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밀에 조사료까지, 파종 지연 불가피한 농촌

적기 놓친 보리 동해 우려, 밀은 가을 대신 봄파종 할 수도
조사료는 파종 포기 속출…축산업계 수급 불안 우려 확산

  • 입력 2025.10.31 09:00
  • 수정 2025.10.31 09:17
  • 기자명 장수지·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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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한우준 기자]

지난 15일 전북 순창군 순창읍 들녘에서 잦은 비에 논을 말리지 못한 농민이 볏짚을 콤바인으로 갈아버리며 추수에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5일 전북 순창군 순창읍 들녘에서 잦은 비에 논을 말리지 못한 농민이 볏짚을 콤바인으로 갈아버리며 추수에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평년 대비 두 배가량 많은 가을 강우에 벼 수확이 하염없이 늦어지자, 보리·밀은 물론 조사료 파종까지 줄줄이 뒤로 밀려가고 있다. 파종을 아예 포기한 경우도 적지 않아 생산량 감소 우려가 심각한 상태다.

이미 파종을 마쳤어야 할 보리의 경우 10월 말 현재까지 소식이 없는 지경이다. 장재순 군산시농민회장은 “땅이 너무 질어서 주변에 아무도 보리 파종을 못 한 상태다”라며 “11월 10일 이전에는 보리를 넣어야 하는데 비가 또 언제 내릴지 몰라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 심어도 시기가 너무 늦어버려 동해가 상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장 회장은 보리 대신 파종할 수 있는 품목도 여의치 않고 현재로선 어떠한 것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장 회장은 “나락값은 임차료 내고 뭐 하면 남는 게 없다 보니 보리까지 심고 수확해야 먹고 살 수가 있는데, 하늘이 이러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고 밝혔다.

밀 농가의 여건도 여의치 않다. 일부 주산지에선 가을파종을 포기하고 봄파종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인 상황이다. 윤종섭 충남 논산 상월농산 이사는 “벼 대신 논콩을 심었는데 아직도(10월 27일 기준) 수확을 못 했다”라며 “마지노선인 11월 20일까지 작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 되면 봄파종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수확량 감소에 이후 논콩 재배까지 늦어질 우려가 또 있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윤 이사는 이상기후에 대응할 재배여건 개선 대책이 뒤따르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암거 배수로 등 배수 개선 사업 등이 추진되면 최근과 같이 예측 불가한 잦은 강우에도 논이 빨리 말라 농가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게 윤 이사의 설명이다.

벼를 수확한 농가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동계 사료작물 ‘이탈리안 라이그라스’의 파종도 차질이 우려된다. 최근 농촌에선 벼 수확 전 미리 씨를 뿌리는 ‘입모중 파종’이 대세가 됐는데, 이탈리안 라이그라스의 입모중 파종 적기는 경기 등 중북부지역의 경우 9월 20일경, 남부지역의 경우 9월 30일경이다.

즉 적기는 이미 지나간 셈인데, 10월 19일까지 이어진 가을비로 인해 파종 자체를 포기한 포장이 적지 않다.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이 재배법은 수확 직후 볏짚 수거, 밑거름 살포, 출수, 진압 등이 반드시 전제돼야 하나 현장에선 벼의 적기 수확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김제 농민 서창배씨는 “전북의 경우 논콩이면 몰라도 벼 심은 곳은 대부분 볏짚을 베어 버려서 어렵다”라며 “땅을 새로 갈아엎으며 어거지로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볏짚이 섞여 있으니 풀씨가 차지할 면적이 적고, 땅도 잘 마르지 않아서 수량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고, 보성 농민 윤인구씨도 “지금 라이그라스 순이 이미 이 정도(한 뼘 크기)는 길었어야 했는데, 질은 땅에서 콤바인이 벼를 베며 짓이겨버릴 게 뻔해 파종도 하지 못했다”라며 “볏짚을 썰어낸 곳들은 로터리를 쳐 파종을 해야 하는데 생육도 문제고 생각지도 않은 추가 비용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8일 국정감사장에서 가을장마로 인한 동계조사료 파종 지연 및 조사료 수급 불안을 우려하는 질의에 “필요한 경우 할당관세 물량을 활용하고, 동계 조사료 파종 지원, 농협 계약재배 등의 요구도 살피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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