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민들 에너지에 항상 감명받는다”③

일본 들녘서 한일 농민들 쌀 문제 나눠
정부·JA전중 등의 수입쌀 입장은 “궤변”
거세지는 수입쌀 여파 “수입량 줄여야”
고공행진 중 쌀값, 농민 수익과는 별개

  • 입력 2025.06.04 11:07
  • 수정 2025.06.04 17:13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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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ㅣ 일본 도쿄]

지난달 27~28일 8개 농민단체 연합인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농길), 진보당 전종덕 국회의원과 박형대 전남도의원이 일본을 찾았다. WTO 쌀 의무수입 재협상을 위해서는 한일 농민·의회 간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일본 농민단체와 주요 정당에 요청하기 위해서다. 농민 대표로는 정영이 농길 상임대표(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와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이 참여했다. 이번 행보는 1995년 이후 양국에서 지속된 WTO 쌀 의무수입으로 두 나라의 쌀 산업 기반 및 농민 생존권이 위기에 놓였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일본 방문단의 이틀 간 일정을 4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에서 자동차로 약 70km를 달리면 도착하는 지바현 나리타시 들녘은 얼마 전 모내기를 마친 논으로 드넓었다. 이틀간 WTO 쌀 의무수입 재협상 등 쌀 문제에 대한 한일 연대를 요청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농길)과 그 소속 단체인 전국쌀생산자협회가 방문 일정 둘째 날 오후 나리타시 쌀 농가를 찾아갔다.

한국 농민을 대표한 정영이 농길 상임대표(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회장)와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오구라 타케시씨의 논과 자택을 둘러보며, 수입쌀 문제와 생산비 증가, 품종·농법·기후변화 등 양국 쌀 농업 현안과 농민의 어려움 등을 두루 나눴다.

오구라씨는 아내와 둘이 15ha 규모의 벼농사(밥쌀·찹쌀·사케용쌀, 모두 6~7품종)만 짓는 농민이자 농민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 부회장이다. 1989년 노민렌 창립 이전 태동과 준비 단계부터 현재까지 약 40년간 농민운동에 매진해 온 농민운동가이기도 하다.

(오른쪽부터) 오구라 타케시 농민운동전국연합회 부회장. 박일현 통역 담당, 정영이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지난달 28일 일본을 방문한 한국 농민들이 쌀 농가 현장을 찾아 일본 농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른쪽부터) 오구라 타케시 농민운동전국연합회 부회장. 박일현 통역 담당, 정영이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지난달 28일 일본을 방문한 한국 농민들이 쌀 농가 현장을 찾아 일본 농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날 한일 농민 간 대화는 5월 날씨답지 않게 바람이 몹시 몰아치는 오구라 부회장의 논에서 먼저 시작됐다.

한국 쌀값의 2~3배에 이를 만큼 고공행진 중인 일본 쌀값이 일본 농민들의 수익으로도 돌아가느냔 물음에 오구라 부회장은 “절대 아니다”를 거듭했다. “과거에 비해 쌀값이 올랐다곤 할 수 있지만, (농민의 수익에) 비례하는 정도로 오른 건 절대 아니다. 이를테면 농민은 1만엔에 납품하지만 중간에 2만엔, 3만엔이 돼버린다. 이번 정부 비축미도 중·도매상을 거치면서 가격이 계속 올라갔다. 최근 정부가 가격을 약간 내린다곤 했지만, 사실상 농민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시중 가격에 비례해 올라가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오구라 부회장이 설명했다.

방문단은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18년간 외치며 투쟁해 온 한국 농민들의 상황을 전하며, 생산 유지를 위해선 쌀 1kg 가격은 얼마여야 하는지를 물었다.

오구라 부회장은 “몇 년 전까지 한국처럼 1kg에 330엔(약 3300원, 밥 한 공기용 쌀 무게 90g일 때 300원 기준)을 요구했지만, 요새는 모든 게 올라 400엔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다”라며 “오히려 일본에선 농민들이 쌀값을 주장하지 않고 농협 등이 소비자들에게 밥 한 공기 쌀값(50엔)이 싸냐 비싸냐라며 캠페인을 벌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구라 부회장은 “400엔이라고 말한 건 농업의 유지와 농업인의 노동력, 후계농을 지속할 수 있는 것까지 했을 때 기준”이라며 “유통 과정에서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버리지만 그렇다고 농민들이 그 가격을 받는 건 아니니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오구라 타케시 농민운동전국연합회 부회장이 자신의 농기계 창고에서 쌀 도정 및 납품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오구라 타케시 농민운동전국연합회 부회장이 자신의 농기계 창고에서 쌀 도정 및 납품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수입쌀, 일본 땅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영향”

특히 일본의 쌀 자급률이 거의 100%이고 의무도입 쌀도 국내산 밥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전중)의 입장에 대해선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정부와 기관, 현장 농민의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 정부는 쌀 부족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실제론 부족한 상태다. 수입쌀에 대해서도 JA전중 같은 데는 주식이나 쌀값에 영향이 안 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외국산 쌀이 일본 땅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영향이 없을 수 없다. 주식이 아닌 다른 것(사료용 등)으로 활용한대도 쌀값을 비롯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 말은 궤변이다.” 오구라 부회장이 단호히 말했다.

오구라 타케시 농민운동전국연합회 부회장이 제초기계(왼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구라 타케시 농민운동전국연합회 부회장이 제초기계(왼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어 오구라 부회장은 “일본의 쌀 의무수입량 77만톤은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격인 전국 47개의 도·도·부·현을 말함.) 가운데 쌀이 제일 많이 나는 니가타현에서 생산되는 쌀보다 많은 양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미국산”이라며 “그런데 쌀 소비량은 점점 줄어 수입쌀 양도 줄여야 하는데 유지되니 수입쌀이 일본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커지고 있다. 주식으로 쓰지 않는대도 그 여파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양국 농민들은 쌀값과 상관 없이 매년 오르는 생산비, 극심한 고온에 따른 병충해와 쌀 생산량 감소, 양국의 드론 방제 상황과 농지 소유 현황, 무농약 재배 등 농법에 대한 궁금함을 주고받은 뒤 오구라 부회장의 자택으로 이동해 벼 육묘장, 건조기·도정기·포장기 등을 갖춘 그의 농기계 창고 등을 둘러봤다.

특히 오구라 부회장은 이날 방문단과의 대화에서 “일본은 집회 규제가 심해서 농민 집회가 자주 있진 않지만, 지난 3월 전국의 농민 수천명이 도쿄 시내 중심부에 모여 트랙터 시위를 벌였다”라며 “마음 같아선 유럽처럼 하고 싶지만, 일본은 워낙 규제가 심하다. 한국 농민들의 에너지에 항상 감명받는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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