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1번지 성주, 일조량 부족에 생산량 줄어…‘이상기후 탓’

발효과 속출에 발육 부진까지 예년 견줘 출하장마저 ‘썰렁’

농식품부, 저 일조량 피해 재해 복구비 지원·피해조사 돌입

  • 입력 2024.03.22 09:02
  • 수정 2024.03.24 20:4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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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금 나온 꽃들도 전부 시원찮다. 줄기에도 꽃이 많이 왔다. 줄참외라꼬, 꽃들이 마디에 다닥다닥 붙여서 나오는 거다. 그러면 참외가 밀감 맨키로 동글동글하게 달린다. 우리 산악회 회장님은 워낙 따내삐니께네 입이 다 헐었는데 참외꽃 따내삐면서 입 트기는 처음이란다.”

지난 19일 경북 성주군 선남농협농산물 산지유통센터에서 만난 농민 정차섭(58)씨가 말했다. 줄참외에 물참외(발효과), 착과불량, 생육지연 등 참외가 심상치 않다. 출하기가 본격 시작됐지만, 이곳은 물론 이날 경매가 진행된 인근 선남농협 참외집하장도 한산한 편이었다. 이날 만난 농민들은 평년에 견줘 작황이 많이 안 좋다고 전했다.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데다 연이은 강우까지 겹친 2월 날씨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성주군에 따르면 현재까지 참외 생산량은 평년 동기보다 30% 적다. 성주군 담당자는 “50년씩 영농경력 있는 분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다. 수정됐어도 ‘흘러내린다’라고들 한다. 그나마 생산된 것들도 발효과로 다 빠져 버리니 출하량이 감소한 거다. 참외는 2월이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한 달 일조량이 반토막났고 비도 많이 왔던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성주군은 지난달 이례적으로 농민단체, 농협과 비상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지난 18일 선남농협 참외집하장에서 경매 대기 중인 참외들. 참외를 싣고 온 농민들은 '평년에 견줘 경매량이 많이 줄었다'라고 전했다. 
지난 18일 선남농협 참외집하장에서 경매 대기 중인 참외들. 참외를 싣고 온 농민들은 '평년에 견줘 경매량이 많이 줄었다'라고 전했다. 

농민 이재동(58,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씨는 “비대위에서 농민들은 ‘재해 인정과 대책 강구를 중앙정부에 건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어 “일조량 부족에 겨울장마, 따뜻할 때와 추울 때 온도 차도 너무 컸다. 사람도 날씨가 오락가락하면 감기 걸리듯 작물도 병에 많이 걸린다. 이상기후가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양상인데, 최근 3년이 더욱 그런 거 같다. 친환경으로 참외 농사지은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런 적은 딱 두 번 있었다. 그땐 그래도 친환경 농가만 문제였는데, 지금은 전체가 다 문제다”라고 말했다.

참외 겉의 세 줄이 물 위에 떠오른 정상과(맨 아래쪽)와 완전히 가라앉은 발효과 모습.  
참외 겉의 세 줄이 물 위에 떠오른 정상과(맨 아래쪽)와 완전히 가라앉은 발효과 모습.  

이씨는 그 전해와 똑같이(12월 20일) 참외를 심었는데, 지난해보다 보름 정도 첫 수확이 늦어지고 있다. 농가 전반에선 발효과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발효과는 겉으론 표시가 안 나 물에 담가 봐야 안다. 이씨는 참외 하나를 물에 띄우며 “깔랑깔랑 요래 뜨거든. 그래서 우린 깔랑이라 하는데 이래 떴을 때 딱 세 줄(참외 겉의 줄)이 떠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발효과라면 가라앉는다.

문제는 이뿐 아니다. 적은 일조량과 다습한 날씨에 뿌리까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병해도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다. 잎사귀가 충분히 광합성을 하지 못해 잿빛곰팡이와 노균병도 찾아왔다. “뿌리가 깊이 못 내리고 다 죽었다. 날씨가 뜨거워지면 망 위에 올라온 잔뿌리가 시들어 버리는데 그럼 꽃이 안 나온다. 날씨가 좋아진대도 이번에 온 타격은 아무래도 크다. 올해 같은 해는 진짜 처음이다. 약을 쳐도 비와 뿌면 다 헛일이다.” 정차섭씨의 말이다.

근본적으로 이상기후로 인한 문제는 농민이 노력을 다한다고 해결할 순 없다는 뜻이다. 이재동씨도 “약을 쳐도 안 되잖나. 전보다 더 많이 치는 데도… 그러니까 생산비만 자꾸 더 들고 약값이고 인건비고 다 올라가제. 다들 죽겠다 한다”고 전했다.

농민들의 우려가 큰 건 참외의 본격 출하가 이제 막 시작됐고, 2월 날씨 여파가 이후 출하량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 긴장을 놓을 수 없어서다. 참외의 출하와 판매 소득은 3월 하순부터 6월 하순에 각각 70% 이상, 90% 정도가 집중돼 있다(2023년 성주 참외 유통 현황).

이기로 선남농협 상무(APC센터장)는 출하량 감소 문제가 4월 10일쯤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날씨 영향의 결과는 한 달 이후에나 나온다. 2월 말, 3월 초에도 3~4일씩 비가 왔으니 그 영향이 끝나는 4월 20일쯤에야 정상과가 좀 더 나올 것 같다. 문제는 뿌리 발육이다. 잔뿌리가 있어야 세력이 돼서 계속 수확하고 착과량도 늘어나는데 습도가 높으면 잔뿌리가 다 상해버린다. 뿌리 자체가 녹아서 원뿌리만 남는 거다. 지금 낮인데도 가보면 이불을 올려 놨다(뿌리 발육을 위해). 밤에 보온용인데 그늘막으로 쓴다. 이를 감안하면 4월 이후라도 평년만큼 정상화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0년도 냉해 이후 이런 피해는 처음이다. 올핸 습하기까지 해서 그때보단 영향이 더 있다고 본다.”

선남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내 선별장 세척기에 담긴 참외들. 물에 가라앉는 발효과는 이 과정에서 걸러진다.
선남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내 선별장 세척기에 담긴 참외들. 물에 가라앉는 발효과는 이 과정에서 걸러진다.

출하량 감소는 농가소득과 직결된다. 성주군에서 전국 참외 생산량의 대부분이 나오는 만큼 참외농가로선 매우 민감한 문제다. 2022년 기준 경북의 참외 생산량은 전국의 93.9%(통계청, 20만495톤 중 18만8301톤)로 압도적이다. 이 생산량의 대부분은 성주군에서 나온다(<2022 성주 통계연보>, 경북 생산량의 96.5%). 지난해 기준 성주 참외 농가 수는 3809호, 조수입(필요 경비를 빼지 않은 수입)은 6014억원, 수출량은 16억8200만원(464톤)에 달한다.

이기로 상무는 올해 참외 가격이 지난해 동기 대비 20~30% 오른 수준이지만 출하량 감소로 농가마다 수입 격차가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개화·수정 시기에 따라 수입 차이가 많다. 2월 개화기에 수정했던 농가 중엔 발효과로 수입이 아예 바닥인 경우가 있고, 그 전에 수확하거나 수정한 농가는 좀 덜하다. 잘된 농가는 입이 귀에 걸리지만 전체적으로 안 좋으니 티를 못 내고, 못한 농가도 티는 안 내지만 머리끝까지 화나 있다. 농민 조합원들 만나기가 조심스럽다. 모두가 비슷하게 잘되면 서로 인심도 나는데 올핸 그렇지 못해 힘들다.”

농산물 가격 상승이 농민 주머니 사정까지 곧바로 좋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토로도 이어졌다.

정차섭씨는 “농산물이 조금만 비싸다카면 (정부가) 수입이고 뭐고 난리법석인데, 그카지마라 안카나. 비쌀 땐 비싼 대로 좀 먹고…”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재동씨도 “정부가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 푼다는데 소비자들은 쿠폰·바우처 등으로 가격 할인을 받겠지만 실제로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며 씁쓸해했다.

한편 그간 저 일조량 피해를 놓고 재해 지원 여부를 검토해 왔던 농림축산식품부는 지자체 보고와 전문가 의견 등을 통해 전국적 피해가 확인됐다며 피해조사를 통해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피해와 지원 내역은 4월 중하순쯤 윤곽이 나오며, 국비 집행은 5월 초쯤으로 예상돼 농가에 실제 지급될 때까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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