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사과 쓸어간 냉해·우박·호우 `3중고' … 재해보험금은 ‘새발의 피’

  • 입력 2024.01.01 00:00
  • 수정 2024.01.01 00:1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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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경북 예천군에서 농사짓는 박성훈씨가 자신의 저온저장고에서 저장하고 있는 사과들 가운데 냉해를 입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경북 예천군에서 농사짓는 박성훈씨가 자신의 저온저장고에서 저장하고 있는 사과들 가운데 냉해를 입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경북 예천군 은풍면에서 25년째 사과를 키우고 있는 박성훈씨는 지난해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듯 농사를 지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로 인한 피해가 연중 계속됐기 때문이다. 4월이 다 지나갈 무렵 때 아닌 한파가 등장하고, 우박은 6월과 10월 두 번이나 쏟아져 박씨의 사과들을 수시로 괴롭혔다. 지역에 산사태까지 부른 여름철 집중호우조차 이제는 그저 연중 일어나는 사례들 가운데 ‘하나’로 치부해야 할 정도가 됐다.

“아직 추워야 할 3월 중반에 날씨가 이미 따뜻해져버려요. 그러니 잎이 나오려고 막 폼을 잡고 있다가, 꽃 필 4월 달 들어서 영하 4도, 5도까지 떨어지니 나무가 완전 정신을 못 차리는 거에요. 이거는 뭐 인력으로도 안 되는 거고.”

4월에 ‘한파’ 수준의 추위가 찾아오는 일은 2021년부터 있었다. 4월 한파특보 발령이 가능해진 2004년 한파특보 개정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 이전엔 마지막 한파가 가장 늦어야 3월 하순 초입이었는데, 불과 2년 만에 또 다시 4월 한파를 겪은 것이다.

박씨가 키우는 품종들 가운데 홍로의 경우, 필지에 따라선 나무들이 지난해 날씨에 도저히 몸을 가누지 못한 끝에 5월에 들어 두 번째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일조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늦깎이 사과가 잘 클 리 없었다. 평년작 수준일 때 이 농장의 생산량은 12평 규모 저온저장고 하나를 가득 채우고 또 다른 한 곳에도 절반가량을 채울 정도였지만, 올해는 그 절반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해 창고 하나는 전원을 아예 내려버렸다. 궤짝에 담긴 사과들도 상품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과들이 많았다.

“강원도처럼 좀 추운 지역에서 봄철에 쓰는 방법들, 이제 올해(2024년)부터는 그걸 무조건 해야 한다고들 다 난리에요, 주변에서. 돈이 많이 드는 게 문제죠. 저도 내년에 1차적으로 피해가 심한 지역에 방상팬을 4기 정도 설치하려고 얼마 전에 (설치업자에게) 연락을 했어요.”

박씨는 ‘방상팬’ 설치를 필수로 여기는 농가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씨의 사과밭 전체에 방상팬을 설치하면 지자체 보조를 받더라도 대략 3,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다. 이것만으로 기후위기에 대처가 가능하다면 사실 그 정도의 투자는 큰일이 아닐 수 있다. 문제는 넘어야 할 고비가 냉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씨는 이점이 농가들로 하여금 투자를 주저하게 만든다고 힘 줘 말한다.

“봄이 지나고 여름에는 비가 거의 20일 가까이 온 것 같아요. 뿌리가 활동을 못하니 사과에 문제가 많이 생기죠. 여름사과나 중생종은 낙과가 많이 생기고 남은 것들도 병에 시달립니다. 탄저, 무름병…. 그걸 버티니 이제는 또 우박을 맞는 거죠. 크게 맞아서 상처가 나면 저장도 안돼요. 그러다보니 이제 나이도 60이 넘었는데 농사를 늘리거나 선뜻 투자하기가 좀 그러네요. 그냥 있는 거 하면서 힘들면 하나 둘 처분한다, 이런 마음이 생겨요.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끝까지 할 때까진 해봐야 하는데….”

 

기댈 수 없는 보험 … 갈수록 신뢰 하락

과수 농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매년 1,000만원 내외의 돈을 들여 가입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의 배신이다. 경북의 또 다른 사과 주산지 청송군에서 만난 농민들은 빈번한 기후 피해가 농민의 잘못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발생했을 때의 대처도 사실상 불가능한데 보험제도는 여전히 농민에게 불리한 내용 투성이라며 제도의 불합리함을 강하게 토로했다.

“어디 할증뿐입니까. 지난해 피해가 있었다고 자기부담비율을 올려야 하는 재해보험이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에 있어요. 그래서 농민들이 항상 하는 말이 그거에요. ‘정부랑 지자체에서 보험가입비 지원해서 보험사 주지 말고, 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냥 그 돈으로 차라리 농민을 직접 지원해라’.”

지난해 겨우 반타작을 했다는 김상탁씨의 말이다. 가령 농가가 정부·지자체 합산 80% 보조를 받아 1,000만원을 내고 보험에 가입했다 가정했을 때, 보험가입금으로 들어가는 금액은 총 5,000만원이다. 차라리 이를 보험가입에 지원하지 말고 정부가 뒀다가 피해발생 농가에 정책자금으로 직접 쓰라는 얘기다. 농민들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유는 큰돈 들여 보험을 가입해도 터무니없는 보상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험이 모든 수입과 생계를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현실성 있는 금액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제 밭의 가입금액이 총 6,000만원이다, 그러면 농사가 설령 100% 망한다고 해도, 죽었다 깨어나도 6,000만원은 받을 수가 없는 구조에요. 보상단가도 낮고, 거기에 자기부담금 빼고, 뭐 빼고. 그러면 피해량에 비해 보험금이 적으니 힘든 농가는 그 다음해에는 보험을 아예 포기하게 되고, 그럼 재해 대응 정책은 사실상 없는 거죠.”

현재 사과 도매가격이 kg당 5,000원이 넘는 수준에서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심상국·임형준씨는 현장 농가들이 이해할 수 없는 농가 착과량 산출과 현실에 맞지 않는 보상단가(과수 평균 가격) 책정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농가들이 착과감소로 인해 받는 보험금은 kg당 1,900원 수준이다. 여기에 손실량 중 자기부담감수량은 또 제하고, 가입시 선택한 보장수준이 50%, 혹은 70% 수준이라면 나머지 50%, 30%는 또 보상에서 제외된다.

‘달려는 있되, 피해가 발생한’ 과실에 대한 보상방법도 농가들이 보기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임형준씨는 올해 크게 두 차례나 발생한 우박피해에 대해 보험의 보장성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고 비판했다.

“우박피해가 뉴스에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우박을 맞아도 보상 받을 게 하나도 없어요. 우박피해를 100% 인정받으려면 사과가 우박을 맞고 쪼개져야 해. 예를 들어 한 대를 맞았다, 그럼 아직 50%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상처 난 그 사과가 출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박 피해를 보상 받으려면 피해조사를 마칠 때까지 과실을 나무에 달아 놓아야 하는데, 상처가 난 과실을 계속 매달아 놓자니 탄저병이 무섭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은 원인의 직·간접을 따지지 않고 병충해로 발생한 손해를 전혀 보상하지 않는다(복숭아 제외). 정부 농업연구기관조차 병해 확산의 원인을 집중호우로 인한 고온다습한 여름날씨와 잦은 우박으로 지목하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모순적인 지점이다.

 

“재해 대응, 한줌 농민만으로 힘들어”

농민들은 농작물재해보험의 ‘정상화’에 대한 열망을 쏟아냄과 동시에, 정부가 재해 대응에 있어 적극적인 자세로 개입하고,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발굴함으로써 기후위기에 전면으로 맞서는 농민들을 보듬어 달라고 주문했다.

“자연재해는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면 더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을 텐데, 그렇다면 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최대한 개입하고 노력해야 정상이죠. 결국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거에요. 망해가는 국가산업 회생시킨다고 수십조원씩 쏟아 부으면서, 기껏 해봐야 농민들이 받는 건 직불금하고 면세유 정도인데도 손가락질 받고. 가격 오르면 소비자 물가 잡는다고 두드리니 답답할 뿐이에요(김상탁씨).”

“정부에선 요즘 ‘스마트팜’이 마치 우주에서 떨어진 정답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는데, 농사짓는 입장에선 30~40년 전부터 원예 버섯에서 하던 걸 그냥 ‘업그레이드’한 정도로 보여요. 온실 속에서 자라는 작물은 노지에서 자라는 작물보다 환경 적응성이 약하고 시설로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의 변화가 왔을 땐 회복 불가의 타격을 입습니다. 연구기관이나 지자체가 확실하게 ‘이게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제시하면 농가들이 따라갈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아쉽고 부족한 거에요(박정희씨, 버섯·사과 재배).”

“산업화가 꾸준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분야는 어찌 됐든 간에 제조업이잖아요. 자유무역협정(FTA)의 피해보상 논리랑 비슷한데,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농민들이에요. 농업은 환경과 기후에 의해 생육이 저하되고 병의 발생양상 자체가 달라지는데, 그렇다면 이득을 본 분야에서 거둔 세금을 피해 보는 분야에 써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심상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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