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땅, 땅, 땅

  • 입력 2020.12.13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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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해가 짧아진 시골, 코로나19로 어디 갈 일이 많이 줄어든 남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저녁시간이 길어졌다. 모두 나쁠 수는 없다는 것은 이렇게 쓰이는 걸까?

며칠 전 저녁시간에 마을 뒤편에 외따로 있는 우리 집 옆 논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땅을 팔고자 한단다. 물려받은 선대의 땅이 공동명의로 돼 있어 차후엔 더 정리하기가 힘들듯해 정리하고자 한다는 얘기였다. 남편은 “산골 논을 얼마에 사겠냐”며 “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애초에 못박아버렸다.

통화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차에 농사지을 땅을 찾는 친구가 생각나서 남편을 다그쳤다. “친구가 땅 나오면 얘기하라고 했는데”하며 그 정도 가격이면 좋은 거 아니냐고 설레발을 쳤다. 남편은 “농사지을 땅으로 진입로도 좋지 않고 실제로 쓰는 땅은 그보다 적다”고 좋지 않다고 딱 자른다.

그러나 쉽게 땅이 나오지 않는 마을이라 그래도 가격이 괜찮은 것 같다고 주인에게 살 사람이 있다고 다리를 놓으라고 했다. 마지못해 남편은 전화를 걸었고 주인은 애초에 남편이 부른 가격보다 1만원을 더 붙여서 얘기했다.

며칠 만에 판다는 이, 산다는 이가 만나기로 했고 남편에게 동석을 요구하여 남편은 본의가 아니게 매파로 끼게 됐다. 그 결과가 나름 궁금해서 만남이 끝나자마자 물어보니, 웬걸 땅주인이 애초에 논한 가격의 두 배를 불렀다는 것이다.

농사짓고자 사는 사람에게는 큰 금액일 수밖에 없어서 거래는 무산됐다. 허탈해 할 친구에게 전화해서 할 말 없는 위로를 전한 후 생각이 복잡해져만 갔다. 땅은 많은 것 같은데 여전히 농사지을 땅을 쉽게 구하기는 힘들다.

어찌된 일인지 농민수당, 직불금 시행이 다가오자 농지를 임대줬던 일부 지주들은 농지를 회수하기 시작했고, 농사가 힘든 분들조차 농지원부를 본인들 명의로 돌려야겠다는 요구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지주와 소작인은 여전히 갑을관계이고 마을이라는 공동체에서는 공공연하지만 은밀하게 이러한 요구는 쉽게 수용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농지를 임차해 사용하는 우리처지에서는 나름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고, 남편은 살아내야겠다는 듯, 내년부터 다시 산골 논도 농사지어야겠다고 말한다. 농산물 가치가 오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농사지을 면적이 줄어드는 것은 위험한 상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글프고 무엇인가 기대와 다른 현실은 무엇일까? 옹기종기 밥그릇 걱정은 여전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 것일까? 뒤에 들은 얘기지만 친구가 사고자 하는 농지는 전용이 가능해 집을 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인이 농지로써의 가치가 아닌 전용할 수 있는 땅으로써의 가치로 판매가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땅 주인으로서는 어쩌면 요즘시대에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땅에서 자라는 농산물의 가치는 없고 오직 땅의 가치만 높게 책정되고, 여차하면 농사지을 땅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땅은 돈이 주인이지, 사람이 일궈야 할 생명의 근원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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