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4년 초 일조량 부족 사태, 7월 중부지역 홍수, 9월 벼멸구와 11월 폭설 피해. 올해 3월 영남 산불, 7월 전국적 홍수, 8월 강릉 가뭄과 10월 가을장마. 최근 2년 ‘대형’이라 부를 만한 농업재해만 모아 열거해본 것이다. 냉해·폭염·태풍·우박 등 ‘상식적 범위’의 재해들은 제외한 것이 이 정도다.
2010년대 중후반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농업계에 조심스레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농업은 명백히 ‘기후재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거 수십년 간격으로 발생하던 초대형 재해는 이제 한 해 동안 몇 건이나 발생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특히 수확기에 정확히 맞물린 올해의 가을장마는 그 양상이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벼와 콩은 누런빛 대신 검은빛으로 물들어 가고, 채소는 무르고 시들어 밭에 심긴 채 썩어들어가고 있다. 과수는 갈라지고 떨어지는 것이 부지기수요, 간신히 살아남은 것들 역시 정상적인 수확을 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풍요로워야 할 가을 들녘의 황폐한 모습은 기후재난이란 관념적 언어를 시각적으로 끄집어내 보이고 있다.
가을장마가 더욱 무서운 이유는 당장의 수확뿐 아니라 내년 농사에까지 차질을 빚게 만든다는 점이다. 벼를 수확한 뒤 시작해야 하는 양파·마늘·밀·보리 등이 벼 수확 지연으로 파종·정식의 적기를 놓치게 된 것이다. 또한 축산농가의 경우, 사료작물 파종 지연과 볏짚의 양적·질적 부족으로 일찌감치 사료 대란을 예견하고 있다.
품목별 농산물 수급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정확히 예단할 수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확실하고도 중요한 건 농민들의 경제적 피해다. 벼·콩·배추 품목에 재해지원이 발동되긴 했지만 고질적으로 지적됐듯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고 그나마 피해 입증마저 난관 투성이다. 농업재해 관련 법률 중 재해대책법·재해보험법 정도가 내년부터 개선되는데, 그 실효성 역시 국회를 떠나 재해정책에 소극적인 농림축산식품부의 손아귀에 오롯이 맡겨져 있다.
재해가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난 만큼 정부 역시 책임의 범위를 대폭 확장해야 한다. 재난의 시대에 정책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피해 산업은 절멸할 수밖에 없다. 본지는 농업이 처한 백척간두의 상황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자, 가을철 전국 농토의 어지러운 모습을 모아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