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벼 흑·백수 심각 … 농민들, 정부 수매 결정에도 어려움 호소

수확량 감소는 물론 품질 크게 떨어져 사실상 판매 ‘불가능’
출수 직전 불어 닥친 바람에 전체 90%가 쭉정이인 경우도
농민들 “수매로 한시름 놓았지만, 건조·정선 등 문제 여전

  • 입력 2020.09.20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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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가을철 본격적인 수확을 앞두고 벼 백수·흑수 피해가 발생해 농민들이 시름을 겪고 있다. 사진은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뒤 낟알이 하얗게 변하는 백수 피해가 발생한 전남 진도의 들녘 모습. 한승호 기자
가을철 본격적인 수확을 앞두고 벼 백수·흑수 피해가 발생해 농민들이 시름을 겪고 있다. 사진은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뒤 낟알이 하얗게 변하는 백수 피해가 발생한 전남 진도의 들녘 모습. 한승호 기자

 

연달아 불어 닥친 태풍에 벼 흑수·백수 피해가 심각한 실정이다. 흑수·백수는 강풍 등으로 생육 장애가 발생해 낟알이 검거나 하얗게 변해 쭉정이가 되는 현상이다. 이에 지난 15일 수확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 전남 진도군 농민들은 정부 수매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건조·정선 등 쉽지 않은 현실 여건에 쓴웃음을 삼켰다.

진도군 고군면 모사리 일원에서 만난 농민 박부홍(72)씨는 전체 재배면적의 90%가 백수 피해를 입어 사실상 올해 수확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갑작스레 늘어난 벼멸구에 오전 무렵 농약까지 뿌렸다는 박씨는 “10월 초순경 수확할 예정이었는데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뒤 전체적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작년에도 태풍 때문에 수확을 포기했는데, 올해도 수확을 못할 것 같아 눈물밖에 안 나온다”며 “보험에 가입했지만, 지난해 태풍으로 보험금을 수령했기 때문에 보상이 더 적을 거라고들 얘기한다. 1년 농사인데 막바지에 이렇게 되니 허탈감뿐이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박씨에 따르면 올해는 7~8월 잦은 강우로 평년 대비 농약 방제비 등 생산비가 훨씬 많이 들어간 반면, 벼멸구 등 병충해 발생이 잦아 사실상 풍년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이다. 또 농민들은 출수(이삭이 밖으로 출현하는 것)가 언제 됐느냐에 따라 피해 정도의 차이가 심해 정부의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을 거라 비관했다.

군내면에서 친환경 벼를 재배 중인 농민 박용진(50)씨는 필지 대다수가 흑수 피해를 입었다. 출수 이후 바람 피해를 입어 발생하는 흑수는 출수 전 강풍으로 발생하는 백수에 비해 일정 부문 수확이 가능하지만, 미질이 크게 떨어져 시장출하가 사실 불가능하다. 수확량이 평년 절반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박씨는 “2,400평 필지 기준 40kg 쌀 포대 120개 정도를 평균 수확하는데 지난해에도 태풍 때문에 60개 정도밖에 안 나왔다. 올해는 80개 수준을 예상하고 있지만 품질이 떨어지다 보니 가격 받는 게 더 큰 걱정이다”라며 “흑수 피해 벼는 수확을 해도 낟알이 부서지고 무게가 가벼워 도정 시 날아가기 때문에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도 잘 받으려고 하질 않는다. 또 같은 무게라도 피해 벼는 가격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 보험사에서는 품질이 아닌 무게만을 따지기 때문에 보험 역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정부 수매에도 걱정 여전한 농민들

한편 지난 16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는 집중호우 및 태풍으로 인한 벼 도복, 수발아 및 흑·백수 피해가 심각한 만큼 피해 벼 매입을 위한 잠정규격을 신설하고 농가가 희망하는 수매 물량을 내달 19일부터 매입할 계획이라 밝혔다. 농식품부는 지자체별로 피해 상황과 수매 희망 물량을 조사한 뒤 내달 16일경 피해벼 매입을 위한 잠정규격을 신설하고 매입가격을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가 피해 벼 매입을 결정했음에도 농민들은 시름을 크게 덜지 못하는 상황이다. 피해 벼는 조생과 중만생 품종 등 수확이 진행되고 벼를 찧었을 때 현미가 되는 비율(제현율)과 피해립 혼입 비율 등을 조사·고려해 매입되기 때문인데, 수발아 및 흑수·백수 피해 벼는 건조와 선별·도정 등에 몇 배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해서다.

이에 농민들은 피해 벼 수매 소식에도 크게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농민 대부분은 “정부가 수매를 해줘서 숨통이 트이지만 지난해 RPC 등에서 피해 벼를 거부한 사례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건조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 고민이 덜하겠지만 나락을 수확하고 건조하는 것부터가 사실 큰 문제다. 웃돈을 주고 건조를 맡겨도 도정과 매입 전 보관까지 신경 쓰다 보면 남는 게 없는 현실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장부식 진도군농민회장은 “피해 벼 매입에 있어 정부가 건조·도정·보관 등에 어려움을 겪는 현장 농민들의 고충을 헤아려줬으면 좋겠다. 또 최근 주변에서 향후 보험 가입을 않겠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현장에서 농민들이 느끼는 보험의 존재가치는 바닥에 가깝다”면서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 피해가 매년 증가하고 심화되는 만큼 사후약방문식 대처론 안 된다. 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재해를 예방하고 관리·대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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