 시달리게 된다. 장마가 끝나면 대기의 온도는 더욱 올라가고 몸의 내부에서는 열이 발생하면서 찬 음료나 빙과류를 찾게 되어 장마철과는 또 다른 배탈에 시달리게 된다. 매실은 장마철이든 불볕더위든 여름에 꽤나 유용한 과실이다.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을 한방에서는 매자(梅子)라 하는데 보통은 덜 익은 청색의 열매(靑梅
그래도 고등학교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학도호국단에 편성되었는데, 첫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멀지 않은 무렵에 학도호국단의 이름으로 공고문이 하나 붙었다. 우연히 보게 된 공고문이 선택의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공고문의 내용은 방학을 맞이하여 학도호국단에서 농촌계몽대를 조직하여 향토 계몽운동에 나서는데, 거기에 함께 할 학생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계몽 활동의 내용은 국문강습단을 조직하여 문맹퇴치운동을 하며, 국내외의 정세를 파악하여 교육열을 고취시키고, 민주주의 좌담회를 통해 정신계몽운동을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한참을 공고문을 읽고 있던 선택은 가슴이 뛰노는 것을 느꼈다. 학도호국단에서 제식훈련을 하거나 목총을 들고 총검술 따위만 배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이가 잘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식습관과 함께 당분이 많고 접착성이 강한 사탕, 쵸콜릿, 비스켓, 청량음료 등과 같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오늘은 칫솔질을 잘해도 충치에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하루에 3번, 식후 3분 이내에, 칫솔질은 3분동안’ 이라는 ‘3·3·3법’이라든지, ‘칫솔질은 위아래로 구석구석’이라든지 하는 말들은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그러나 위의 문구들을 생각하며 아무리 정성들여 이를 닦아도 충치를 일으키는 치면세균막(프라그)을 제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치아와 치아의 사잇면과 어금니 씹는 면의 좁고 깊게 패인 곳 등은 아무리 칫솔질을 열심히 해도 잘 닦을
이월 말에 선택은 서울로 올라와 한규 방에 보따리를 풀었다. 옷 몇 가지와 책이 전부인 단출한 살림이었다.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맞이한 첫날 밤, 한규는 무엇이 좋은지 자꾸 히죽거리며 웃었다. “나도 말이야, 축구 선수가 되는 건데 잘못 생각했어. 내가 다닌 중학교에 축구부가 있었는데 진즉에 거길 들어가서 공을 찼어야 됐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해서 선택은 멀뚱하게 한규를 바라보았다. “소식 못 들었어? 내일 우리나라 축구 대표단이 일본으로 가잖아. 이번에 아주 일본 놈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말걸. 이승만 대통령도 그랬대. 일본 놈들한테 지면 아주 현해탄에 빠져죽을 각오를 하라고 말이야. 이번에 이기면 그 뭐냐, 월드컵이라는 델 나간다고 하더만.” 선택으로서는 일본으로 축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의 몇 안 되는 장수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 선생이 장수를 하게 된 비결을 꼽는다면 그건 단연 직접 농사를 짓고 자신의 채마밭에서 수확한 제철채소를 밥상에 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선생이 문집에 남긴 기록을 보면 여름채소 중 아름답다고 표현한 오이를 비롯해 수십 가지의 텃밭채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선생에 힘입어 둘째 아들이 농가월령가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농가월령가 오월령에는 ‘오월 오일 단옷날 물색(物色)이 생신(生新)하다. 오이밭에 첫물 따니 이슬에 젖었으며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볕에 눈부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직접 오이를 키워보면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단오를 전후로 첫물 오이를 따
시인이며 영화감독인 유하의 첫 시집 제목이 ‘바람이 불면 압구정으로 간다’였다. 물론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자본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속내를 고발하는 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인터뷰에서 짐짓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고 바람이 불면 배가 떨어지니 배를 주우러 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으로 기억 한다. 그랬다,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다. 강남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배밭이 압구정동에는 꽉 들어차 배꽃이 만발했다. 압구정의 배밭이 기록에 남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릴 때 들은 기억으로는 일본인들이 재배했던 것을 해방 후 지역 농민들이 이어서 가꾸고 확대 한 것으로 안다. 가을이 되면 배를 따느라고 당시에도 일손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대부분 가을에 소비를 하고 묵이배
교정치료와 관련해서 환자와 보호자가 가장 궁금해 하시는 것이 비용과 치료기간입니다. 비용은 치료방법과 장치의 종류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어서, 오늘은 교정치료 기간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일반적으로 교정치료의 기간은 환자의 나이와 성별, 부정교합의 유형, 그리고 교정의사가 사용하는 치료의 방법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성장기에 골격적 원인이 동반된 주걱턱이나 상악전돌증 등을 동반한 아동의 교정치료는 본격적인 치열교정에 앞서 성장조절 치료를 하게 됩니다. 주걱턱인 경우 아래턱을 후방으로, 위턱을 전방으로 견인하는 치료를 합니다. 상악전돌증인 경우는 반대로 위턱의 성장을 억제하고 아래턱의 성장을 유도하는 치료를 하게 됩니다. 대개 1년 내외의 적극적인 치료를 하게 되며, 부정교합의 난이도에 따라 기간이
임플란트 시술에서 난이도가 높은 영역은 심으려고 하는 부분의 뼈가 현저히 양이 적은 경우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이 뼈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상악(윗턱)의 경우 치아뿌리 바로 윗부분에 상악동이라고 하는 빈 공간이 있다. 이는 눈(眼) 아래, 코 옆, 구강 윗부분에 위치하는 공기가 들어있고 점막으로 덮여있는 피라미드형 부비강(副鼻腔)의 하나이다. 소리를 공명하고 온도습도조절기능을 하고 코를 통해 이물질을 배출하고 중요기관이다. 여기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 축농증(상악동염)이다. 흔히들 콧속 즉, 비강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바로 이 공동에 생기는 것이다. 이 상악동은 사람에 따라서 크기가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크기가 크거나 작은 사람이 특별히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하지만 치아가 상실되
하지만 캄캄한 밤에 은은하게 켜진 십자가의 불빛은 커다란 유혹이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밤늦도록 찬송을 부르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떡과 과자를 나누어 주곤 했다. 과자는 모두 영어가 쓰여 있는 미국 과자였고 매끄러운 종이에 싸인 캐러멜이나 통조림이라고 부르는 깡통은 거의 숭배의 대상이었다. 모두 바다 건너 미국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제일로 친다고도 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도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마치 어느 별나라의 명절인 것만 같았다. 선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꼭 한 번 성탄절에 교회를 찾았다가 통조림 깡통을 하나 받았다. 할아버지가 무서워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친구와 둘이 깡통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희한하게도 작은 오징어가 네 마리 들어 있
어릴 때를 기억하자면 집집마다 누에를 키우는 방이 따로 하나씩은 있었다. 파리똥만한 누에의 알이 놓여있는 종이를 면에 가서 받아다 누에를 키우는 방에 놓아두면 거기서 애벌레가 나온다. 그 애벌레를 우리는 누에라고 불렀고 뽕잎을 따다가 누에가 누워있는 곳에 얹어주면 되었는데 4번 잠을 자고 일어난 누에들이 주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뽕잎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에를 키우는 방에서는 소나기 오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그 소리는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였다. 그때는 집집마다 뽕잎을 따오는 것이 큰일이었는지라 어린 나도 이모들을 따라서 뽕밭엘 가곤 했었다. 특히 이맘때는 검게 익은 오디가 흔하여 그걸 따먹는 재미로 더욱 열심히 따라다녔다. 손과 입이 새까맣게 물들었지만 간식거리 하나 제대로 없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