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그 감자 꼭 먹어야겠소?

  • 입력 2025.04.20 18:00
  • 수정 2025.04.20 18:11
  • 기자명 한승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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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한승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지난달 하순경 감자를 심었다. 거창 고제에서 수집했다는 토종 하지감자와 순천에서 수집했다는 토종 순천감자, 그리고 몇 년 전 원지장날에 구입한 홍감자를 종자 놓치기가 싫어 몇 년째 계속 심어오고 있다. 올해 봄이 워낙 가물어 싹이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집 식량이라도 건질는지 모르겠다. 기후재난 시대 농사짓기가 점점 더 힘들어짐을 느낀다.

지난 2월 23일 농촌진흥청은 2018년 4월 접수된 미국 심플로트사의 LMO 감자 ‘SPS-Y9’이 작물 재배환경에 미칠 영향을 심사한 결과, 7년 만에 ‘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LMO 감자가 비의도적으로 방출되더라도 국내 작물 재배환경에 위해를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심사 결과를 확정한 것이다. 즉, 수입해도 괜찮다는 판단이다.

LMO는 현대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조합된 유전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생물체를 말한다. 생물체란 유전물질을 전달 또는 복제할 수 있는 생물학적 존재로 식물, 동물 등을 모두 포함한다. 농민단체가 LMO 감자 수입이 국내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것이라 보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진흥청은 앞선 내용의 심사 결과를 확정했다.

그리고 이런 결과보고서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낸 시점은 지난 2월 21일로 확인된다. 하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시행을 앞두고 ‘면제’를 요청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2월 26~28일)하기 직전이었다. 장관 방미를 앞두고 LMO 감자 수입 승인 절차가 급물살을 탄 것이다. 안 그래도 미국은 특히 유전자변형생물체 관련 규제에 대해 ‘한국의 개혁부족으로 글로벌 구제의 조화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며 비판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이번 수입 적합 판정이 ‘방미선물’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지난 2022년 국내외 감자 생산량 급감 및 물류 대란 여파로 국내 햄버거 세트 메뉴에서 감자튀김이 빠지고 감자가 ‘금(金)자’로 불렸던 때가 있었다. 당시 호주 등 일부 지역에서 신선감자를 수입하긴 했지만, 나름의 수입 장벽은 지켜왔다.

하지만 이번 농진청의 수입 적합 판정으로 예상되는 감자 수입량은 약 1700만톤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국 전체 생산량의 약 90%에 이르는 것으로 우리나라 연간 생산량(55만톤)의 31배에 이르는 양이다. 우리나라 감자 생산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대량 수입이 가능해진 미국산 감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이 더해질 것이 뻔하다. 검역 장벽 완화는 조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추진된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문호가 열리면서 더 큰 압박을 받게 된 셈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일각에서는 감자를 필두로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를 앞세워 다른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력도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감자 외에도 현재 수입을 검토 중인 미국산 사과, 배, 복숭아,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 15개 품목을 비롯해 쇠고기 등까지 수입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감자는 쌀, 밀, 옥수수와 함께 4대 식량작물이다. 가공용 감자 수입이 늘어 자급기반이 흔들리면 식량주권은 물론 종자주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은 농민들이 자신의 종자와 전통지식을 유지, 관리, 보호, 육성할 권리를 가진다는 ‘종자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LMO 감자 수입은 감자의 생산면적 감소뿐만 아니라 감자교잡으로 인해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

식량주권은 농민에게 생산할 권리를, 동시에 국민에겐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LMO 감자 수입은 환경 위해성뿐 아니라 식품 안전성도 위협할 수 있다. 식당 등에서 음식 재료로 사용하면 ‘GMO 표기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왜 국민과 농민이 원하지 않는 GMO 감자 수입 승인절차는 발 빠르게 진행하고 국민과 농민이 요구하는 GMO 완전표시제는 시행하지 않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LMO 감자 수입은 국민의 식탁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우리 농업에도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이 걸린 중대사인 만큼 정부는 반드시 국민 다수의 의견을 듣고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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