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수확기가 코앞이지만 지속되는 이상 폭염으로 벼멸구가 급속히 확산해 전남 지역 벼 농가들에 비상이 걸렸다.
전라남도(지사 김영록, 전남도)가 19일 벼멸구 방제를 위해 오는 22일까지 32억원(도비 6억1000만원, 시군비 25억9000만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유례없는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벼멸구 발생 면적이 평년(3876ha)보다 1.7배(6696ha) 더 발생할 것으로 예측돼서다.
보통 6~7월경 중국에서 건너오는 벼멸구는 벼 포기 아래에서 서식하다 논의 물이 빠지는 8~9월쯤 벼를 고사시킨다. 평년이라면 9월쯤엔 일교차가 커져 벼멸구 확산이 더뎌지는데, 올해는 폭염이 계속돼 벼멸구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남도는 지난 18일부터 보성‧해남군 등 피해 우려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도와 농업기술원 합동으로 전담지도사 70여명을 긴급히 보내 방제 및 실태점검에 나섰다.
아울러 전남도, 도 농업기술원, 농협전남본부와 공동으로 농약 공급, 방제 지도, 약제 구입비 지원 등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농가의 우려는 한층 깊은 상황이다.
19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의장 윤일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회장 고송자), 전국쌀생산자협회 광주전남본부(본부장 권영식)는 긴급 성명을 내어 "쌀값 폭락에 이은 벼멸구 피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해보다 20% 폭락한 쌀값으로 농민들이 시름에 잠긴 상황에서 "전남 전 지역에 벼멸구 확산까지 심각한 상태"라며 "벼멸구 피해는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노랗게 타들어 가고 있고, 방치했다간 수확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전남도의 방제 대책만으론 벼멸구 확산을 막기에 부족하다. 피해지역 주변까지 일제히 방제할 수 있도록 특별대책이 필요하다"라며 "전남도와 농협 등이 모든 힘을 모아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벼멸구 방제를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이무진 해남군농민회장에 따르면, 보성‧장흥‧진도‧해남군 등 바다에 접한 지역에서 특히 확산이 심하고, 농가의 자체 방제도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계속되는 고온으로 방제 효과가 떨어지고, 수확기 직전이라 강한 약제를 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회장은 “밤에라도 좀 추워져야 약효가 나는데 도통 서늘해지질 않으니 약을 쳐도 의미가 없다”라며 “벼멸구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인데, 아직 태풍이 없었음에도 이렇게 확산이 심한 걸 보면, 혹시 벼멸구가 한국에서 자생하게 된 것 아닌가란 의심까지 든다”라고 우려했다.
현장 농가들은 지자체의 긴급 대응 이전부터 3~4회에 걸쳐 자체 방제했지만, 확산은 멈추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장은 “앞으로 길어봤자 20일 뒤엔 수확이 시작될 텐데, 독한 약을 쓸 수도 없고, 가만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평년엔 벼멸구가 논 일부만 피해를 주는 편인데 올해는 논 전체로 확산하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농가들은 당국의 대책이 방제에만 그칠 것을 우려한다. 한 해의 결과물을 얻어야 하는 수확기라 벼멸구 피해 이후를 더 걱정하는 것이다.
이 회장은 “농작물재해보험을 든 농가는 그나마 괜찮은데, 보험을 들지 않은 농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보험 미가입 농가들도 다만 농약대라도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피해 보전뿐 아니라 피해 곡에 대한 정부 수매 등 방제 이후의 사후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집중호우와 잇따른 태풍으로 수확기 벼 피해가 속출하자, 당시 정부는 피해 벼에 대한 매입을 진행한 바 있다. 수확기 피해 농가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낮은 품질의 쌀이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편 전남도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피해 농가는 지역농협에 보험금 지급 신고를 하라고 당부했다. 벼멸구는 농작물재해보험이 보장하는 병해충에 해당한다. 2024년 4월 22일부터 6월 21일 가입 기준으로, 병해충 최대인정피해율은 70%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