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남일호' 손배소 나선 여주 농민들, 패소

1년 10개월간 진행된 1심 재판, ‘종자 문제 입증할 증거 부족’

피해 농가들, ‘입증은 농협이 할 일, 보급 과정의 위법성 간과’

  • 입력 2024.10.30 16:39
  • 수정 2024.10.31 20:33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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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가남일호 피해자 여주시 대책위원회가 2022년 12월 8일 농협중앙회 여주시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량·불법 종자 공급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 대한 공식 사과와 피해 전액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가남일호 피해자 여주시 대책위원회가 2022년 12월 8일 농협중앙회 여주시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량·불법 종자 공급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 대한 공식 사과와 피해 전액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수매 계약 물량마저 채우지 못한 사상 최악의 수확량 감소 사태를 낳은 가남일호(조생종 벼 품종). 이에 종자를 공급한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여주조공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던 경기도 여주시 농민들이 1년 10개월간의 재판 끝에 패소했다.

30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에서 열린 선고공판(2023가합 10190)에서 재판부는 농가의 피해 사실 자체는 인정되나 종자의 하자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45개 농가) 패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종자 재배 과정에서 강수량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수확량이 감소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피고(여주조공법인)가 200평당 9만원 배상금을 지급한 바 있으나 이는 보상금 명목이라기 보단 어려움에 처한 농가에 대한 시혜적 차원의 위로금에 불과한 점을 들었다.

이어 △피고가 원고들에게 200평당 12가마의 수확량을 보장했다는 사실 △해당 종자의 하자가 있다는 사실 △종자로 인해 수확량이 감소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가 부족하고, 달리 원고들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도 없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원고들의 손해가 종자의 하자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수확량 감소는 환경적 요인에 따른 것일 수 있고 가남일호의 하자를 현재의 증거만으론 입증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2022년 당시 여주조공법인 수확량 감소를 인정하고 각 농가에 지급한 배상액(200평당 40kg 1가마 수매가 기준 9만원)도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차원에서 지불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종자 문제에 대한 입증은 농가들이 하게 된 셈이다.

피해농가들의 청구가 기각되면서 소송비용 일체도 농가들이 부담하게 됐다.

이날 전용중 가남일호 피해자 여주시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농협이 종자 보급을 위법하게 진행해 기소유예를 받은 사실조차도 이번 재판에선 다뤄지지 않았다. 우리 주장의 핵심은 가남일호 사태는 농협의 주먹구구식 종자 보급으로 인한 피해이고, 농협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종자 자체의 문제만 다루면서 피해 원인을 전문가도 아닌 우리더러 입증하라고 하면 농민들로선 더 이상 방법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 사무국장은 “최근 공산품 피해에 관한 분쟁에선 피고(제조사측)가 자기 생산물의 안전성이나 결함없음을 입증하는 추세인데, 농업 쪽은 아직 없는 것 같다”라며 “가남일호의 원종을 알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원종에서 얼마나 변종됐는지 확인이라도 할 수 있지만 원종 자체를 모르는데, 방법이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선고공판을 방청한 농민 이건수씨는 “종자 보급은 농협이 했으니 종자에 문제가 없다는 건 농협이 입증해야 한다. 농민들이야 농협을 신뢰하고 그에 따른 지침대로 농사지었을 뿐이지 우리가 입증할 방법은 없다”라며 “종자를 우리가 구해 온 것도 아닌데, 농협이 이상유무를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보급을 주도했으니 농협이 그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라도 질 것을 기대했던 거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여주조공법인은 지난 2022년 가남일호를 극조생 수매계약 품종으로 선정하고 농가에 적극 권장했으나, 이를 재배한 농가들은 생산량이 30~60%까지 감소하는 초유의 피해를 입게 됐다. 가남일호는 여주시 가남면 일대에서 자가 채종 방식으로 수년째 재배해 온 품종으로, 국립종자원 등록 종자는 아니었다. 결국 여주조공법인은 「종자산업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피해 농가들은(가남일호로 수매계약한 170여 농가 중 45농가) 200평당 9만원의 배상금을 거부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소송 가액 6억5600여만원)에 들어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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