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세입자로 살던 집이 전소됐지만 사실상 지원이 없어 오갈 데 없게 된 농민 남선호씨(경북 안동) 사례도 정부 지원책이 전혀 실효성 없음을 드러낸다. 재해로 거주 불능이 된 세입자는 보증금과 6개월치 월세 가운데 큰 금액(600만원 한도) 기준으로 지원하는데, 이것만으론 집을 구할 수도 없다.
남씨는 구두계약으로 10년간 연세를 내며 살았는데 주거 지원금은 연세의 절반밖에 안 된다. 피해 지원으로 임시주거시설(모듈러주택)이 제공되지만, 이마저도 1년 뒤엔 나가야 하고 따로 마련된 부지에 집단 설치돼 불편함도 크다. 고민 끝에 남씨는 살던 마을을 떠나 인근 시내에 집을 얻기로 했지만,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재 얼마가 나올지도 알 수 없다. 농지와도 멀어져 농사에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남씨가 가장 분통이 터지는 건 세입자에 대한 실질 지원책이 전혀 없는 제도의 공백이다. 남씨는 이렇게 말했다.
“몇백만 원씩 들여 내 집처럼 수리해 가며 살았는데, 증명할 방법이 없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어떻게 가꾸며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계약서상 금액만 인정된다고 한다. 소유자는 그래도 살 집은 있지 않나. 결국 실제 피해는 세입자인 우리가 다 봤는데, 사실상 아무 지원도 없어 화만 난다. 집 없는 게 죄다. 차라리 내 집이 탔으면 보상이라도 요구하지 않겠나. 앞으로는 세입자·소유자 가리지 말고 실질 피해에 따라 균등하게 보상하면 좋겠다.”
아울러 생활비·영농자금 등 모든 걸 현재로선 빚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남씨는 매년 6월 수박 출하를 앞두고 연말부터 모아두곤 하는 영농자금마저 긴급 생활비로 써버려 자금 압박이 심각하다. 그러나 정부가 선심 쓰듯 내놓은 생활안정자금 대출은 받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3000만원을 대출 받으면 일단 숨통은 트이겠지만 1년 뒤엔 갚아야 하니 엄청나게 힘들어진다”라며 “일단 아버지에게 빌렸다. 갚아드려야 하지만 그래도 은행보단 마음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언론과 지자체 홈페이지에 도배되듯 하는 성금 소식도 ‘조속한 영농 재개와 일상 회복’이란 정부 공언도 피해 현장에선 무용지물인 셈이다.
자부담금, 당장 어떻게 마련하나
농민들에 따르면 정부의 농기계 무상 임대는 공급 물량이 딸려 ‘새 발의 피’에 그치는 실정이다. 아울러 의성군이 진행 중인 농기계 구입 보조(자부담 30%, 재해복구비 포함 보조 70%) 사업도 한 달 새 몇 번이나 내용이 뒤바뀌어 혼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농기계는 보조금이 있어도 워낙 고가(SS기의 경우 3000만원을 훌쩍 넘는다)이고 재난 상황에 자부담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농가가 많은데, 보조사업 기간마저 오는 6월로 끝나버린다. 그 안에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업에 참여할 수도 없다.
이번 산불에 따른 경북도 농작물 피해 규모는 2003ha(축구장 2860여개, 국가재난안전관리시스템 최종 신고 기준)로 이 가운데 92.4%(1851ha)가 과수 피해에 집중됐다. 개화기 과수 농가에 필수적인 농기계들이 시급하지만, 사실상 임대도 구입도 쉽지 않은 셈이다.
농작물 생육에 맞춰 농기계도 일시에 써야 하지만 임대 농기계 수가 턱없이 적다 보니 농가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농민 이상근씨(경북 안동시 임하면)는 “SS기는 과수 농가에겐 숟가락과 같다. 수정기라 아침·저녁으로 약을 치는데 우리 마을 50여 가구가 같이 쓰기엔 임대물량이 부족할뿐더러 가지러 오가기도 어렵다. 구매 보조사업이 빨리 진행돼야 하지만 실상 자부담 비용(약 1000만원)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라고 전했다.
최영철 의성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의성군의 농기계 보조사업은 획기적이지만, 6월 이후 후속 조치가 없다”라며 “시행 과정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5000만원 한도에서 모든 기종을 지원한다고 했다가 11종으로 한정했고, 자부담 30%만 내면 70%는 의성군 지불보증으로 추후 농기계업체에 지급한다는 것도 발표 일주일 만에 취소했다가 번복했다. 또 6월 이후엔 입찰로 사업을 지속한다고 했다가 결국 사업 자체를 6월까지만 한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곧 장마철, 산사태 대비 시급
산불 피해 복구도 중요하지만, 이번 산불로 산림 훼손이 대규모로 발생한 만큼 다가올 장마철 폭우로 인한 산사태 대비책도 시급하다는 게 현장 농민들의 지적이다.
최영철 사무국장은 “폭우로 인한 산사태는 예측 가능한 재해다. 이번 산불로 산림 70%가 소실돼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산림의 기능이 사라졌고, 여긴 대부분 돌산이다. 산사태라는 2차 피해를 피할 수 없다”라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후속 대책이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산불에 취약한 지역, 특히 산골 마을엔 현재 산불 방제시설이 전무한 상태인 만큼 가구별 스프링클러, 소화전, 물웅덩이 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도 필수다.
한편 경북 안동·의성 피해지역 주민들은 속속 면 단위 주민자치 기구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 결성에 나서고 있다. 실질적 복구 대책을 논의하고 정부·지자체에 관련 내용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