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없으면 배추 농사 못 짓죠!”

국내 최대 고랭지배추 산지, 안반데기서 배추 수확 시작

  • 입력 2020.09.06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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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 고랭지밭에서 배추를 수확하는 농민과 외국인노동자들 모습 뒤로 먼동이 트고 있다. 고랭지배추 수확은 밭 특성상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수작업이 대부분이다.
지난 1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 고랭지밭에서 배추를 수확하는 농민과 외국인노동자들 모습 뒤로 먼동이 트고 있다. 고랭지배추 수확은 밭 특성상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수작업이 대부분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자에 끼운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배추를 그물망에 담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자에 끼운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배추를 그물망에 담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입은 방수복은 배추에 맺힌 이슬로 인해 금세 젖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입은 방수복은 배추에 맺힌 이슬로 인해 금세 젖었다.
진호성 반장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박스에 담긴 배추를 세렉스에 싣고 있다.
진호성 반장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박스에 담긴 배추를 세렉스에 싣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자정이 넘어 작업이 시작됐다. 방수복을 입은 태국 출신 외국인노동자 10여명이 배추밭으로 스며들었다. 밤하늘에 별이 무수했건만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불빛 없이는 한 발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모자마다 끼운 헤드랜턴을 켜자 바로 발아래에 놓인 배추만 겨우 보였다. 멀리서보면 사람 형체는 없이 불빛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도깨비불 같았다.

한 여성농민이 잘 자란 배추를 90도로 꺾어 칼로 자르며 나아가자 그 뒤를 외국인노동자들이 뒤따랐다. 겉잎을 한두 장 떼 낸 배추를 10kg 그물망에 차곡차곡 담았다.

9월의 첫 날, 해발 1,100미터 국내 최대 고랭지배추 산지인 안반데기(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서 배추 수확이 시작됐다. 안반데기 고랭지배추는 서리가 내리기 전, 10월 초 추석 명절을 전후로 한 달 가까이 수확이 진행된다.

이날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작업에 나선 진호성(58) 작업반장은 “오늘만 5톤 트럭으로 4대분의 물량을 수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평소보다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국내 인력은 인건비가 비싸 구하기 어렵고 외국인노동자는 코로나로 인해 입국이 어렵다”며 “일하는 시간을 좀 더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밤샘 작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비탈진 밭에 배추가 든 10kg 망이 줄지어 가지런히 놓였고 외국인노동자들은 밭고랑을 옮겨 가며 배추 수확에 구슬땀을 흘렸다. 밤새 배추에 맺힌 이슬에 방수복은 이미 젖어 있었다. 이윽고 동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먼동이 트자 일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오전 6시 반, 아침식사를 하기 전까지 당일 예정된 물량의 절반 이상을 수확했다.

망에 담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굴삭기가 밭에 길을 내기 시작했다. 비탈진 밭에서 배추를 싣고 옮길 1톤 세렉스(사륜트럭)를 위한 길이었다. 고랭지배추 산지 특성상 5톤 트럭의 접근이 어려워 세렉스를 이용한 상차 작업은 필수다. 이날은 한 식품회사의 김치공장으로도 배추 배송이 예정돼 있어 박스 작업도 같이 이뤄졌다.

배추의 경우, 파종에서 수확까지 약 80~90여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진 반장은 “오늘 배추는 밭으로 옮겨 심은 지 70여일 만에 수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추 농사가 마무리되는 10월 초까지 3개월 정도는 아예 거처를 옮겨 인근에서 지낸다는 진 반장은 배추를 가득 실은 세렉스를 비탈진 밭 사이로 몰며 말했다.

“올핸 긴 장마로 인해 햇빛 본 날이 정말 며칠 안 돼요. 그만큼 관리하기가 배로 힘들었죠. 질척이는 밭에서 풀 뽑으면 배추까지 함께 뽑힐까 싶어 일일이 잘라 줬어요. 그것도 서너 번 씩요. 이 모든 일을 저이들과 같이 했죠. 배추 농사, 저이들 없으면 이제 못 지어요.”

차창 너머 그가 가리키는 방향엔 외국인노동자들이, 햇볕을 등지고 군데군데 서 있었다. 2만평에 달하는 밭에서 밤새 배추를 자르고 담고 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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