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집행·미미한 지원, 속 타는 충남 수해 농가들

특별재난지역 선포 100일 넘었는데 여전히 지원금 일부만 집행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 긴긴 조사에 재난지원 의미 퇴색

  • 입력 2023.11.23 18:42
  • 수정 2023.11.26 19:01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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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 127일(23일 기준)이 지나는 가운데 ‘복구 지원금 지급이 턱없이 늦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7월 19일 수해로 특별재난지역이 된 충청남도(지사 김태흠) 공주시·논산시·부여군·청양군의 일부 수해 농가 목소리다.

이 지역 피해 농가는 정부가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외에도 소득보전지원금(충남도와 시군이 절반씩 부담)을 받는다. 소득보전지원금액은 피해 규모, 영농시설 종류, 재해보험 가입 유무 등에 따라 농가별로 다르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직후 김태흠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피해액 전액 지원' 원칙 아래 △피해액의 50%는 농협을 통해 즉시 지급 △영농시설은 실제 피해액의 80~90% 지원 △건조기 등 농기계와 토양 개량 지원 △농작물 피해는 재해보험 가입자면 보험금 수령액을 뺀 나머지 전액, 보험 미가입자는 지원액 차등 지원을 약속했다. 농민들은 ‘이례적인 지원안’을 환영하며 빠른 지원을 기대했다.

그러나 ‘즉시 지급’이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부분 9월 추석께야 지원금 일부가 지급됐고, 현재도 정산 중이다. 충남도에서는 일찍부터 각 시군에 소득보전지원금 도 분담액을 배정했으나, 시군별 예산 확보와 피해액 산정 등 절차가 길어지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일부 피해 농가에선 ‘이게 과연 재난지원인가, 지급하고도 욕먹을 만하다’라는 토로까지 나왔다.

비교적 피해가 덜했던 공주시는 재난지원금과 소득보전지원금(총 6억8,000만원) 지급을 모두 완료했다. 부여군은 소득보전지원금 22억원 가운데 현재까지 8억원 정도 선지급했고 11월 안에 위로금을 지급한다. 보험 가입 여부에 따른 정산을 마치고 12월 중 최종 지급할 예정이다. 청양군 소득보전지원금은 총 60억원으로 보험 미가입 농가엔 11월 중 지급되지만 보험 가입 농가라면 보험금 정산 뒤에 지급된다. 청양군은 특히 시설농가가 많아 더 늦어질 전망이다. 하우스 농가의 보험금 수령 요건이 하우스를 재시공하는 것이라, 하우스 재설치 뒤 시설 보상 심사가 끝나야 농작물 보험금도 확정된다.

지난 7월 물에 잠긴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인양뜰 일대 모습. 한승호 기자
지난 7월 물에 잠긴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인양뜰 일대 모습. 한승호 기자

정산 과정이 길어지면서 현장에서는 ‘이대로 지원이 끝나는 것 아니냐’란 우려부터 시군이 예산을 제대로 확보할 지도 걱정하고 있다. 논산시의 경우 재난지원금과 위로금마저 지난 22일에서야 지급했다. 논산시 부적면에서 하우스와 논밭을 경작하는 배형택씨는 “선지급도 지켜지지 않았다. 도지사가 공언했으니 다만 얼마라도 지급되리라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안 됐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배형택씨는 “내내 지급이 안 되다 20일에야 ‘호우피해 재난지원금, 위로금(일부)’이라고 들어왔다. 수해 직후에 지원해야 농가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데 100일이 넘게 지나서 지급하는 게 재난지원인가”라며 “조사 기간이 아무리 오래 걸린다 해도 수해 농가의 다급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랬겠나. 지급하고도 욕먹을 짓이다”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농민들은 ‘시군이 피해규모를 가능한 적게 산정’하려 하거나 ‘피해 농가인데도 행정구역 경계에 걸쳐 있다는 이유로 지원금 지급에서 배제’되는 문제도 있다고 전했다.

청양군 청남면에서 하우스 농사를 짓는 한재호씨는 “도지사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군이 오히려 상급기관보다 더 적게 지원하려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배형택씨도 “피해조사 담당자에 따라 피해액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는 등 일관성이 없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액을 보수적으로 잡으라’는 시의 지침도 내려왔다고 들었다”라며 “시설 작물이 작살났는데도 농약대, 종자대만 나오니 재난지원이라기엔 미미하다”라고 말했다.

한재호씨는 “제방 터진 곳이 부여와 청양의 경계다. 사는 곳은 부여지만 청양에 농지가 있어 피해 입은 농가가 일곱 가구 되는데, 피해 지원 접수를 위해 부여군에 가면 청양군으로 가라 하고, 청양군에선 접수는 다 받아놓고 막상 지원은 군민만 된다고 하더라. 처음부터 양쪽이 협의해서 지원을 어떻게 할지 안내해야지 서로 떠미는 새에 사각지대가 생겨난 거다. 청양군은 최선을 다해 지원한다고 하지만 피해를 보고도 소외되는 농가들이 있다. 피해 농가는 모두 지원하는 게 원칙 아닌가”라고 항의했다.

수해 복구 지원금 집행이 유독 늦어진 데 대해 논산시 농촌활력과 담당자는 “논산시의 피해가 워낙 컸고, 신규 지원 항목이 추가 되면서 조사·정산 과정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청양군 농업정책과 담당자는 “피해가 커서 보편적인 지원만으론 부족하다는 군의 방침에 따라 재난지원금을 증액하고 소득보전지원금도 추가하는 등 최대한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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