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당국에 보내는 연말결산서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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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조용한 들녘에 마을방송 앰프가 수시로 코로나19 상황의 위험성을 알리며 정적을 깹니다. 노동 외의 시간이면 무언가를 소비해야 생활할 수 있는 도시의 삶과는 다르게 자연에 기대어 무언가를 생산하는 생산자의 일상은 코로나든 아니든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실 동구 밖을 나가지 않고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뭐 그리 나쁜 삶도 아닐 것인데, 소비가 삶을 윤택하게 하고, 경제만이 우리 삶을 승급시킬 수 있다는 신화에 갇혀 모두가 아우성이지요.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염려스럽고, 그만큼 도시 사람들이 더한 고생에 애가 타면서도 여러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는 이즈음입니다. 

코로나19가 도시를 마비시키고 있다면, 기후위기는 농촌을 초토화하고 농민들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봄마다 겪는 냉해와 장마, 연이은 태풍과 폭우 등의 기후위기가 올해는 한꺼번에 닥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이 입고 있습니다.

쌀 수확량이 급감하여 농가소득이 줄어들고, 수해를 입은 지역은 복구가 아득하기만 하고, 이래저래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 살림이 위축돼도 어디서도 그것을 문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올해 쌀 생산량이 6.4% 감소했다는 통계를 믿는 농민은 없습니다. 

코로나 대책이 농업농촌에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농촌현장에서는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소득이 확 줄어든 업종을 중심으로 한 대책이었으니 군말들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 논리대로라면, 기후위기로 인한 소득감소분에 대해서도 뭔가 언급이 있었어야 할 법한데 이 문제에는 적막강산입니다. 진정 농정당국은 농업농촌의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참말이지 농민의 삶에 관한 이슈만큼은 주류의 담론에 끼어들 수 없는 어떤 벽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당장의 소득을 어찌 못하면 이런 시기에 농촌 기본소득에 대해 불쑥 고민을 던져도 적절성을 묻지 않으련만 역시나 세상 조용합니다. 그래서 내년 농업예산 비중이 축소돼도 또 순둥이들 마냥 그러려니 했나 봅니다.

이러니 일각에서 농민들 소득이 줄면 농정당국 관계자들의 임금도 줄여야 한다고 뜬금없는 농정 임금연동제 말을 하나 봅니다. 그러면 좀 움직이려나? 생각해보니 뜬금이 좀 있겠다 싶습니다. 코로나는 예방백신과 치료제 개발이라는 극약처방이 있지만, 이 기후위기, 농업위기는 그런 해법도 없는데 말입니다. 

한편, 농업계의 변방문제로 치부되는 농촌 성평등 문제에 관해서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던 한 해라는 것이 고무적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해오던 오랜 관행을 깨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농촌 성평등강사단을 위촉한 것입니다. 또 광역단위에서도 여성농업정책 담당자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뭐 농업계 뉴스 축에도 못 끼는 하찮은 일들에 불과하겠지만, 사업시작의 의미로 치자면 농식품부에 표창을 줄만 한 일입니다.

농촌 여성의 삶을 외면하고서 ‘저하기 나름이라는 식’으로 흘러온 지난 세월이 가져온 농촌의 불평등에 문제의식이 생겼다는 것이겠지요. 비대면 시대에 대중교육을 열 수도 없지만, 그래서 당장의 성과는 눈에도 아니 들어오겠지만, 변화의 시작으로도 가점을 줍니다. 

새해에도 농업의 어려움은 계속되겠지만, 밥을 먹는 모든 사람이 손을 잡는 모습이라면, 같은 삶에도 위안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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