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란 이름의 ‘기후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

  • 입력 2023.08.10 22:15
  • 수정 2023.08.11 08:5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민가가 있던 폐허에 수해 당시 떠내려온 바윗덩어리들을 모아놨다. 우측엔 넘어진 채 방치 중인 곡물건조기와 붕괴된 창고의 철골 구조물들을 쌓아놓은 게 보인다. 이 마을에선 2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민가가 있던 폐허에 수해 당시 떠내려온 바윗덩어리들을 모아놨다. 우측엔 넘어진 채 방치 중인 곡물건조기와 붕괴된 창고의 철골 구조물들을 쌓아놓은 게 보인다. 이 마을에선 2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김구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부의장이 피해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김구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부의장이 피해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8일 수해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민가. 거센 물길에 망가진 채 뼈대만 남은 상태다.
지난 8일 수해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민가. 거센 물길에 망가진 채 뼈대만 남은 상태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전신주가 폐허가 된 땅에 쓰러져 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전신주가 폐허가 된 땅에 쓰러져 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폐허가 된 이 땅은 원래 과수원이었다는 게 지역 주민의 설명이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수해 피해현장. 폐허가 된 이 땅은 원래 과수원이었다는 게 지역 주민의 설명이었다.

그것은 수해라는 이름의 ‘기후재난’이었다. 농민들은 과거에도 수해를 자주 겪었지만, 지난달 14~15일 맞닥뜨렸던 수해는 그들로서도 난생처음 맞이한 것이었다.

‘성장’이란 가치에 집중한 인간의 활동은 폭우 양상마저 과거보다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무분별한 산지 개발(임도 조성, 태양광 설치, 과도한 벌목 등)은 산사태로 인한 주민 피해를 과거보다 훨씬 키웠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수해 발생 뒤 한 달, 기후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어떤 이야기들이 남았을까. 16명의 사망자(해병대의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포함)와 2명의 실종자를 뼈아프게 가슴에 새긴 경북 예천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해현장의 상흔을 담았다.

피해현장의 주민들은 아직 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풍 `카눈’으로 인한 피해까지 고스란히 맞닥뜨릴 위기에 처했다.

산사태에 직격탄 입은 예천 수해현장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지난달 14~15일 수해 발생 시 산사태로 2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곳이다(2명 모두 8월 10일 현재까지 미발견 상태). 산사태 발생 당시 거대한 바위들과 나무들을 한가득 품은 물길이 벌방리를 덮쳤다. 세찬 물길에 떠내려온 바윗덩어리와 나무는 마을 내 민가와 창고, 과수원을 파괴했고, 농사용 장비들을 망가뜨렸다.

지난 8일 방문한 벌방리는 여전히 폐허였다. 동네 곳곳엔 산사태로 굴러떨어진 바윗덩어리들이 쌓여있었다. 이 바윗덩어리들은 지난달 수해 당시 원래 있던 산에서 1km 이상 물길에 떠내려와 마을을 덮쳤던 것들로, 복구작업 참가자들이 곳곳에 모아놓은 상태였다.

벌방리에서만 10여 가구의 가옥이 완전히 파괴되거나 반파됐다. 가옥 중엔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곳들도 눈에 띄었다. 완파를 면한 가옥들도 담벼락이 무너지거나 창문이 깨지는 등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원래대로라면 서 있어야 할 곡물건조기는 쓰러진 채 마을 내 가옥 터 옆쪽에 방치돼 있었고, 그 옆엔 철골 구조물을 쌓아놓은 게 보였다. 수해로 파괴된 창고의 구성물을 수습해 한 군데 쌓아놓은 것이었다. 다른 가옥 터엔 전신주가 쓰러져 있었다. 벌방리 안쪽, 즉 산으로 더 깊이 들어간 구역은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아, 포크레인이 여전히 돌덩이들을 들어내는 중이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전신주가 쓰려져 있는 폐허 위엔 원래 집들이 있었다. 이 마을에선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전신주가 쓰려져 있는 폐허 위엔 원래 집들이 있었다. 이 마을에선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산사태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쌓여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산사태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쌓여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수해 피해를 입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다.
지난 8일 방문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수해 피해현장. 수해 피해를 입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다.

이어서 방문한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는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곳이었다. 가파른 산 중턱에 위치한 백석리는 산사태로 직격탄을 입었다. 오르막길 옆에 층층이 조성된 계단식 공간은 “여긴 원래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돌무더기와 각종 폐기물만이 집터를 가득 메웠다.

백석리에서 목숨을 잃은 다섯 명 중 두 명인 전명배·장병근씨 부부의 이야기를 잠시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전명배씨는 슬로푸드 운동가였다. 전통 장담그기 및 집밥 만들기 등을 통해 시민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전파하고자 노력했던 전씨는 남편 장병근씨의 고향 예천에 2019년 귀농했다. 수해는 자연인으로서 여생을 살아가려 했던 전씨·장씨 부부의 열망을 앗아갔다. 슬로푸드 운동 주체들은 이들 부부의 부고를 접하고 슬픔에 빠진 상황이다.

“농사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

수해를 당한 농민들은 다시 농사를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다.

예천 감천면 벌방리 주민 유광호씨가 옆동네인 영주시 장수면에서 농사짓던, 그리고 그의 아들이 후계농으로서 농사를 시작하려 했던 3,500평 사과농장도 수해로 완전히 매몰됐다. 과수원은 돌덩이와 폐기물로 뒤덮였다. 올해 사과농사가 잘 되던 편이었고 묘목 상태도 좋아 수확기를 기대하고 있던 유씨와 그의 아들은 참담한 심정이다.

유씨는 “사과농사 짓는다고 올해에만 투자한 게 1,000만원이었는데 그중 단돈 10원도 못 건지게 됐다. 산사태로 과수원은 흙더미에 뒤덮였고, 3,500만원 들여 장만한 SS기(방제작업용 기계) 등 농기계는 다 망가졌으며, 창고도 완전히 파괴됐다”며 “다시 사과밭을 만들려면 최소 1억5,000만원은 투입해야 한다. 묘목값이 한 주에 2만원 안팎이니, 3,000주의 나무를 다시 심으려면 묘목값만 6,000만원은 들어갈 것”이라고 증언했다.

유씨는 이어 “영주시에 과수원 폐기물 처리와 객토작업을 요청했는데, 시에선 폐기물은 치워주겠다고 하나 객토까진 어렵다더라”고 한 뒤 “과수원을 뒤덮은 돌덩이를 치울 때 덤프트럭 50대에 실릴 분량의 돌덩이가 나왔다”고 밝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도 있었다. 산사태 당시 과수원을 휩쓸고 내려온 나무들이 과수원 내에 꽂힌 파이프들에 걸려, 아랫마을로까지 떠내려오지 않았다. 만약 이 파이프들이 없었다면 아랫마을은 훨씬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는 것이다. 유씨는 “마을 주민들이 내게 여러모로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시 용안면에서 농사짓는 김연기씨가 지난달 31일 수해로 완전히 침수된 뒤 피해가 발생한 논을 둘러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북 익산시 용안면에서 농사짓는 김연기씨가 지난달 31일 수해로 완전히 침수된 뒤 피해가 발생한 논을 둘러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북 익산시 용안면에서 농사짓는 김연기씨가 지난달 31일 수해 피해로 인해 폐기한 수박을 쌓아둔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북 익산시 용안면에서 농사짓는 김연기씨가 지난달 31일 수해 피해로 인해 폐기한 수박을 쌓아둔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시선을 전북 익산시 용안면으로 돌려보자. 용안면에서 친환경농사를 지어온 김연기씨는 지난달 수해로 수박·양파 등을 재배하던 밭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김씨의 농장 한 켠엔 폐기한 수박들을 매몰한 구덩이가 눈에 띄었다. 수해로 인해 김씨는 1,600여개의 수박을 폐기해야 했다. 수박 70개를 이틀에 걸쳐 수확한 뒤 나머지 것들을 수확하려던 중 벌어진 사태였다. 액수로 치면 2,000만원 어치의 수박을 폐기한 것이다.

농사 자체가 수포로 돌아간 것도 문제지만, 김씨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수해로 인한 기름·농약 유출이 중장기적으로 친환경농가에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지역엔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농사지으며 벙커C유를 사용하는 농가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수해 과정에서 기름 유출이 발생했다. 기름과 농약이 섞인 물이 이 일대 농지를 마구잡이로 뒤섞은 만큼, 향후 농지 토양검사를 하면 무조건 농약이건, 기름 성분이건 검출될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농민 입장에선 이대로 농사 재개하면 무조건 인증 취소다. 최소 2~3년간은 친환경농사를 지을 수 없는 거다.”

이 수해의 이름은 ‘기후재난’

김연기씨는 1987년에도 수해를 겪었다. 그러나 올해 수해는 당시 수해와는 비교를 불허한다는 게 김씨의 증언이었다.

“최소한 1987년엔 도로까지 물에 잠기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도로도, 농지도 완전히 물에 잠겨버렸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배를 타고 원래 평지였던 곳을 지나 농장으로 와야 했다. 이 정도의 폭우는 익산에서 처음이다.”

예천 농민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수해 당일,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흙탕물은 사람 키 높이로 벌방리에 들이닥쳤다는 게 이은경 예천군농민회 부회장의 설명이었다. 이 부회장은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천은 원래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니다. 벌방리도 마찬가지였다. 예년 같으면 비가 좀 온다 해도 이 수로를 통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아니었다. 산에서 쏟아진 물길은 이 수로로 감당할 수 없었고, 마을 한가운데 길을 따라 거세게 내려왔다.”

예천에 거주하는 김구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부의장 역시 “400mm의 폭우가 쏟아진 건 예천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기후위기 심화 아니면 이번 폭우의 원인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 뒤 “산사태 자체는 피하기 어려운 재난이었지만, 무분별한 산림 개발이 산사태 피해를 가중시킨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 설치 및 벌목, 산지 태양광 설치 등의 산지 개발이 무분별하게 이뤄짐으로 인해 산사태 피해가 더 커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 7월 19일자 <[최병성 리포트] 산사태 피해지역의 끔찍한 공통점 … 산림청 무슨 짓 한 건가>를 통해, 산림청이 나무를 자르고 길(임도)을 내자 빗물이 한 곳으로 집중돼 대형 산사태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김구일 부의장은 “자연림이 잘 보전된 산지는 상대적으로 산사태 피해가 덜했다”고 증언했다.

산사태로 잃은 소중한 존재가 너무나 많지만, 피해를 키운 개발논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산사태 발생지역 인근인 예천군 감천면 진평3리를 지날 때, 도로 주변에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을 목격했다. 진평3리에 태양광이 설치되는 걸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무분별한 산지 태양광 설치로 산이 깎이고 나무가 사라져 또다시 산사태 재앙이 반복될 때는, 후회해도 늦을 상황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