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농민들에겐 ‘재앙’인 기후재해, 국가 책임 보상 절실

전북 익산·충남 논산 수해 시설농가들, ‘빚 돌려막으며 복구’

  • 입력 2024.01.01 00:00
  • 수정 2024.01.01 00:16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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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해 12월 25일 전북 익산시 용동면에서 시설농사를 짓는 김종원씨가 지난 7월 수해를 입은 뒤 복구한 시설하우스에서 기후재해의 심각성과 농민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25일 전북 익산시 용동면에서 시설농사를 짓는 김종원씨가 지난 7월 수해를 입은 뒤 복구한 시설하우스에서 기후재해의 심각성과 농민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새해지만 희망보단 불안한 기색이 앞섰다. 지난여름 혹독했던 수해 흔적도 여전했다. 기후재해가 언제 또 닥칠지 알 수도 없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다시 농사 준비에 나서고 있었다. 농민들의 새해 바람은 하나 같이 ‘좋은 날씨’. 이를 ‘살 수만 있다면 사고 싶다’는 농민들의 간절함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지난해 12월 25일 전북 익산시 용동면과 충남 논산시 연무읍의 시설농가들을 찾아갔다. 두 지역 농민 6명(용동면: 김기태·김종원·이석근씨, 연무읍: 박동규·배형택·최호길씨)을 만나 기후위기 시대 시설농가의 어려움과 대안을 들어봤다.

지난해 시설작목 소득 사실상 ‘0원’

두 곳은 지난해 7월 수해로 특별재난지역이 됐다. 투입비용이 큰 시설단지가 밀집한 지역들이라 피해가 더 컸다. 용동면은 지난해 수해만 세 번(5·7·9월) 겪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농민들은 자식처럼 길렀던 수박·멜론·상추 등을 눈앞에서 물속으로 떠나보냈다. 출하를 4~5일 앞두고서였다. 논산시도 ‘30년’만의 폭우를 겪었다. 연무읍은 종자대가 지급된 시설 피해 면적만 26.6ha(26만6,000㎡)다. 국제 규격 축구장 약 38개 면적에 달한다. 시설 안에 작물이 없어 농약대만 지급된 면적은 빠진 수치라 실제 피해 면적은 더 넓다.

이날 만난 농민들의 지난해 시설작물 수입은 사실상 0원이다. 농민들은 재난지원금과 재해보험금을 합하면 평년 소득의 50~60%가 보전됐다고 가늠했지만, 수해로 작기가 헝클어져 다음 작물을 제때 정식하지 못했고 이는 다음 해 작기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소득 부진으로 이어져서다. 또 계획엔 없던 복구 자금도 들었다. 복구과정에서 시설농가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잿값과 인건비다. 농민들은 카드와 농협 추가 대출로 돌려막으며 버텼지만, 이번 수해로 한도까지 꽉 차버려 앞으론 이조차도 어렵다.

김종원씨(멜론·수박, 9동)는 “수해를 몇 번 겪다 보니 돈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지금 자재끔(값)이 장난이 아니다. 비닐 한 통에 10만원 했던 게 25만원이다. 비닐은 한 번 사면 2~3년 정도는 쓰는데 침수되면 무조건 다 버려야 한다. 그러니 100원 들어갈 거 400원씩 들어가는 셈이다. 수해 농가들이 평년 궤도에 오르려면 3년은 고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이상기후’

농민들은 최근 2~3년 이상기후를 부쩍 크게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익산의 5월 폭우는 농사 인생에서 그야말로 처음이었고, 논산의 7월 폭우는 ‘30년만’이었다. 또 생육부진, 냉해, 꿀벌 활동 저하, 따뜻함과 한파가 반복되는 겨울날씨 등 예측할 수 없는 기후가 이어지고 있다.

이석근씨(수박·상추, 6동)는 “수박 출하 직전인 지난해 5월 말 폭우로 하우스가 잠겼다. 장마나 태풍 때도 아니고 5월 폭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피해나 체감도가 더 컸다. 기후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주로 짓는 단동형 수박은 4월 초쯤 수정하는데, 이때 저온이나 흐린 날씨가 잦으면 수정도 어렵다. 김기태씨(수박, 11동)는 “이상기후로 작물들 생육이 좀 부진한 것 같다. 농사지어도 항상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딸기 농사에선 수정 때 벌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최호길씨(딸기, 7동)는 예년보다 벌의 활동성이 떨어져 수정불량이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또 봄에는 가물다가 여름에는 한꺼번에 비가 쏟아지는 등 ‘기후가 이전과는 확실히 다름’을 체감한다. 최호길씨는 “딸기는 7~8월에 육모 관리가 중요한데, 지난해엔 7월 내내 비가 와서 습기가 많아 병충해가 많았다”라며 “이번 겨울은 내내 따뜻하다 갑자기 추워져 양파가 잠을 못 잔다. 보통 11월부턴 서릿발이 내리면서 양파가 잠을 자야 하는데 내내 따뜻하다 갑자기 추워졌으니, 양파가 잠을 안 자고 자라버린 거다. 겨울철 기온이 급변해 작물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해마다 이상기후가 한 가지씩 발생했다면 지난해엔 동해·냉해·우박·폭우가 잇달았다. 이는 생산비 폭등과 저가의 농산물 가격으로 힘겨운 대다수 중·소농들에겐 또 하나의 시련이다. 기후재해는 농작물만 휩쓸어 가지 않았고, 농민들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농민들은 지난해를 생각하면 ‘심란함·불안함·무거움·막막함·무서움·위기감·무력감(속수무책)’이 든다고 했다. 기후재난은 이처럼 물질적·심리적으로 농민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농민 각자가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없다.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지만, 관련 대책 수립에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음이 확인된다. “정부 대책의 큰 방향은 농업 기상재해에 대한 사전·사후 대응요령 정보 제공, 예·경보 서비스 제공 확대, 밭가뭄 정보 제공, 농작물·가축재해보험 개선 및 신속한 손해조사 실시 외엔 뚜렷한 게 없다. 그나마 재해보험 강화가 위험 대비나 피해 복구를 위해선 실효성 있는 제도이지만 한계가 많고 개선 속도도 느리다. (농민들은)무방비로 노출돼 있고, 안전장치 또한 매우 느슨하다(<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 농식품부·환경부·국토교통부 등 24개 기관 합동보고서).”

기후재난에 따른 농업 피해, 국가 책임 보상제도 시급

이날 농민들은 기후재해가 언제 일어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농업재해보험 보장률 현실화와 농업재해보상법 제정이다.

최호길씨도 “재해보험에 가입했어도 시설 내부 작물만 보상하고 딸기는 부속 기계들이 꼭 필요한데 전혀 지원받을 수 없다”라며 “또 재해 시 의무적으로 신속하게(재해 한 달 이내) 보상해야 한다. 재난지원금이 가장 필요할 때 나와줘야 하는데 이미 복구된 뒤에야 나왔다”라고 지적했다.

논산시농민회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배형택씨는 “11월 말에 가서야 재난지원금이 나왔다”라며 “그 사이 소득이 없으니, 11월까지 4~5달 동안 카드 연체해 가며 돌려막기로 살다 재난지원금 나와서 메꾼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업재해보상법’ 제정과 ‘기후재난 직불금(가칭)’의 조속한 도입을 제안했다. 현행「농업재해대책법」과 농업재해보험의 보상수준이 미미할뿐더러 “기후재난 시대에 위기를 감수하면서도 농사짓는 공익적 역할”을 담당한 농민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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