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제법 춥습니다. 거의 재난 수준입니다. 남쪽 지역은 어북 따뜻해서 한겨울에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주택설비나 시설들의 배관장치가 영하 5~6도를 견뎌낼 정도로 설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영하 10도를 밑돌게 되니까 축사로 가는 관도 얼고, 지하수를 퍼 올리는 관도 얼고, 상수도도 얼고, 화장실도 얼고, 실내에 있는 세탁기도 얼어서 일상생활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마을 상수도도 수원지 계곡물이 얼어붙어서 일체 물을 먹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몇 년 전, 인근 지자체의 상수도를
새해가 밝았다. 새해부터 강추위가 기승이다. 주변에 물이 고인 곳마다 꽁꽁 얼어붙었다. 이쯤 되면 우리 집 삼형제는 빙판 위로 달려들 듯도 한데, 추위가 워낙 매서운지 아이들도 집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 거실 창에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풍경은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드문드문 보인다. 그마저 없었다면 너무 시려 보일 것만 같은 겨울 농촌마을의 모습이다.예전 시골마을에는 저녁이면 집집마다 피워내는 굴뚝 연기로 저녁때를 알리고, 그 자욱한 불 냄새가 저녁밥상을 기대하게 했다. 정지(경상도 방언으로 부엌을 말함)에는 밥을 짓기 위한
어려서는 꿈을 꾸고 꿈을 일궈가라고 들었다. 학교에 가면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은 아니더라도 다들 한 꿈씩 꾸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독 책읽기를 좋아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해서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첫 번째는 소설가가 되는 거, 두 번째는 가수라고 말했던 것 같다.그러면 아빠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기껏 꾼다는 꿈이 얼마나 허황돼 보이는지 그저 허허 웃고 넘긴 것 같다. 다들 선생님, 판사, 뭐 그런 정도는 돼야 꿈이었는데 앉아서 관찰하고 공상하고 책 읽고 그렇게 혼자 놀았던 그 아이는 이제 50이 넘은 그저 그
힘들다 힘들다 해도 2020년처럼 농민들에게 힘든 한해가 있었을까? 새해를 맞이하며 늘 반복되는 한해 한해를 보낸 듯하지만 여느 때의 힘듦을 넘는 한해로 기억될 듯하다.코로나19로 학교급식에 길이 막혀 마냥 제자리에서 커가는 작물들을 보며 초등입학을 앞둔 아이처럼 개학을 고대했던 날들이 하염없이 길어졌기에 제대로 수확 한 번 못하고 밭에서 사그라졌던 나물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끝나겠지 했던 코로나19는 여전하다.늦은 서리와 우박은 일상화가 됐기에 이제 막 비닐을 뚫어 고개 내민 감자싹이 옴짝 내려앉아도 놀라지도 않게 됐다. 올해도
조용한 들녘에 마을방송 앰프가 수시로 코로나19 상황의 위험성을 알리며 정적을 깹니다. 노동 외의 시간이면 무언가를 소비해야 생활할 수 있는 도시의 삶과는 다르게 자연에 기대어 무언가를 생산하는 생산자의 일상은 코로나든 아니든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사실 동구 밖을 나가지 않고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뭐 그리 나쁜 삶도 아닐 것인데, 소비가 삶을 윤택하게 하고, 경제만이 우리 삶을 승급시킬 수 있다는 신화에 갇혀 모두가 아우성이지요.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염려스럽고, 그만큼 도시 사람들이 더한 고생에 애
해가 짧아진 시골, 코로나19로 어디 갈 일이 많이 줄어든 남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저녁시간이 길어졌다. 모두 나쁠 수는 없다는 것은 이렇게 쓰이는 걸까?며칠 전 저녁시간에 마을 뒤편에 외따로 있는 우리 집 옆 논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땅을 팔고자 한단다. 물려받은 선대의 땅이 공동명의로 돼 있어 차후엔 더 정리하기가 힘들듯해 정리하고자 한다는 얘기였다. 남편은 “산골 논을 얼마에 사겠냐”며 “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애초에 못박아버렸다.통화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차에 농사지을 땅을 찾는 친구가 생각나서 남편을
벌써 12월이 돼버렸다. 언제 봐도 시간은 늘 나를 앞서 나간다.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또 한 해의 끝이 돼버린 달력을 보노라니 결산할 생각이 든다. 나의 한 해의 대차대조표는 어떻게 될까? 인생이 보람차려면 받는 것 보다 내주는 것이 더 많아야 하거늘, 나는 늘 받는 것이 더 많아 늘 송구할 따름이다. 농사도 결산을 해보면 남는 것도 없으면서 1년 한 해 바쁘게, 정신없이 흙하고 뒹군 그런 해가 또 와 버렸다.인생 뭐 별다를 것도 없지만 그저 안락한 집에 따스한 온기를 같이할 사람들이 있으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싶다. 나의 입에
어디 계시나요? 수해참사 이후 대통령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높으신 양반들이 이곳을 찾아 왔습니다. 지역의 절반이 물에 잠기다 보니 어느 부처라도 해당 사항이 없는 곳이 아마 없었겠지요. 하지만 유독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님이십니다.긴긴 장마에 한여름의 수해참사 연이은 태풍까지 2020년 농촌현장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저 같은 조무래기 농민이 어찌 그 깊은 속을 알겠는가 싶지만 농식품부가 적극행정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것도 모르고 우리 동네에 안 온 것만 가지고 아쉬워하는 속 좁
전라도와 경상도 할 것 없이 도계를 넘어 전국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결이 있었으니 그것은 농사일에 있어서 남녀임금의 차등 지급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화와 같아서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룩한 질서인 듯합니다. 혹 누군가가 문제의식을 느끼더라도 그것을 깡그리 눌러주는, 넘을 수 없는 벽같은 한마디가 있었으니 바로 ‘남자는 힘든 일을 하니까 돈을 더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없잖아 그런 측면도 있었습지요. 돌을 쌓거나 아주 무거운 짐을 들거나 하는 일들 말입니다.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힘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은
11월이 되고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가을걷이를 해야 함으로 몸과 마음은 바빠진다. 벼와 사과를 제외하고는 얼마 되지 않는 농사지만 봄에 심어둔 작물들이 제법 일거리가 된다.밭에 풀 반 들깨 반. 지난 7월 많은 비에 토사와 함께 쓸려온 도둑가시풀이 왕성한 번식을 해 그나마 들깨 고랑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들깨를 반나절 찌고 나니 온몸에 도둑가시(풀씨)가 붙어서 마치 큰 도깨비 방망이가 된 기분이다. 도둑가시가 별거냐 꿋꿋이 들깨를 찌어 모아서 갑바 위에 쌓아두고 두드리면 떨어지는 들깨소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고 들깨향은 코끝에서
문화라는 것들은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기어와 나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가는가 보다. 어떻게 보면 문화와 습관은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밤은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건만 모 가수의 노래 때문인지 뭔가 특별한 날인 것 같다. 같은 노래도 몇 번 들어줘야 하고 뭐 그렇다. 이번 10월의 마지막 밤은 맛있는 고구마를 먹으며 지냈다. 밭에서 막 캐온 고구마를 따뜻하게 쪄서 따뜻한 방에서 먹고 노래나 듣고 있으니 뭐 세상에 별로 부러운 것 없이 느껴졌다.항상 농사일로 몸 한 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는
꿈을 꿨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아 사람들의 조롱담긴 웃음에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 아무리 소리쳐도 목구멍 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꿈을 꿨을까? 등골이 서늘하다.20만원에 팝니다. 잠깐 썼다 지웠다 하는 과정에 누군가가 보게 됐고 이는 곧바로 사회 이슈가 됐다. 언론은 사라진 모성이 어쩌고, 인권이 사라진 세상 등 생모에 대한 소나기 같은 비난으로 시끌시끌하다.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얼마나 힘들었으면….왜 20만원이었을까? 막막함과 답답함이라는 단어가 한꺼번에 겹쳐온다. 여성 혼자서 아이를 낳고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