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한눈에 보기에도 탐스런, 주먹만한 크기의 양파가 밭고랑마다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붉은 망에 담기 위해 전날 밭에서 미리 캐내 줄기를 잘라놓은 양파다. 밭고랑 사이를 일방석에 앉아 밀어가며 양파를 망에 담는 여성농민들의 분주한 손길에 지나온 자리마다 양파가 가득 담긴 12kg짜리 붉은 망이 곳곳에 놓여 있다. 국내 최대의 양파 주산지 전남 무안에서도 이른(조생) 양파가 제일 먼저 나오는 청계면 강정리의 한 들녘에서 지난 6일 양파 수확이 시작됐다.“이것 보소. 양파가 큼직큼직한 게 농사가 잘 됐는디 서울서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산허리가 난도질당하듯 잘려나갔다. 울창한 숲을 이루던 나무는 가차 없이 벌목됐다. 온전한 산의 모습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민둥산처럼 변해버린 경사진 면을 따라 태양광 패널이 속속들이 설치됐다. 태양광 공사가 한창인 곳에선 굴삭기가 터를 다지고 있고 대형트럭이 건설 장비를 쉴 새 없이 나르고 있었다. 태양광 시설 아래 농지와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축사는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온 나라에 태양광발전소 건설 바람이 거세다. 말 그대로 광풍이다. 문재인정부의 한국판뉴딜, 특히 그린뉴딜 선언 이후 신재생에너지 확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과거처럼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인생과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홍천군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대책위) 김진옥 공동위원장의 결기있는 목소리가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체육공원에서 울려 퍼졌다. 트랙터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홍천군민 200여명은 일제히 경적을 누르며 김진옥 위원장의 출정선언에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잠시 주춤했던 한파가 다시 기승을 부렸던 지난 2일 ‘송전탑 결사 저지! 홍천군민 4차 궐기대회 200리 차량대행진 출정식’이 열렸다.한국전력공사(한전)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네댓 개의 당근 줄기를 부여잡고 좌우로 흔들며 쑥, 뭍에서 건너온 베트남 노동자 10여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제주 특유의 검은 밭에서 주황색 당근을 뽑아 올린다. 이에 뒤질세라 여든을 훌쩍 넘긴 여성농민들과 이주여성노동자들이 뽑아 올린 당근에서 흙을 털어내고 줄기를 잘라 한 쪽에 놓는다. 이들이 지난 자리마다 검은 밭에 주황 카펫을 펼친 듯 당근이 일렬로 놓여 있다.지속된 한파가 누그러지며 잠시 영상의 기온을 회복했던 지난 5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들녘에선 당근 수확이 한창이었다.이날 밭 작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수해참사로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마을에서 물이 빠지자 황형철(82, 양정마을 노인회장)씨는 처참하게 망가진 고추를 모두 뽑아낸 뒤 밭부터 다시 다듬었다. 그 자리에 배추와 무를 심어 90여일을 키웠다. 그리고 흔쾌히 같은 처지의, 수해로 고통 겪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써달라며 배추 300포기와 무 300개를 섬진강 수해극복 구례군민대책본부(대책본부)에 내놓았다.소문은 금세 퍼졌다. 김장 나눔에 쓰였으면 한다며 성금이 모였다. 구례군여성농민회와 산책도서관도 한 몫 거들었다. 배추 300포기가 500포기로 늘었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중천에 머물던 해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기울었다. 어둠이 찾아오자 천막농성장을 감싸던 따스한 온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식어버린 공기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발끝부터 공략했다. 금세 찾아온 추위는 무차별적이었다. 발전기를 돌려 농성장 한 쪽에 놓인 온풍기를 켰다.발전기의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엔진소리와 농성장 앞 왕복 6차선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차량 소음이 요란하게 뒤섞였다. 차들이 지날 때마다 거리에 수북이 떨어진 낙엽들이 농성장 앞에서 뒹굴었다. 도심의 매연도 매연이지만 1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54일,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를 버텨냈다. 제8호 ‘바비’, 9호 ‘마이삭’. 10호 ‘하이선’ 등 연달아 닥친 세 번의 태풍 또한 이겨냈다. 쉬이 병들지 않았고 허무하게 쓰러지지 않았다. 농민의 바람처럼 꼿꼿이 벼 이삭을 밀어 올렸고 잘 여물어 고개를 숙였다. 서산으로 기우는 햇볕엔 영락없이 황금들녘으로 빛났다. 수확의 계절, 청명하고 완연한 가을날이었던 지난 6일 이동복(44, 전남 강진군 작천면 갈동리)씨가 본격적인 추수에 나섰다.퇴동마을 안쪽,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계단식 논에서 콤바인을 부지런히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자정이 넘어 작업이 시작됐다. 방수복을 입은 태국 출신 외국인노동자 10여명이 배추밭으로 스며들었다. 밤하늘에 별이 무수했건만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불빛 없이는 한 발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모자마다 끼운 헤드랜턴을 켜자 바로 발아래에 놓인 배추만 겨우 보였다. 멀리서보면 사람 형체는 없이 불빛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도깨비불 같았다.한 여성농민이 잘 자란 배추를 90도로 꺾어 칼로 자르며 나아가자 그 뒤를 외국인노동자들이 뒤따랐다. 겉잎을 한두 장 떼 낸 배추를 10kg 그물망에 차곡차곡 담았다.9월의 첫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콩과 들깨를 심은 하우스로 순식간에 토사가 밀어닥쳤다. 들깨의 자취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고 하우스에 세워둔 40마력짜리 트랙터도 운전석 윗부분만 모습을 드러낸 채 토사에 완전히 파묻혔다. 야산과 이어진 대파밭은 물살에 휩쓸린 토사와 나뭇가지 등으로 쑥대밭이 됐다. 출하를 며칠 남기지 않은 대파였다.지난 2일 충북 제천 지역에 약 300mm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시간당 30~60mm에 달하는 강한 비였다. 폭우는 결국 산사태를 불러왔다. 산곡동 산으실마을 뒷산과 중산간에 위치한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그것은 꼭, 518대의 트럭 위에 세운 전두환의 묘비 같았다. ‘학살원흉 척결 전두환 오월의 적’이 적힌 나무 합판엔 전두환의 얼굴 또는 몸짓 등이 각양각색으로 풍자돼 그려져 있었다. ‘전 재산 29만원 운운에서 골프 치는 전두환까지’ 전국의 작가, 시민 및 청소년 등 총 398명이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 전두환을 신랄하게 그려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들이 518대의 차량을 전국에서 이끌고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내려와 ‘만고역적’ 전두환의 그림 518개를 트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어이~” “넘어가요~!” 못줄잡이의 우렁찬 목소리에 일렬로 줄지어 선 30여명의 농민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인다. 손마다 한 움큼씩 쥔 모에서 3~4가닥을 떼 내 논에 모를 심는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사이 누군가가 행여 어깃장을 부리며 모내기를 지체할라치면 사방에서 훈계조의 지청구가 날라든다. 그러나 훈계조를 늘어놓는 이도, 또 이를 받아내는 이도 모두 땀으로 범벅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지난달 30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내포리 통일쌀 경작지에서 ‘2020 통일쌀 모내기’ 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앞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해가 서산에 기울자 청보리밭에도 그림자가 지기 시작합니다. 해질녘의 부드러운 햇살, 청보리의 초록 물결과 유채꽃의 노란 물결, 광활한 밭 사이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길들이 어우러져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매년 이맘때면 봄나들이 삼아 보리밭 사이를 거니는 이들로 북적였던 청보리밭이 올해는 무척 고요하기만 합니다.고창군 청보리밭 축제추진위원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감염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이달로 잠정 연기했던 축제를 전면 취소했습니다. 갑갑한 시절, 아쉬운 마음 가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