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최설화 기자]
폭우·폭염에 이어 폭설이라는 또 하나의 기후재난이 농민들에게 들이닥쳤다. 기상 관측 117년 역사상 최악의 ‘11월 폭설’로 농촌 곳곳의 하우스·축사 등 농업시설이 붕괴하거나 파손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26~29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내린 첫눈(다만 강원도 일부 산간지역에선 10월에 첫눈 관측)은 11월 말에 내린 눈으로서는 유례없는 폭설이었다. 지난달 27일 서울의 최심신적설(가장 눈이 많이 쌓인 시점의 두께)은 16.1cm로, 1907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11월에 이보다 많은 눈이 내린 적은 없었다.
전국 곳곳에서 눈폭탄으로 인한 피해가 나타났지만, 그중에서도 서해안에 맞닿은 경기·충청권의 피해가 컸다. 지난 9월까지 기승을 부린 ‘가을 폭염’이 서해 해수면 온도를 평년 대비 약 2℃ 올린 데 따라 대기에 열과 수증기가 대량으로 공급됐고, 이로 인해 경기·충청권에 강설(强雪)이 내릴 대기 조건이 형성됐다.
특히 경기도 농촌 지역은 이번 폭설에 직격타를 당했다. 폭설로 인한 하우스·축사 등의 시설 피해 사례가 곳곳에서 보고됐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회장 김상권, 경기친농연)가 지난달 28일 자체 진행한 폭설 피해 상황 점검에 따르면, 이날 오후까지 광주·김포·용인·이천·평택·화성 등 13개 지역에서 약 70동의 하우스 시설이 무너진 것으로 확인됐다.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철골 프레임이 휘어지면서 하우스 천장이 주저앉아버린 사례가 속출했다.
각지의 구체적 피해 상황을 살펴보면, 우선 용인에선 용인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의 학교급식 집하장이 붕괴했으며, 이날 오후까지 관내 총 29농가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이천에선 농가 보유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천장이 주저앉아 버렸으며, 수원에선 차광막을 쳐놓은 하우스는 사실상 전부 붕괴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김포에선 블루베리 재배 농가들의 피해가 컸는데, 특히 냉장·냉동 시설 차단기가 폭설로 인해 고장나 작물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홍안나 경기친농연 사무처장은 특히 경기도 남부지역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홍 사무처장은 “용인·평택·화성·안성 등지의 연동 하우스 대부분에 피해가 발생했으며, 피해액은 초기 추산만으로도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령 농민이 많은 지역에선 폭설로 도로가 막혀 당장 추가적인 피해 확인도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찾은 평택시 안중읍·현덕면 곳곳에서도 폭설로 천장이 무너져내린 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현덕면에서 고추 등을 재배하는 이계일·이율범씨 부자(父子)의 경우 하우스 4개 동 중 3개 동의 천장이 주저앉았다. 약 20년 전, 7000만원 가량의 비용을 들여 하우스를 설치한 이래 단 한 번도 폭설로 하우스에 하자가 발생한 적도 없으며, 평택에 이 정도의 폭설이 내린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이씨 부자의 설명이다. 이율범씨는 “47년간 평택에서 살아왔지만 이 정도의 폭설은 경험한 적 없었다”고 강조했다.
주저앉은 하우스 천장 위엔 여전히 녹지 않은 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하우스가 무너진 상태론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결국 망가진 하우스를 철거한 뒤 다시 지어야 한다. 이계일씨는 “철거비·복구비 다 합치면 최소 1억원은 들여야 할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일단 경기도와 도내 기초지자체들은 폭설 피해 상황 조사를 전개 중이다. 경기도(지사 김동연)에 따르면 이번 폭설로 인해 파손된 도내 비닐하우스는 220개 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엔 치명적 함정이 있다. 파손된 비닐하우스 220개 동은 ‘농업경영체 등록이 된 농가 보유 비닐하우스’만 갖고 따진 수치라는 점이다.
따라서 농업경영체 등록이 되지 않은 임차농들은 폭설로 하우스·축사 등 시설이 망가져도 피해 집계 대상도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기친농연에 따르면, 평택에선 폭설 피해를 당한 임차농들이 평택시에 피해 신고를 하러 갔지만, “농업경영체 미등록자는 피해 집계 대상이 아니다”라며, 그게 ‘정부 방침’이라며 아예 피해 접수도 안 받고 기껏 방문한 농민들을 돌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홍안나 사무처장은 “현재 경기도와 경기도의회에 폭설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조속히 (폭설 피해 지역들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라고 촉구 중이나, 지금처럼 임차농의 피해는 제대로 집계도 안 한 채 넘어간다면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임차농들은 제대로 보상도 못 받을 판”이라고 한 뒤, 정부를 향해선 “부재지주들은 ‘합법적’으로 땅 취득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면서 정작 농지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해는 농민들이 다 봐야 하는 건가?”라고 성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