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남일호’ 보급한 여주통합RPC, 재배 농민 피해 외면

품종 정보도 알리지 않은 채 ‘빠른 수확’ 앞세워 홍보

농가 재배 독려해놓고 피해 발생하자 ‘위로금’ 생색만

중앙회 감사 촉구하는 농민들 … “관계자 책임 물어야”

  • 입력 2022.12.08 17:30
  • 수정 2022.12.08 17:32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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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8일 가남일호 피해자 여주시 대책위원회가 농협중앙회 여주시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와 피해 전액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8일 가남일호 피해자 여주시 대책위원회가 농협중앙회 여주시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와 피해 전액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경기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통합RPC)이 올해 수매계약 품종으로 출처도 알 수 없는 ‘가남일호’를 보급해 농가 피해가 극에 다다르고 있다. 폭등한 농자재값에 반해 쌀값은 폭락한 상태를 유지 중인데, 여주 농민들은 여기에 더해 출처를 알 수 없는 품종 재배로 많게는 생산량 60% 감소 피해를 겪었다. 이에 농민들은 통합RPC에 공식 사과와 피해 전액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여주시 농민들에 따르면 올해 통합RPC는 자체적으로 명명한 가남일호(조생) 품종과 영호진미(중만생), 진상(중조생) 품종을 계약재배 대상 품종으로 선정했다. 농민들은 “올해 추석이 이르다 보니 그에 맞춰 빨리 수확할 수 있는 품종을 계약재배 품종으로 선택한 것 같다. 농가에선 농협이 정한 품종을 재배해야 수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품종을 선택할 권한이 없다”라며 “조생은 가남일호 한 품종이었기 때문에 다들 그 품종을 심었고, 올해 날씨가 춥지 않았음에도 냉해로 파악되는 현상이 발생해 수확량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60%까지 줄어들었다. 여주시 전역에서 가남일호 재배로 피해를 본 농가만 약 170여 농가나 되며, 어디서 개발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종자라 재배를 망설이는 농민들에게 통합RPC가 수차례 문자로 재배를 권장해 재배 면적을 오히려 확대한 농민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가남일호 피해자 여주시 대책위원회(위원장 김기병, 대책위)를 꾸린 농민들은 통합RPC에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수매가 끝난 지 세 달이 지나도록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지난 1일 열린 이사회에서조차 공식 사과는 하지 않을 것이며, 위로 차원에서 200평당 40kg 조곡 한 가마(약 9만원)를 지급하겠다고 통보하자 농민들은 이를 전면 거부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다.

8일 농협중앙회 여주시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의 시작을 알린 대책위는 “여주 농민들은 노령화되는 농촌에서 생산비가 폭등하는 와중에도 전국 최고의 쌀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지만 가남일호라는 조생종 벼를 심으며 이 자부심마저 잃어버렸다. 통합RPC와 통합RPC 이사인 각 농협 조합장들은 자신들이 선정하고 농가에 보급한 품종의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라며 “부실하게 공급된 종자로 수확을 포기한 경우도 있으며 170여 농가는 대략적으로 지난해 대비 30% 수확이라는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쌀의 고장에서 종자 문제가 불거진다면 농민에게도 창피한 일이라 참고 또 참아왔지만 지난 1일 통합RPC 이사회에서 통보한 결정은 상처난 농민들의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결과가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책위는 “떨어진 쌀값 때문에 결산 보기도 힘들다고 죽는 소리를 하던 조합장들은 얼마 전 진행된 각 농협 예산총회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한다며 5% 임금 인상과 복리후생비 인상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자기들이 이름짓고 보급한 불량종자로 피해를 입은 농민 조합원들을 대하는 태도는 뻔뻔하고 잔인하다”라며 “농민들은 조합장들에게 위로를 구걸한 적 없다. 통합RPC는 계약재배 농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가남일호 종자대금 전액과 농협 계약 물량 부족분에 대한 전액을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농민은 “농사를 30~40년 지었지만 이런 벼는 처음이었다. 5월 3일날 모내기를 한 뒤 6월 4일 이삭이 나온 걸 발견했다”라며 “이삭이 나온 다음 벼의 키가 크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수확량이 50% 이상 감소했다. 큰 걸 바라고 농사짓는 것도 아니지만 농지를 임차해 농사짓는 농민은 지금 없는 돈까지 보태서 임차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영농자재값은 오르고 쌀값은 떨어져 걱정이 큰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농협중앙회 여주시지부장 등 관계자를 만나 책임 있는 통합RPC 감사 즉각 실시를 요구했다. 대책위는 “불량종자를 선정하고 보급해 170여 농가의 일 년 농사를 망하게 한 전 과정에서 중앙회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농협법에 따라 회원농협에 대한 지도·감사를 성실히 수행했다고 볼 수 없고 작금의 사태에 대한 지도·감독기관으로서 막중한 책임이 있다. 지금이라도 통합RPC 부실 경영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통합RPC 관계자에 따르면 가남일호 품종은 여주시 가남면 일원의 몇 농가에서 ‘수년 간’ 재배하던 종자다. 해당 관계자는 “등록된 품종은 아니고 농가에서 재배하던 품종을 받아 RPC에서 3년간 시범재배를 했다. 빠르게 재배할 수 있고 미질도 좋고 해서 시범재배 후 올해 농가에 보급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대책위는 내년 3월 조합장 선거에 앞서 해당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 관계자가 반드시 책임을 질 수 있게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귀책사유가 명확한 만큼 1월 말에 있을 결산총회 이사회 안건으로 해당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추후에는 피해 농민 전부가 참여하는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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