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항이 돈 된다고? 아니, 우린 살던 대로 농사짓겠다”

‘충분한 보상’은 ‘헛소리’, 농민으로 살아온 삶은 보상 불가

‘지역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농민에겐 아무 의미 없어’

  • 입력 2023.08.27 18:00
  • 수정 2023.08.28 15:54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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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8년 전 제주 제2공항 건설 추진 발표 한 달 뒤쯤, 원희룡 당시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주민 삶의 터전인 토지와 주택, 영농 등에 지장이 없도록 큰 틀의 보상원칙을 세워나가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농민들은 이를 ‘헛된 약속’이라고 본다. 대대로 농토에 뿌리 박고 살아온 농민에게 땅과 마을은 존재 그 자체다.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다.

농민들은 8년간 싸우며 제2공항 문제가 결국 자본과 개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맹신 때문이란 깨우침을 얻었다. 제2공항으로 가장 위태로운 존재가 농민이지만 같이 싸워온 이들조차 제2공항 문제에서 농민을 열외로 친다는 것도 알아챘다. 국가계획은 ‘지역의 미래’와 ‘경제 활성화’라는 실체 없는 보상을 미끼로 이웃을 갈라지게 하고, 묵묵히 쌓아온 농민들의 삶과 자부심에 계산기를 들이댔다. 제2공항 예정지 마을에서 만난 농민들이 전한 목소리다.

계획대로면 가장 많은 땅이 수용될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농민 송대수(67), 채인규(55)씨, 예정지 북쪽 마을 수산리 농민 오창현씨(48, 제주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예정지 남쪽에 닿은 신산리 농민 고권섭씨(57, 신산리 이장)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지역의 모든 농민을 대표한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들 모두 성산에서 나고 자라 성산의 바람 한 점, 돌 하나까지 제 살처럼 익숙한 이들이다. 네 사람은 8년 동안 지난하게 제2공항과 씨름했고, 이젠 여느 전문가나 행정·정치가들보다 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지니게 됐다.

평생의 터전을 빼앗기게 될 농민의 울분과 더 큰 부를 향한 자본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힌 성산읍. 지난 21일 이들을 찾아가 자본의 욕망을 부추기는 국가의 교묘한 전략이 어떻게 농민의 삶을 흩트리고 있는지 들어봤다.

온평리에서 4,800여평 규모로 ‘참귀한농장’을 운영하며 젊음을 바친 채인규씨는 8년간 반대운동에서 “이미 나올 얘기는 다 나왔고 지면에도 수십 번 더 깔렸지만, 결국엔 깡그리 무시하고 가고 있다”고 허탈해했다. 기본계획(안)상 채인규씨는 농장 전체와 주거용 건물까지 수용될 예정이라 누구보다 절박하다. 그는 제2공항을 비롯해 정부 주도의 개발계획이 지닌 강제성이 개인 삶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에 분노했다.

“집을 새로 지으려던 찰나에 (제2공항 계획이) 딱 떨어지니까 8년째 멈춘 상태다. 교육농장이라 전엔 아이들 교실도 있고 텃밭 등 프로그램도 많이 했는데 모든 것이 멈췄다. 내 평생, 40~50년 이상 대대로 착착 쌓아온 걸 대의(제2공항)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리는 거다. (그는 중간에 “대의라고 보지 않는다. 제2공항은 정당성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고시해도 삽 뜨려면 5년, 10년이 걸릴지 모른다는데 그럼 내 인생은 종착역에 다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옆에 있던 그의 노모는 “공항 말만 들어도 열불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환경부가 2021년 7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까지 거듭 반려했을 땐 그도 제2공항 건설은 어렵겠다고 안도했었다.「환경영향평가법」상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보완 요구는 2차례만 가능하기에 그 같은 판단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자 제2공항의 시계추에 속도가 붙었다. 채씨는 “대통령 공약사항이었고, 주무 장관이 설계자(현 국토부 장관이자 전 제주도지사 원희룡)이니 당선되는 순간 게임 끝났구나 싶었다. 울분은 나지만 변화에 맞춰 가야 될 거다. 안 그럼 내가 죽는다. 투사처럼 항거하다 죽어 가면 너무 끔찍하잖나. 가족들 부양도 해야 하니 가긴 가는데, 어머니처럼 그 얘기만 나오면 속에서 치미는 거다. 그게 유형의 것이 아니어서 그렇지”라고 탄식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의 한 더덕밭에서 농작업에 나선 여성농민들이 지난 22일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더덕을 캐느라 여념이 없다. 한승호 기자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의 한 더덕밭에서 농작업에 나선 여성농민들이 지난 22일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더덕을 캐느라 여념이 없다. 한승호 기자 

조류충돌 위험 규제, 공항 주변도 사실상 농사 어려워

온평리 농민의 생존권 문제는 심각하다. 온평리에서 수용될 면적은 전체 공항 예정부지의 68.3%에 달한다. 5개 리 가운데 가장 많다. 온평리 총 수용 면적에서 농업 용지(전·답·과수원·목장)는 89.3%(임야 제외)에 이른다. 채씨는 “온평리 땅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몇백 농가는 될 거다. 후계농 회원들은 거의 다 여기서 농사짓는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막을 내리는 거다. 대부분 동네 안에 사니 단지 우리처럼 집까지 없어지진 않는다는 것뿐이다”라고 전했다. 제2공항 건설계획 발표 뒤 당시 원희룡 지사는 대토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는 ‘헛소리’라고 일갈했다. 온평리 농지가 약 100만평인데, 제주도에 이 규모의 국유지나 도유지가 어디 있겠냐는 거다. 같은 조건의 땅도 없을뿐더러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데 마치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비판했다.

채씨는 “정부가 개발을 진행할 땐 무엇보다 시간을 충분히 두고 당사자들이 기반을 갖추도록 하면서 이해와 동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깃발 딱 꽂고 ‘너희는 따라라’하는 식의 사업들은 관련법을 개정해서 모두 없애야 한다. 반대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죽기도 하고 못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평생 농민이었던 이들에게 농사 말고 또 무엇이 가능할까. 제2공항이 계획대로 지어진다면 지금 같은 영농은 어렵다. 농민들은 제2공항을 추진하려는 이들이 내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헛된 환상이라고 했다.

송대수씨는 “평생 농사지어온 사람들에겐 의미 없는 말이다. 농민에겐 돈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처럼 계속 농사짓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잘라 말했다. 농민은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농민의 정체성은 다른 일이 아닌 농사라는 강조인 셈이다. 1991년 성산읍농민회 창립에 참여했고, 30년간의 농민운동이 자기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그다운 답변이었다.

태어나 한 번도 주소지를 옮겨본 적 없는 송씨는 아는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는 ‘지역 핵심 인사’다. 그러다 보니 정치, 행정은 물론 운동단체들도 그를 끌어들이려 애쓰는 모양새다. 그럴수록 그는 “나는 온평리를 떠나지 않을 거다. 죽을 때까지 농사짓겠다”라고 자신을 다잡으며, “농민 토박이들을 호구로 잡지 말라”라고 당부했다.

인터뷰에서 당당하고 말주변이 넘치던 그도 “작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평생 살아왔는데, 공항이 들어온다면 견디질 못할 거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약한 모습도 잠시, “돈 많은 외지인들에겐 이곳이 세컨하우스나 낚시터일지 몰라도 우리 농민에겐 평생의 터전이고 나름대로 누려온 문화가 있다. 누구는 우리더러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작은 우물도 사회다. 우물 안에 뱀(공항)이 들어와 버리면 개구리는 다 죽는 게 자연의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제주에 개발 광풍이 몰아친 건 제2공항 발표 이전부터다. 농민들에 따르면 이미 10여년 전부터 중국인 등 외지인이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호텔, 관광시설이 들어서면서 주민에게 일자리 제공을 약속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계약직으로 있던 주민들은 결국 쫓겨났다. 일자리도 땅도 다 잃은 셈이다.

가업을 이어 농민이 된 오창현씨. 하우스 앞에 예쁜 집을 짓고 아내와 함께 ‘재미나게 농민생활을 해보자’는 꿈을 안고 농사지은 지 11년 차다. 그는 자본만능주의와 개발지상주의가 지닌 환상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큰 자본이 들어오면 결국 다 죽는다는 걸 모른다. 일례로 고성리에 아쿠아플라넷(대규모 해양테마파크)이 생길 때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고 했지만 결국 계약직으로 있던 주민들은 지금 다 잘렸다. 모든 개발이 그런 식이다. 동네 사람들만 피해 보고 끝나버린다. 처음엔 뭐 해주겠다며 환상에 젖게 하지만 잠깐이다. 나중엔 법대로 하란 식이다.” 그는 제2공항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8년 전 갑자기 날아든 제2공항 발표, 그는 “듣는 순간 진짜 멍했다. 오보인가, 대체 왜?”라고 물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새 공항은 필요 없다는 판단과 제2공항 건설계획의 숱한 문제들을 마주하며 ‘성격상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아닌 그는 마을 대책위에서 반대 활동에 나섰다.

그는 “공항 생기면 공항 주변이 다 잘 되고, 돈이 될 거란 생각은 잘못됐다. 1970~1980년대 개발론자들의 논리다. 그렇지 않다는 걸 지켜봤잖나. 공항이 생기면 성산읍은 끝이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공항 생기면 자기들도 잘 살거라 기대하는데 환상일 뿐이다. 자본이 들어오면 쫓겨나고 떠나가는 사람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동네에 남는다 해도 지금처럼 농사지을 수도 없다.「공항시설법」과 그 시행규칙에 따라 공항 표점(공항의 지리적 위치를 나타내는 기준지점)에서 3㎞ 이내에는 사과·배·감 과수원(이외의 과수원인 경우, 조류가 접근할 수 없도록 땅에 떨어진 과실을 수거해야 함)과 잔디 재배 등을 규제하기 때문이다.「조류 등 야생동물 충돌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은 공항표점에서 13km 이내를 공항주변으로 규정하고 있어, 규제지역은 더 넓어진다. 게다가 제2공항 예정부지 8㎞ 내 지역들은 철새도래지 벨트로 묶일 만큼 새들의 터전이다.

오씨는 “공항이 생기면 성산읍 농업은 끝난다. 전국 공항 근처엔 농사짓는 데가 별로 없다. 항공기-조류 충돌을 막는 게 안전에서 가장 중요해서다. 새를 잘 유인하는 씨 종류는 경작할 수 없다. 콩, 보리 등 잡곡은 절대 안 된다. 주 작목인 귤은 규제 과수는 아니지만, 규정상 떨어진 건 다 주워야 한다. 귤이 엄청나게 떨어지는데 그걸 일일이 주워가며 어떻게 농사짓나”라고 되물었다. 하우스 시설도 문제다. 오씨는 광주공항 인근인 광주광역시 송정마을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비행기 착륙 시 불어온 ‘뒷바람’으로 하우스 비닐이 자주 찢어져 농사가 매우 힘든 걸 보기도 했다.

지난 22일 성산읍 신산초등학교 앞 인도 난간에 신산리 마을회 명의로 내건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뒤로 초등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2일 성산읍 신산초등학교 앞 인도 난간에 신산리 마을회 명의로 내건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뒤로 초등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대규모 농지 손실, 농지 얻기 어려운 임차농은 어디로?

공항 문제로 분투한 8년, 농민들은 앞날을 알 수 없어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고 품어온 꿈마저 놓아버려야 할 상황이지만 묵묵히 밭을 갈았다. 공부하고 투쟁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제2공항 논의에선 이상하리만치 농민의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고권섭 신산리 이장은 “2015년 11월 발표 뒤 그 누구도 ‘농’ 자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존재하지만 말해지지 않았다. 이 나라에 농민을 국민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제주도 산업에서 농업 비중을 줄여가려는 도정의 기조도 영향이 있다. 제2공항 반대단체들조차도 아쉽지만, 농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오창현씨는 ‘어른들의 현실론’을 예로 든다. “젊은 농민은 거의 다 반대하는데 젊은 농민이 별로 없다. 어르신들은 고생 많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싸워서 되끄냐’라고들 한다. 속은 반대지만 항상 나라에 당한 걸 생각하면 강제 수용하면 끝이라고 보는 거다”라고 전했다. 제주도에선 서비스업 비중이 가장 높지만(2021년 지역내총생산 서비스업 비중 77.1%), 농가인구도 적진 않다. 제주도 총인구(69만8,916명)의 10.7%(7만4,465명, 2022년 기준)다. 하지만 수적 열세와 농업에 대한 낮은 인식은 농민을 배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고권섭 이장은 약자 중 약자인 임차농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공항 반대한다면서도 양도세니 뭐니 하며 마이크 잡는 이들도 있는 게 현실이다. 땅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소농으로 남의 땅 빌려 농사짓는 이들은 어디로 가나. 지금까지 농업이 힘들게 힘들게 왔다. 최근엔 기후변화로 더 힘들다. 거기에 공항으로 농지까지 없어지면 농지 임차 경쟁은 심해진다. 공항 부지에 농지가 약 53만평 들어간다. 축구장 몇 개인가? (국제 규격 축구장으로 약 245개다.) 어마어마한 농지가 사라진다. 쫓겨나는 임차농들은 가진 돈도 없는데 임차료는 더 비싸질 테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배운 게 농사인데 농사로는 살 수 없게 되는 상황인 거다”라고 우려했다.

성산 농민들의 앞날은 어떨까.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이젠 투쟁이 일상이 됐다”는 통달,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한 농민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인류사적 확신, “정권이 바뀐 순간 표변하는 정책 기조를 보며 제2공항 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닌 철저한 자본주의였다”는 통렬한 깨달음, 이날 이어진 마치 고백 같은 농민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성산엔 농민이 있고 농민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거란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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