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시대의 역설

  • 입력 2025.11.02 18:00
  • 수정 2025.11.02 18:27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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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처럼 장마와 폭우가 길게 이어진 해도 드문 것 같다. 나락은 논에서 싹이 트고, 배추는 물러터졌으며, 들깨와 콩은 썩어가며, 수확을 앞둔 과일은 수분 과다로 갈라졌다. 기후재난의 시대임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하는 한 해였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 수급 불안으로 물가가 뛰었다는 뉴스가 쏟아지지만, 정작 농민의 지갑은 더 가벼워졌다. 이상기후가 심화할수록 ‘가격은 오르는데 농민은 가난해지는’ 역설이 반복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량이 줄면 공급 부족으로 시장가격은 오르게 돼 있다. 이론적으로야 물량이 줄어들었으나 가격이 오르면 최소한 총수입 면에서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을 당한 농민 당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재난을 당한 농민은 정작 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높은 가격이 재난을 당한 농민의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소비자는 비싼 값을 치르지만 농민은 손해를 보고, 식량 불안은 커진다. 이것이 바로 기후재난 시대의 역설이고 모순이다.

기후위기는 이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기후재난을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마주치는 농민은 단순한 생산자가 아니라 기후 리스크를 온몸으로 떠안고 국민의 식량안보를 지탱하는 최전선의 수호자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기후재난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을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라 기후재난에 따른 사회적 비용으로 봐야 한다. 국산 농산물을 꾸준히 소비하고, 생산자의 피해를 이해하며, 적정 가격을 지불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제 정부도 이러한 사회적 욕구의 전환을 인식하고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농업 생산성 증대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기후적응 품종 개발과 재해 예방 인프라를 강화하고, 재해보험을 실질 보상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나아가 농민의 기후적응 활동을 공익노동으로 인정해 소득 보전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환경정책이 아니라 농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 기후대응형 농정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상승의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농민의 소득이 지켜질 때만, 우리의 식탁도 지켜질 수 있다. 그것이 기후재난 시대, 농정을 다시 세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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