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냐고 묻기에 별일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실은 2024년 12월 말 기사를 읽다 화가 나서 페이스북에 육두문자까지 섞어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부아가 치미는 교수들 분석”이라고 남겼다. 이걸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했던 것이다.
쌀 공급과잉 해소를 통한 쌀값 안정과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올해 8만㏊ 감축을 목표로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추진한다는 내용에 감정이 치솟았다. 정부는 이 감축안을 “전문가와 함께 만든 대안”이라 자랑스레 포장까지 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식량이 무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벼 재배면적을 감축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심사숙고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는 일부 학자들의 책상머리 경제학 논리에 의해 주도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분석은 농촌 현장의 복합성과 식량안보라는 국가적 사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공허한 모델과 수치에 의존하고 있다. 쌀값 안정과 농가소득 향상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 쌀 자급률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리고 우리 농업의 생존 기반을 훼손하는 반농업적 결정을 하고 있다.
불안정한 국제정세, 기후재앙 속에 그나마 자급이 가능한 쌀의 생산 기반을 정부가 앞장서 줄이겠다는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전면적 무시이자 무능의 표출이다. 쌀은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내일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벼 재배면적 감축 명분으로 삼은 ‘농가소득 향상’이다. 쌀 생산을 줄이면 단기적으로 쌀값이 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농가 전체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높이는 길인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기후와 농업 구조로 되어 있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를 던진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벼 생산 조절 정책을 지속해왔고, 그 결과 쌀 생산 기반이 약화됐다. 단기적 쌀값 안정 효과는 있었지만, 최근의 기상이변과 흉작이 겹치자 쌀값은 급등했고, 일본 정부는 시장 개입과 비축미 방출 계획을 연거푸 발표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다.
식량 생산 기반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 쌀농사는 논과 물, 기술과 사람, 마을과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시스템이다. 정부의 무지와 얕은 식견으로 식량생산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책임은 이 정책을 기획하고 지지한 당사자들이 져야 한다.
문제는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은 단순히 비판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농민 없는 농업’을 전제하고, ‘자국 생산기반 없는 식량 체계’를 불러올 수 있다. 일본처럼 쌀값 폭등 불안을 온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정책은 숫자로 설계할 수 있어도, 농민의 생존과 땀, 공동체의 붕괴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 농민은 왜 항상 감축과 희생의 대상으로만 취급되는가?
대체작물 전환 또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공허한 이론이다. 고령농 중심의 구조에서 갑작스런 작목 전환은 작물의 특성, 기후 적응성, 시장 판로, 생산 기술 등 복잡한 문제를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벼 재배면적 감축을 통한 쌀값과 농가소득 안정이라는 주장은 단기적 경제논리에 치우친 접근이며,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국가의 식량주권과 농업 생태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 이것이 농민과 국민, 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상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