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농민들에게 또 빚내라는 산불 피해 지원 대책

채무장기유예·시도차원 특례보증 단행 필요

  • 입력 2025.04.24 19:19
  • 수정 2025.04.24 19:25
  • 기자명 김수나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정부가 지난 2일 ‘산불 피해지역 농업인 지원방안’을 내놨지만, “전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라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지원 규모가 매우 미미한 데다 가장 중요한 농기계 구매·생활안정·농가경영을 위한 각종 자금은 결국 융자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서다.

농민 대부분이 빚내서 농업 기반을 이뤄왔던 터라 산불 이전에도 부채 상환 압박에 쫓기며 살았는데, 이젠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기존 빚에 또다시 빚을 얹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주거지와 생산기반을 모조리 잃어 빚을 얻어도 어떻게 갚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이에 ‘파산’까지 생각하는 피해 농민들의 상황과 ‘기대할 것조차 없는’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들어봤다.

산불 발생 한 달 만인 지난 22일 찾아간 경북 안동시와 의성군 피해지역들은 거의 산불 직후 그대로였다. 중장비를 동원한 철거와 임시주택 터다지기, 농경지 정리와 피해 과수 제거 등이 극히 일부 진행됐을 뿐이다. 지난 15일 피해조사가 끝났고 피해 규모도 확정됐지만 현재까지 행정안전부에서 국비를 교부하지 않아 재난지원금도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각종 융자 지원책에 기댈 수도 없다. 개인 한도에 따라 대출이 어렵거나 일부 금액에 그치고, 기존 융자금도 막대해서 선뜻 신청할 수 없어서다.

재난으로 주택이 전파되면 소유자는 2000만~3600만원까지 주거비와 최대 1억3600만원까지 융자가 지원되지만, 주거전용면적에 따라 지원 가능 금액이 다르다. 세입자는 월세와 보증금 규모에 따라 최대 600만원을 지원받지만, 각각의 경우 최대치로 받는다 해도 재난 이전의 주택으로 복구할 순 없다.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불탄 사과 창고 구조물이 철거된 뒤 불탄 사과만 남은 모습. 복구가 시급한 농민들은 관련 지원에 대한 안내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하루 60만~70만원에 이르는 굴삭기 비용을 부담해 가며 화재 피해를 수습하고 있다.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불탄 사과 창고 구조물이 철거된 뒤 불탄 사과만 남은 모습. 복구가 시급한 농민들은 관련 지원에 대한 안내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하루 60만~70만원에 이르는 굴삭기 비용을 부담해 가며 화재 피해를 수습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과원 피해는 물론 창고와 집까지 잃은 농민 최기철씨(경북 의성군)가 대표 사례다. 최씨는 후계농업자금과 농가주택개량사업 융자로 농지와 집을 마련했고, 지난해부터 매년 1700만원, 올해부터는 이에 더해 3000만원씩 5000만원 상당을 7년 동안 갚아나가야 할 상황에서 산불 피해를 봤다. 화재로 담보 물건이었던 집과 창고마저 사라져 채권 보존을 위한 전액 일시 상환 위기에 놓였다. 이를 피하려면 화재 이전과 똑같이 재건해야만 하는데 그러려면 또다시 대규모의 대출을 받아야 하니 출구가 없는 셈이다.

최씨는 “지원금만으론 집을 지을 수 없으니 결국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기존 대출금 상환까지 해서 앞으로 35년 동안 계속 갚아야 한다. 이 문제가 지금 가장 답답하고 막막하다”라며 “더구나 사과밭도 다 타버려서 묘목을 새로 심어야 하는데, 묘목이 자라는 5년 동안은 생산하지 못하니 앞으로의 상환 계획에 완전한 적신호가 떨어졌다”라고 토로했다.

사과·자두 과원이 절반쯤 소실된 문헌준씨(의성군 금성면)도 기존 대출금을 갚던 중이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문씨는 “귀농인창업자금으로 농장을 매입했고, 재작년부터 매년 1700만원씩 갚고 있는데 나무가 절반 넘게 타버렸으니 소득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평일 요양보호사 일까지 하는 문씨는 복구를 위한 긴급 자금 융자를 신청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그마저도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받은 상태다.

정부의 농업인 지원방안 가운데 하나인 생활안정자금 농협 융자지원도 피해 조합원 가구당 최대 3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지만, 농가 신용도에 따라 대출금액이 미미한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융자·재난지원금으론 회생 불가

산불 피해 농민들은 융자지원 일색의 지원방안은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피해복구의 최종 목적은 일상 회복이자 그 전제는 생활·영농기반 회생인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으며 결국 개인이 모든 짐을 떠안는 결과만 낳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최소 10년 이상 채무유예, 군과 시도 차원의 특례보증, 채무 탕감 등 획기적 조치 없인 근본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기철씨는 “현재 최장 2년까지는 채무유예를 해주겠다는데, 저는 최소 5년은 지나야 생산물이 나오고 그래야 상환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다. 채무 탕감까진 아니어도 장기채무유예가 돼야 상환할 기반이라도 마련될 것 아닌가”라며 “미미하고 일시적인 재난지원금과 당장의 대출로 해결하라는 대책만으론 얼마 안 가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