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원자재값이 상승하면 휘발유부터 공산품, 식품 등 따질 것 없이 줄줄이 다 오르고, 심지어 한 번 오른 가격은 절대 떨어지는 법이 없다. 그런데 농산물 가격은 왜 수십 년째 제자리인지 제자리도 못 지킨 채 오히려 하락하는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다. 귀농해 애 셋 키우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농사짓고 있지만 자식들 치킨 한 번 사주질 못한다. 이게 사람 사는 게 맞는 건지 묻고 싶다.”
전라남도 함평군의 양파 생산 농민 정철성씨의 절절한 발언이 세종정부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 울려 퍼졌다. 이어 정씨는 “농민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나. 농민이랑 무슨 원수진 게 아니고선 이럴 수가 없다”며 “어제도 밤 12시 넘어까지 일하고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나 이 자리에 섰다. 농민도 제대로 살 수 있게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 얹고 제대로 된 정책 좀 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락시장 상품 평균 경락가 1kg 500원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양파값에 정신없이 바쁜 농번기에도 전남과 경남·북 등 전국 양파 생산자 대표들이 28일 농식품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유례없이 하락한 양파값이 지난 26일 정부 수급대책 발표 이후로도 크게 회복하는 기미가 없자 양파 1kg 750원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1kg 750원은 정부가 정한 수급 가이드라인의 수확기 안정대 가격 기준인 1kg 1002원에서 유통비 250원을 제한 금액이다.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남종우 (사)전국양파생산자협회 회장은 “현재 양파값 하락의 주요 원인은 정부가 조생양파 수확 전에 추진한 2만톤의 저율관세할당(TRQ) 수입이다. 일주일만 지켜보자던 생산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다”라며 “정부가 지난 26일 수매비축 3만톤, 출하연기 3000톤, 저품위 양파 4000톤 시장격리 대책을 발표했지만 중만생 양파 출하가 본격화되기 전인 6월 5일까지 가격이 안정세로 오르지 않으면 농민들은 극단적인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김병덕 양파협회 전 사무총장은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드러난 정부 농산물 TRQ 수입의 졸속 절차를 지적했으며, 정찬행 양파협회 전남도지부장은 계속된 투쟁에도 결코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토로했다. 또 안명진 함평군지회장은 광주농산물도매시장에서 직접 받아든 경매 결과를 내보이며 15kg 조생양파 한 망에 6500원밖에 안 되는 작금의 실태를 꼬집었다. 안 지회장은 “상품 6500원, 중품 5500원, 하품 3900원이다. 수입밖에 모르는 정부 때문에 농민들은 운송비도 안 나오는 값을 받고 있다”고 탄식했다.
한편 정부 수급대책 발표 이후로도 양파값은 여전히 생산비에 못 미치는 수준을 유지 중이다.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경락가가 소폭 상승세를 보이곤 있지만, 농민들이 요구하는 1kg 750원 선까지 가격이 오를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이에 양파협회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에 △6월 5일까지 가격 미회복 시 추가 대책 발표 △비축물량 방출 및 TRQ 운용 시 생산자·농협·유통인과 협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일관성 있는 수급정책 추진 등을 촉구했으며, 농협과 생산자, 유통인에게도 진정성 있는 태도로 협력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양파협회는 특히 “더 이상 일방적인 희생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농민이 살고, 시장이 살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 체계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