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전남을 중심으로 벼 깨씨무늬병이 확산하고 있지만, 긴 추석 연휴로 피해조사 및 재해인정 절차가 늦어지고 있어 농민들이 애태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주전남 지역 농협마저 벼 수매가 선지급금을 6만원(조곡 40kg당)으로 결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지역 농민들이 정부와 농협을 향한 규탄에 나섰다.
농민들은 평년보다 약 2배 더 발생한 벼 깨씨무늬병이 8~9월 지속된 고온에 따른 것으로 보고 지난 9월부터 조속한 농업재해 인정과 지원을 촉구해 왔다. 10일 전남도에 따르면, 벼 깨씨무늬병 피해 면적은 9월말 기준 전남지역 전체 논(14만2402ha) 가운데 약 7.2%(1만295ha), 농작물재해보험 신고 기준으론 전체 면적의 11.3%(1만6115ha)에 이른다.
아울러 농민들에 따르면, 조곡 기준 농협 수매가는 8만원은 돼야 한다. 전국쌀생산자협회에 따르면 8만원은 최소생계비 기준이며, 농민들의 오랜 요구인 밥 한 공기 쌀값 300원이 되려면 9만3000원이어야 한다. 특히 현재 시장에서 조곡은 7만5000원~8만원 상당에 거래됨에도 농협이 6만원 선지급을 단행하면 시장가격마저 6만~7만원대로 내려앉을 수 있어 이날 농협에 대한 농민들의 규탄 목소리는 높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의장 윤일권, 전농 광전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 전남본부(본부장 권영식, 쌀협회 전남본부)는 10일 전남 무안군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 앞 대로에서 ‘나락값 8만원 쟁취 농기계 행진’ 집회를 열었다.
전남 곳곳에서 트랙터 10대와 트럭 80여대를 이끌고 온 농민들은 이날 농협에 △나락값 8만원 보장, 정부에 △비축미 방출 중단 △벼 깨씨무늬병 농업재해 인정, 언론에는 △쌀값 정상화에 대한 올바른 보도를 촉구했다.
윤일권 전농 광전연맹 의장은 “농협의 6만원 선지급은 시장에 쌀값 하락이란 신호가 돼버린다”라며 “시중에 재고미가 없고, 정부도 더 이상 비축미를 풀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쌀값이 그나마 괜찮은 편인데 농협이 나서서 볏값 하락을 이끄는 꼴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 의장은 “송미령 장관 유임은 남태령 투쟁에 대한 전면 배신행위다. 농산물 가격보장, 농지보전, 농산물 수입 축소, 양곡정책 정상화, 농민소득 증대를 해결하는 것이 장관의 역할이며 이들 없이 송미령이 일 잘한다는 보도는 모두 여론조작이자 날조”라고 날을 세웠다.
김봉식 쌀협회 광주전남본부 영암군지부장도 “지난해 농협은 5만원선에서 선지급을 결정했고 최종 수매가는 6만원선이었다. 나락값이 계속 올라 단경기 때 7만5000원까지 갔는데 결국 농협이 예측을 잘못했던 것이고 그 손해는 농민이 떠안았다. 조합원에 피해를 입혔으니 배임죄 아닌가”라고 규탄한 뒤 “농협에 8만원은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했더니 욕심이 과하지 않느냐고 하더라. 그게 농협이 할 소린가. 농민들은 맨날 죽지 않을 만큼만 받아야 한다는 건가. 6만원은 턱도 없는 소리다. 농협은 나락값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대책을 강구하라”라고 촉구했다.
특히 올해 조벼 수확기엔 나락값이 8만5000원에 이르러 올해야말로 농민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상황이라 농협의 6만원 선지급 결정은 쌀값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격인 셈이다.
쌀값에 대한 언론보도 행태와 벼 깨씨무늬병에 대한 늑장 대응도 규탄의 도마에 올랐다.
이준경 광주시농민회 회장은 “20kg 쌀값이 6만원을 넘어서니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 주요 언론들이 난리다. 그 마지노선은 과연 누가 만든 것인가”라며 “농민들은 지난 30년간 쌀값 하락으로 고통받았다. 지난 2018년 법정 쌀 목표 가격은 21만4000원(정곡 80kg), 지난 9월말 기준 통계청 쌀값은 겨우 22만6000원이다. 여기서 2만원은 더 올라야(24만원 대) 8만6545원(조곡 20kg 기준)이 된다. 커피값으로 한 달에 10만원을 쓰는 사람이 태반인데, 한 달 쌀값으론 3만원도 쓰지 않는다. 언론이 이를 바로 잡아야 하고 대통령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만조 화순군농민회장은 “지난 3일 우리 화순에서 뜨거운 여름 내내 농사지었던 논을 갈아엎었다. 오죽했으면 자식 같은 나락을 제 손으로 갈아엎었겠나”라며 “지난해엔 멸구가 와서 우리 농민들이 시름에 빠졌는데, 올해는 벼 깨씨무늬병으로 농민의 가슴이 까맣게 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정 회장은 “토질영양 상태, 방제 유무와 상관없이 온 들판이 벌겋게 불타고 있다. 폭염과 열대야, 9월 초부터 이어진 가을장마가 원인”이라며 조속한 농업재해 인정과 보상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광주전남 농민들은 이날 발언에서 언급된 ‘농산물 제값 매입 의무’를 저버린 농협, 중요 조항을 뺀 채 개정된 ‘누더기 양곡관리법’과 수확기 비축미 방출, 벼 깨씨무늬병 늑장 대처와 농산물 가격에 대한 언론보도 행태를 거듭 질타했다. 이어 농민들은 벼 깨씨무늬병 피해 나락을 모아 불태우며 지속 투쟁을 예고했다.
한편 전농 광전연맹과 쌀협회 전남지부는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 앞에 트랙터 3대를 세워놓는 시위에 돌입했다. 나란히 정차된 트랙터에는 "농협은 나락값 8만원 보장하라", "농협은 나락값 후려치면 천벌받는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이날 두 단체는 농협측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발됐으며, 농협이 8만원 보장을 약속할 때까지 투쟁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