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기후재난 최전선에 농민이 있다

  • 입력 2024.01.01 00:00
  • 수정 2024.01.01 14:58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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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논콩을 심은 들녘이 물에 잠겼다. 정상적인 수확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농민들은 논을 갈아엎었다. 지난해 12월 26일 같은 논에 황양택 정읍시농민회장이 `SOS'가 적힌 쌀 포대를 들고 섰다.동계작물로 보리를 심은 논은 파릇파릇했지만 한겨울에 내린 많은 비로 고랑마다 물이 차 있었다. 황 회장은 “기후위기최전선에 놓인 농민들의 삶이 위태롭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7월 논콩을 심은 들녘이 물에 잠겼다. 정상적인 수확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농민들은 논을 갈아엎었다. 지난해 12월 26일 같은 논에 황양택 정읍시농민회장이 `SOS'가 적힌 쌀 포대를 들고 섰다. 동계작물로 보리를 심은 논은 파릇파릇했지만 한겨울에 내린 많은 비로 고랑마다 물이 차 있었다. 황 회장은 “기후위기 최전선에 놓인 농민들의 삶이 위태롭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초 전북 정읍에선 개나리가 만발했다. 1박 2일간 비가 내려 동계작물로 심은 보리밭에 ‘모내기’를 해도 될 만큼 물이 들어찼다. 황양택 정읍시농민회장은 56년을 살도록 한겨울 이런 비는 처음 보고, 개나리 군락도 처음이라고 농촌 일상에 파고든 이상기후 현상을 설명했다.

지난 1년 이상기후는 전국 곳곳 농업현장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여름엔 50여일 햇빛 한 줌 없는 장마가 이어지는가 하면 봄가을 느닷없이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우스에 물이 들어차 농작물은 하나도 건지지 못했고, 겉으론 멀쩡해도 속은 다 썩은 과일들이 빗방울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경험치가 계속 쌓이고 있다.

도시인들에게 이상기후가 일상의 불편함을 주는 것이라면 농민들에게 이상기후는 1년 농사의 성패를 넘어 생존 문제를 위협하는 전면전과 다름없다. 급기야 지난해 추석, 경남 진주의 단감 과수원에서 탄저병이 번져 노심초사하던 농민 정철균씨가 명절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농막에 머물다 급작스런 화재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상기후가 만든 참사다.

지금까지 이상기후 피해는 작물의 작황, 소득감소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기후재난 최전선에 있는 농민들은 어떠한지 들여다보고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지난해 11월 15일 ‘기후재난과 여성농민’을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올해처럼 뜨거웠던 여름은 농민이 그 속에서 쓰러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밭을 돌보기 어려웠다”고 증언했다.

급증하는 병해충에 작물을 건사하느라 가뜩이나 폭등한 농자재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부담과 농산물을 정부가 더 많이 수입해 시장가격이 낮아지고 국내 농산물값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을 온몸으로 견디며 부업을 찾아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상기후 대책은 처방이 잘못돼 있다. 스마트팜을 맹신하는 정책이나 원료농산물 원산지 고민 없는 푸드테크 확대, 농지파괴형 영농형태양광사업 등은 본질적으로 환경을 살리는 농업의 범주가 아니다. 자본과 기업은 ‘이윤’을 목적으로 환경을 망가뜨려 왔기 때문이다.

황양택 정읍시농민회장은 “스마트팜은 밭작물을 키울 뿐 식량작물을 재배할 순 없다”면서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지면, 전 국민의 식량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이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우려했다.

기후재난 최전선에 있는 농민들은, 농민만 살자고 정부 대책을 요구하지 않았다. 국민의 기본권인 먹거리,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농정>은 갑진년 새해, 농민들이 겪고 있는 기후재난 실태, 정책과 제도를 짚어보면서 기후재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농정 대전환 방안을 모색해 본다. 농민을 구하는 것이 모두를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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