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덮친 최악 산불, 평생 터전 앗아갔다

‘호미 한 자루’ 남기지 않은 화마에 망연자실 
“임시거처‧긴급생계비‧농기계 등 영농지원 시급”
일부 농민들은 대피 않고 싸워 농사 지켜내기도 

  • 입력 2025.04.01 16:27
  • 수정 2025.04.06 22:06
  • 기자명 김수나·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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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한우준 기자]

 지난달 31일 찾아간 경북 안동시‧의성군 산불 피해 현장에는 사과 농가들의 피해사례가 즐비했다. 저장사과와 함께 통째로 불탄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한 저장고의 모습. 한승호 기자   
지난달 31일 찾아간 경북 안동시‧의성군 산불 피해 현장에는 사과 농가들의 피해사례가 즐비했다. 저장사과와 함께 통째로 불탄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한 저장고의 모습. 한승호 기자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영남권 산불은 이 지역 피해 농민들이 평생 일궈온 삶의 모든 걸 앗아갔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경북 안동시‧의성군 산불 피해 현장은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듯 폐허였다. 평소라면 본격적인 영농철이지만 ‘호미 한 자루’ 남김없이 일가족의 역사가 담긴 생활 터전마저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든 화마로 이 지역 농민의 상황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각종 농기계와 쟁여 두었던 종자‧비료‧농약 등 모든 농자재가 소실됐으며, 지역 특산품인 사과나무와 마늘 등 농작물 피해도 심각했다. 살던 집마저 전소된 상황에서 피해 농가들은 당장 살아남는 데 필요한 생계비와 복구까지 지낼 임시거처, 각종 농자재와 농기계, 기반시설 복구 등을 전부 감당해야하는 상황이다.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돼 안동으로 확산된 불길은 지난달 25일 오후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를 거쳐 인근 신덕리까지 넘어왔고, 이 지역 곳곳을 불구덩이로 만드는 데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때마침 몰아친 강풍이 화염을 품으면서 바람길을 따라 맹렬히 번졌고 마을주민들은 살림살이를 챙길 새도 없이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서른 살에 귀농해 11년째 살던 집에서 아이 낳고 기르며 ‘이제 막 안정적으로 터 잡은’ 안동시 농민 남선호씨(안동시 임하면)는 1년 단위로 세를 내며 살던 신덕리 집이 전소돼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게 됐다. 급하게 인근 불타지 않은 빈집을 3개월 동안 빌렸지만, 그 뒤를 생각하면 캄캄하다. 남씨는 임차인이라 주택 보상 지원에서도 열외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옷가지부터 학용품까지 모든 걸 새로 장만해야 하다 보니 화재 3일 만에 생활비로 400만원을 넘게 썼다.

남씨는 “당장 갈 데도 없이 가장 큰 피해를 봤지만, 세입자라 보상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라며 “아이도 이 집에서 낳았는데… 살림살이야 새로 산다고 해도 아이와의 모든 추억이 다 없어졌다. 안 데리고 오려다가 자꾸 가보고 싶다고 해서 한 번 데려왔는데 울더라. 아직 어려서 잘 지내다가도 뭐 하나 찾을 때면 이젠 없으니까 자꾸 운다. 아빠가 나중에 사줄게 해도 아이 마음은 그게 아니잖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31일 찾은 경북 안동면 남선면 신흥리의 모습. 극심한 피해를 입은 탓에 성한 구조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31일 찾은 경북 안동면 남선면 신흥리의 모습. 극심한 피해를 입은 탓에 성한 구조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승호 기자

통째로 날아간 마을들

인근 안동시 남선면 신흥리는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계곡을 낀 도로 양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지형 탓에 산불 피해가 더 컸다. 27가구가 상주하던 마을은 성한 가구 하나 없이 대부분 불타 집이 있던 흔적만 남거나 벽체 일부만 남은 집이 상당수였다. 몸을 피하느라 미처 거두지 못한 가축들이 불탄 채 사체로 뒹굴고, 화상 입은 개와 고양이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면사무소에서 피해 조사를 나와 마침 집에 들른 농민 권덕산씨(사과밭 1700평‧가옥 전소)는 “가장 시급한 건 임시거처다. 농사철인데 거기(안동체육관 대피소) 계속 있는다고 될 일도 아니겠고, 농기계도 급하고, 종자가 다 타버리고 구할 데도 없으니, 종자랑 물과 전기도 급하다”라고 전했다. 

가구 수가 적은 마을들은 아예 화마에 통째로 삼켜져 복구 불능 수준에 이른 경우도 있다.  이번 영남 산불의 첫 발화 지점인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약 20여km 떨어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일대의 한 마을은 지난달 25일 오후 4시 무렵 채 10분 만에 마을이 전소됐다. 10가구 가운데 9가구가 전소됐고, 집 옆에 딸린 밭과 농작물이 피해를 봤다.

점곡면과 인접한 옥산면 감계리 내 9가구가 살았던 ‘신당골’도 비슷한 신세다. 현장에는 단 한 가구의 벽돌집이 그을린 채 남아있고 대부분의 가옥이 파괴됐는데, 과수농사에 쓰이는 SS(스피드스프레이어, 승용농약방제기)기, 관리기, 경운기, 저온저장고까지 품은 채 통째로 타버린 집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난달 25일 밤 갑자기 날아든 불덩이 세례에 소방당국조차 손을 쓰지 못한 사례다.

연로한 부모와 동생이 사과농사를 지으며 살던 집이 전소된 추영규씨는 “동네 저기서 어디선가 날아온 걸로 뜬금없이 불이 붙었다. 소방차가 아래쪽에 3~4대 대기하고 있었는데 물도 다 뿌리지 못하고 너무 위험해 철수했다”라며 “다 연로한 분들 뿐인데 이 동네는 이제 새로 집을 지어 살 사람도 없지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찾은 경북 안동면 남선면 신흥리의 한 농기계 창고에 철제 뼈대만 남은 경운기가 놓여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31일 찾은 경북 안동면 남선면 신흥리의 한 농기계 창고에 철제 뼈대만 남은 경운기가 놓여있다. 한승호 기자

목숨 걸고 농사기반 지키기도

소방당국이 방어 우선순위가 높은 인명과 문화재의 사수에 집중하면서 많은 농민들이 대피를 최대한 미루고 스스로 과원과 축사를 방어하는 위험을 무릅썼다. 두려움 속에서도 고군분투한 농민들은 생계기반과 생명을 지켜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어렵사리 회상했다.

김상준 의성군농민회장(의성군 옥산면)은 “소방서는 민가 지켜야 하니 뭐 어떻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고, 자기 밭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과수농가들은 SS기가 있기에 나도 그 많은 불을 혼자 끄다가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라며 “주변에도 갑자기 불이 날아왔지만 밭은 지켜낸 경우들이 있다”라며 회상했다. 그는 “다만 젊은 친구들이 급하게 불부터 끄려다가 농기계를 건사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마음이 아프다”라며 “내 기계가 살아있다고 농사를 짓는 것도 미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집마다 크고 작게 한우를 키우는 농가들이 꽤 있지만, 축사나 주변에 비축해 노출된 사료가 타버릴지언정 가축 피해는 적었던 점 역시 지역축협과 개별 농가들이 필사적으로 소를 지킨 덕이 컸다. 공식 집계 상 이 지역 한우농가의 피해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의성축협이 자체적으로 조합원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우의 폐사는 현재까지 15두 정도다.

이종녀 점곡면부녀회장은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한우 농가들은 웬만하면 자기들이 물을 뿌리며 지켜내고 있었고, 우리 집도 대피하라고 해도 안 나가고 지켰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숨을 못 쉴 정도로 두려웠다”라며 “대피했더라면 집과 농기계, 소 아마 다 잃었을 것이다. 우리가 대피하며 소를 풀어준다고 해도 그 불속에서 짐승들이 어딜 갈까. 끔찍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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