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멍든 농심, 재난지원 감감무소식에 더 애타…

특별재난지역 즉각 선포 거듭 촉구했지만 여전히 조사 중
시설 복구는커녕 철거도 막막한데, 지자체 대응도 미온적

  • 입력 2024.12.13 08:25
  • 수정 2024.12.13 10:10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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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달 26~28일 내린 역대급 폭설로 농가 피해가 속출한 지 보름 가까이 지났지만, 피해 농가 대부분이 복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애만 태우고 있다. 일부 산간 지역을 제외하면 눈은 녹았지만 무너져 내린 시설하우스와 축사, 창고 등은 거의 피해 발생 당시 그대로다.

폭설 여파로 지자체별 피해 확인 절차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애초 8일까지였던 피해 신고·접수 기간은 13일까지 연장됐고,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상을 결정하기 위한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중앙합동 피해조사도 지난 9일에야 시작됐다. 이에 따라 피해 발생 초기부터 즉각적인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했던 현장의 요구에 당국이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아울러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총력을 다해 피해 현장을 확인하고 피해 규모를 확정한다 해도, 행정 절차 특성상 최소한 수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중앙정부만 바라보지 말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10일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송산리에서 만난 농민 최종순씨는 “포도 하우스는 (파이프와 포도나무 등이) 다 연결돼 있어서 사방에 기술자들이 붙어서 절단·해체해야지 굴착기만으론 들어내지 못한다”라며 “인건비도 일반보다 비싸서 엄청난데 100만원 지원으로 무얼 할 수 있겠나. 시가 다 뜯어가든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안성시(시장 김보라)가 자체 예산으로 예비비(3억원)를 편성해 신청 농가당 최대 100만원까지 중장비 비용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지만, 피해가 극심한 상황이라 현장의 원성을 피해 갈 수 없는 분위기다. 안성시는 지난달 70cm라는 전국 최고의 적설심을 기록한 지역이자, 안성시농민회(회장 이관호)와 가톨릭농민회 안성시협의회(회장 최현주) 등이 복구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번 폭설로 최씨 농장에선 총 4200평(포도 연동하우스 2000평, 비가림시설 2200평)이 전파됐다. 특히 청년 후계농인 아들을 위해 융자를 얻어(전액 자부담) 비가림시설을 지난 4~5월 새로 설치했고, 내년 첫 수확을 준비 중이었는데 모든 기대가 폭설로 무너져 내렸다.

“시설을 다시 지으려면 4억원, 묘목값까지 하면 총 6억원 정도 든다. 빚내서 지은 시설인데 또 어떻게 새로 짓나. 지원 하나 없이 청년 후계농 했다가 수확 한번 못하고 빚만 잔뜩 남게 됐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어쩌나. 미칠 노릇이다”라고 최씨는 한탄했다.

폭설로 주저앉은 농민 최종순씨의 비가림 시설(2200평). 
폭설로 주저앉은 농민 최종순씨의 비가림 시설(2200평). 
폭설로 주저앉은 농민 최종순씨 연동하우스 옆 가판장 모습.
폭설로 주저앉은 농민 최종순씨 연동하우스 옆 가판장 모습.

포도 연동하우스 1500여평과 연동 비가림시설 1500평이 전파되는 피해를 본 농민 김정순씨도 “분해서 며칠을 울었다. 작년에 비닐이랑 물 내려가는 통이랑 7000만원을 들여 싹 다 보수했고, 눈 오기 전 내년 전정 작업까지 다 해놨는데…”라며 말끝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두 농민 모두 40여년간 일궈 온 평생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고, 시설을 새로 하면서 농작물재해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 복구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김씨는 “지금 나라에 난리가 나서 농민들 마음 아픈 건 알아주긴 하는 건가. 어떻게 빨리 좀 대책을 세워주길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피해 시설 철거 시급…애끓는 농민들

일단 가장 시급한 건 철거 문제다. 수많은 파이프로 연결된 데다, 포도 시설의 경우 나뭇가지마다 시설 구조물과 연결돼 있어 일일이 해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살릴 나무와 뽑아낼 나무를 구분해야 하므로 중장비를 무조건 투입할 수도 없다. 안성시에서 중장비 비용으로 농가당 최대 100만원을 지원한다고 해도, 별도로 들어가는 인건비와 철거비용 등을 생각하면 농가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지경이다. 더구나 작기를 고려하면 아무리 늦어도 내년 3월 이전까지는 복구돼야 하는데 피해 규모가 상당하고 인력 수급도 어려워 복구 지원을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이날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의 요구다.

김정순씨는 “가장 필요한 건 먼저 (시설하우스를) 뜯어내는 것이다. 뜯어낸 자재를 끌어내서 옮겨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철거와 시설 재건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폭설로 주저앉은 농민 김정순씨 포도 연동하우스(1500여평).
폭설로 주저앉은 농민 김정순씨 포도 연동하우스(1500여평).
폭설로 인해 전체가 그대로 내려 앉아버린 농민 김정순씨 포도 연동비가림 시설(1500평). 
폭설로 인해 전체가 그대로 내려 앉아버린 농민 김정순씨 포도 연동비가림 시설(1500평). 

피해는 시설에 그치지 않는다. 과수 피해도 상당하다. 부러지거나 뽑히는 등 당장 눈에 띄는 피해는 아니지만 무너진 시설에 눌리고 뒤틀리고 꺾인 나무는 살리기 어렵다.

강병철 안성시 농업기술센터 남부농업기술상담소장은 “과수농가의 재해에 따른 손실은 당해 연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수가 손상되면 묘목을 다시 심어야 하고 대목을 심는다 해도 3년 뒤에나 수확할 수 있다”라며 “평생의 농장이 피해를 봤으니 농가들 상심이 엄청 크다. 어떤 농민들은 며칠을 눈물로 지새우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산간 지역인 안성시 금광면은 지난 10일 기준 시설하우스 문을 여닫지 못할 만큼 여전히 눈이 쌓인 상태다. 단동하우스의 무너짐은 연동하우스에 견줘 덜하지만, 그 안에서 자라는 일년생 작물에서도 피해가 생기고 있다. 눈 때문에 시설하우스 문을 여닫지 못해 환기가 안 돼 오이, 딸기 등에서 곰팡이병이나 흰가루병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관호 안성시농민회장은 “재난지역 선포도 이미 늦었고 선포돼도 복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특별재난지역 선포와 별개로 안성시라도 더 서둘러서 복구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질 않으니 농민들 애가 끓는 것밖에 더 있나”라며 “안성시는 그저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는데, 만약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지 않으면 시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말이다. 시라도 나서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라고 질타했다.

지난달 27~28일 안성시 적설량은 42~70cm이고 평균 적설량은 60.53cm(경기도 평균 적설량 26.4cm)다. 시설하우스가 대설·강풍 등 기상재해를 버티는 기준을 규정한 ‘지역별 내재해 설계기준 적설심’(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이는 강원·속초·대관령·강릉 등(10개 지역) 대표적 폭설 지역에서 30년 빈도로 찾아오는 규모(40cm 이상)를 훌쩍 뛰어넘는다. 경기 지역의 내재해 설계기준 적설심은 22~28cm(안성시 26cm)로 이번 폭설이 유례없는 기상현상임이 입증된 셈이다. 지난 9일 기준, 안성시 누적 피해 농가수는 2362농가, 피해금액은 492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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