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량 부족에 시설작물 피해 확산 … 수확량 급감 '막막'

생육부진에 곰팡이병·역병까지 덮쳐도 속수무책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데 재해보험마저 미적용

  • 입력 2024.03.07 19:37
  • 수정 2024.03.07 21:05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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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최근 딸기·수박·토마토 등 시설작물이 생육 부진과 병해에 시달리는 가운데,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피해 농가들은 발병 작물을 대량 폐기하고 방제에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고 피해가 더 확산할 수도 있어 우려가 큰 상태다.

농민들은 원인을 일조량 감소와 연이은 강우로 보고 있다. 지난 5~6일 충남 부여와 전남 담양에서 만난 농민들은 “지난겨울부터 유난히 햇볕이 없었고, 생육 부진과 병해 양상도 평년과는 다르다”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최근 3개월(2023년 12월 1일~지난달 28일)간 일조시간은 평년 509시간보다 98시간 적었다(평년 대비 80.7% 수준). 일조시간 감소가 100시간을 훌쩍 넘어서는 지역도 여럿이다. 농촌진흥청(청장 조재호, 농진청)이 작성한 ‘2023~2024년 겨울철 주간 농업기상정보’를 보면 이처럼 지난겨울 일조시간은 크게 줄었고 강수량은 평년보다 약 2.5배 많았다.

충남 부여군 초촌면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김성덕(63)씨는 지난달 29일 200평짜리 시설 4동 가운데 1동의 딸기를 전량 폐기하고 갈아엎었다. 남은 3동도 상황을 봐서 2주 안에 갈아엎을 생각이다. 평년이라면 한창 딸기가 열리고 수확할 때지만, 지난 5일 찾아간 김씨의 딸기밭은 꽃이 별로 없고 딸기도 거의 달리지 않았다.

김씨는 “생육이 부진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끝난 거다. 평년보다 50~60% 정도 생산량이 줄었다. 나는 고랑까지 빗질할 정도로 깔끔하게 관리하는 편인데 올핸 망했다”라며 “딸기는 육모 성장기와 수확기가 겹치는데 육모 때도 장마가 길고 폭염이 계속되는 등 날씨가 안 좋았다. 아무리 시설을 잘해 놔도 자연이 도와줘야 농사가 가능한데, 안 좋은 날씨가 이어지니 더 안 좋아진 거다”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윤우하씨의 시설하우스에서 폐기하기 위해 모아 놓은 딸기에 잿빛곰팡이가 피어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윤우하씨의 시설하우스에서 폐기하기 위해 모아 놓은 딸기에 잿빛곰팡이가 피어 있다. 한승호 기자 

“일조량은 왜 천재지변이 아닌가. 보험 미적용 납득 안 돼”

수박 농가도 생육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충남 부여군 장암면에서 1동당 250평짜리 시설 9동에 수박을 키우는 유재석(59)씨는 1월 말 정식한 수박의 생장이 현재 약 7~10일 정도 늦는다고 전했다. 유씨의 지인은 지난해 12월 정식했지만 수정이 안 돼 12동의 수박을 모두 뽑아내고 다시 심는 중이다.

유씨는 “얼마 전 비가 5일 동안 계속 내렸다. 보통 5일이면 줄기가 두 뼘 정도 자랄 수 있는데 이때는 반 뼘에 그쳤다. 주변에서도 대체로 수박이 안 큰다고 한다”라며 “일조량이 적어 넝쿨이 뻗어 나가질 못하고 수박이 나와야 할 마디에서 못 나온다. 이런 상태면 수박이 와도(마디에서 나와도) 예쁘지 않다”라고 우려했다. 정상적으로 생장해 수정까지 진행돼야 하는데 생육이 부진하면 줄기만 웃자라고 꽃도 기형으로 피어 결국 수박의 품위가 떨어진다는 거다.

유씨는 농작물재해보험 보장 대상 자연재해에 일조량이 포함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조는 인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비가 많이 오면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냉해라면 난방이라도 하겠지만 햇볕은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 전등을 달기도 하지만 그거론 턱도 없고 농가마다 다 설치할 수도 없다. 5일 연속 흐리면 도저히 손쓸 수 없다. 이거야말로 천재지변 아닌가. 냉해는 (보장)되는데 일조량은 안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라며 한숨지었다. 이어 유씨는 12동을 갈아엎은 지인의 사례를 들며 “보험을 적용해 하다못해 못값이라도 지원해야 한다.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석 달을 헛고생한 것 아닌가. 못값에 인력비만 1,200만원(1동당 100만원)이 날아갔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보험 대상 자연재해(원예시설)는 태풍피해·우박피해·동상해·호우피해·강풍피해·냉해·한해·조해·설해·폭염·기타 자연재해로 일조량은 명시돼 있지 않아 농업재해 인정이 관건이다.

지난 6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윤우하씨의 시설하우스에서 농민들이 일조량 부족으로 잿빛곰팡이병이 발생한 딸기의 꽃받침 등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윤우하씨의 시설하우스에서 농민들이 일조량 부족으로 잿빛곰팡이병이 발생한 딸기의 꽃받침 등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일조량 부족에 ‘유례없는 병해 양상까지’

농민들은 겨울철 일조량 부족이 생육 지연뿐 아니라 병해의 주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찾아간 전남 담양군 방울토마토 농가와 딸기 농가는 각각 역병과 잿빛곰팡이병이 덮쳐 더 이상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신현호(71)씨는 수북면에서 5동(900평×2동, 700평×3동)에 방울토마토를 키우는데 최근 역병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다행히 700평짜리 3동은 수확이 끝났지만 900평짜리 2동은 지금까지 3번밖에 수확하지 못해 상심이 컸다. 생산량은 평년보다 7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봤다.

신씨는 “겨울 내 기름값·전기료·인건비 다 들였고 일은 일대로 다 했는데 딸 무렵에 이 지경이니 어떻게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건지려고 방제해도 효과가 없다. 일기라도 좋으면 번지는 속도가 좀 느려지지만, 지금처럼 비가 잦고 흐리면 전염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 최근 십수 년 새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올해 유난히 심하다”라며 “수확기라 더 속상하다. 차라리 어리면 뽑아버리고 다른 거라도 심겠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들어선 처음으로 방울토마토 시세가 좋은 편이지만 수확량이 현저히 적어 수입을 기대할 수도 없다. 신씨는 “생산비 다 제하고 나면 올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전남 담양군 수북면 신현호씨 시설하우스의 방울토마토에 역병이 번져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일 전남 담양군 수북면 신현호씨 시설하우스의 방울토마토에 역병이 번져 있다. 한승호 기자 

고서면에서 시설하우스 4동(1동당 200평)에 딸기를 키우는 윤우하(47)씨의 농장 입구는 잿빛곰팡이가 핀 딸기가 담긴 대형 봉지로 가득했다. 마침 발병 부위를 제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윤씨는 “딸기 농가에서 3~4월은 딸기가 가장 많을 때인데 올핸 딸기 구경하기가 어렵다. 석 달 동안 생산량이 평년의 10%밖에 안 된다. 더 문제는 앞으로도 수확할 딸기는 없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연일 흐린 날씨로 벌들이 활동을 멈추면서 수정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정된 것도 대부분 ‘불량’이다. 그런 가운데 시설 전체에 잿빛곰팡이병까지 덮친 거다. 윤씨네만이 아니다. 이 일대 딸기 농가들이 처한 상황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농가가 전체적으로 잿빛곰팡이를 맞아 본 적은 없다. 가끔 농가마다 일부 발병하곤 했지만, 그건 보통 습기를 잘 관리하지 못해서였다. 발병 전후로 방제도 엄청 신경 썼지만 소용없었다. 윤씨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이상기후로 보는 이유다.

윤씨는 “보장 대상인 냉해는 기온이 떨어진 데이터를 근거로 식물이 아프면 보험을 들어주는 거 아닌가. 잿빛곰팡이병은 일조량과 습도가 중요 원인이다. 농가가 환경 개선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평소보다 일조량이 현저히 적어 피해를 봤다면 마찬가지로 보장돼야 한다. 농사 경험상 이 정도 피해는 (인위적) 관리 환경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생육 부진을 보이는 충남 부여군 장암면 유재석씨의 수박. 평년이라면 왼쪽의 손이 가리키는 부분까지 줄기가 뻗어 있어야 한다. 
지난 5일 생육 부진 상태인 충남 부여군 장암면 유재석씨의 수박. 평년이라면 왼쪽의 손이 가리키는 부분까지 줄기가 뻗어 있어야 한다. 

이번 병해에 대해 담양군농업기술센터 담당자도 “연속적으로 햇볕이 부족하고 비가 많이 오면 곰팡이병(역병도 곰팡이병의 일종)이 많이 발생한다. 기상 상황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문제는 병해의 확산이나 피해 규모가 평소와는 다르단 점이다. 이에 윤씨는 “기후위기 시대다. 재해보험에서 자연재해의 보장 범위를 더 넓히고, 지자체도 조사와 데이터 축적을 통해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현재 원예시설 재해보험은 원인과 상관없이 병해충으로 발생한 손해는 보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는 자연재해성 병충해 상품(농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방제할 수 없는 병충해에 부합하는 품목·병해충을 선정해 보장)을 확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1차 농업재해보험 발전 기본계획(2023~2027년)’에 따르면, 농작물병충해의 경우 2024년까지 손실보상 방안이 마련된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밝힌 보장 확대를 위한 검토 대상 병충해 기준(안)은 △농가의 재해예방 노력만으론 예방이 어려우면서 농가의 방제 소홀 여부 판별이 가능한 병충해 △다수 농가에 걸쳐 피해가 대규모로 발생 △병징이 뚜렷해 해당 병충해 진단이 용이, 전문인력의 손해평가 가능이다. 아울러 수정·착과 등 일조량과 관련된 피해 전반에 대해서도 현재 검토 중이다.

한편 담양군은 전라남도와 함께 농식품부에 농업재해 인정을 건의하고 피해 관련 자료를 송부하는 한편, 보험사에도 공문을 통해 보험적용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담양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올해 2월까지 딸기 출하량은 17.2%(2월엔 36%), 토마토는 31%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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