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 … “학살원흉 전두환 응징해야”

전농·민예총, 트럭 518대에 전두환 풍자그림 518개 싣고 거리행진 … 역사왜곡특별법 제정 촉구

  • 입력 2020.07.03 10:57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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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5.18광주민주화운동 제40주년을 기념하고 5.18역사왜곡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전두환전-518개 표정 퍼레이드’가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묘역에서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까지 진행됐다.
지난달 27일 5.18광주민주화운동 제40주년을 기념하고 5.18역사왜곡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전두환전-518개 표정 퍼레이드’가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묘역에서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까지 진행됐다.
전두환 풍자그림을 실은 518대의 트럭이 망월동 묘역에서 5.18민주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전두환 풍자그림을 실은 518대의 트럭이 망월동 묘역에서 5.18민주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농민들이 전두환 풍자그림을 설치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농민들이 전두환 풍자그림을 설치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두환전’ 운영요원들이 농민들에게 물과 주먹밥을 전달하고 있다.
‘전두환전’ 운영요원들이 농민들에게 물과 주먹밥을 전달하고 있다.
5.18민주광장에 도착한 차량 행렬을 시민들이 깃발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5.18민주광장에 도착한 차량 행렬을 시민들이 깃발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오월의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 오월어머니회 회원들 옆으로 무릎을 꿇린 전두환 조형물이 놓여 있다.
‘오월의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 오월어머니회 회원들 옆으로 무릎을 꿇린 전두환 조형물이 놓여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그것은 꼭, 518대의 트럭 위에 세운 전두환의 묘비 같았다. ‘학살원흉 척결 전두환 오월의 적’이 적힌 나무 합판엔 전두환의 얼굴 또는 몸짓 등이 각양각색으로 풍자돼 그려져 있었다. ‘전 재산 29만원 운운에서 골프 치는 전두환까지’ 전국의 작가, 시민 및 청소년 등 총 398명이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 전두환을 신랄하게 그려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들이 518대의 차량을 전국에서 이끌고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내려와 ‘만고역적’ 전두환의 그림 518개를 트럭 적재함에 세웠다.

지난달 27일 5.18광주민주화운동 제40주년을 기념하고 5.18역사왜곡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전두환전-518개 표정 퍼레이드’가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묘역에서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까지 진행됐다. 약 14km를 내달린 518대의 차량을 이끈 선두엔 군복을 입은 채 두 손이 포박당하고 무릎을 꿇은 전두환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박흥식 전농 의장은 ‘전두환전’ 시작을 알리는 문화제에서 “이번 행사는 1980년 광주를 왜곡하는 세력의 상징이자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을 역사에서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를 세워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역사는 전두환을 우리가 내린 정의대로 인식할 것”이라며 “전두환은 학살자, 독재자, 민중의 원흉”이라고 규정했다.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 이청산 이사장도 “518개의 전두환의 풍자적인 표정을 싣고 진군하는 518대의 트럭 행렬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실현하기 힘든 실천하는 예술행위”라며 “5.18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전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40주년이 마지막이다. 기필코 5.18역사왜곡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40년 전 오월 그날, 시민군을 태운 트럭처럼 광주 시가지를 내달린 518대의 차량은 5.18민주광장에서 행진을 마쳤다. 다시는 부당한 권력이 난무하지 않도록 농민들의 트럭은 전두환 그림을 그대로 싣고 전국 각지로 흩어졌고 무릎 꿇린 전두환 조형물은 ‘5.18 최후항쟁지’ 옛 전남도청을 바라본 채 놓여 광장을 찾은 시민들의 뜨거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이날 저녁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선 민예총 주최로 ‘저항의 밤 - 기억하라 맞서라’가 열렸다. 첫 주자로 무대에 오른 오월어머니회 회원 20여명은 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임을 위한 행진곡’과 ‘오월의 노래’를 연달아 불렀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노래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그날 이후 40년이 지났어도 ‘빛고을’ 광주의 오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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