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작물 피해 막심 “한 번 물 차면 끝 … 올해 농사 끝장났다”

  • 입력 2023.07.21 17:36
  • 수정 2023.07.23 21:03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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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에 이은 지천 제방 붕괴로 물이 범람했던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일대 시설하우스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지난 17일 인양리 들녘의 한 시설하우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한승호 기자 
폭우에 이은 지천 제방 붕괴로 물이 범람했던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일대 시설하우스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지난 17일 인양리 들녘의 한 시설하우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한승호 기자 
폭우로 물에 잠겼던 괴산군 감물면 구월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버섯재배용 배지가 진흙 등으로 뒤범벅돼 있는 가운데 피해 복구에 나선 김광율씨가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폭우로 물에 잠겼던 괴산군 감물면 구월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버섯재배용 배지가 진흙 등으로 뒤범벅돼 있는 가운데 피해 복구에 나선 김광율씨가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침수됐던 농경지에 물은 거의 빠졌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소강상태였던 지난 18일 찾아간 충남지역은 여전히 호우경보 아래 종일 굵은 비가 쏟아져 복구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침통한 분위기였다. 충남은 이번 폭우 피해가 가장 집중된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날 논산․부여․청양에서 만난 농민들은 모두 “올해 농사는 끝장났다”고 한숨지었다. 물이 빠져나간 하우스는 말 그대로 폐허. 하우스 뼈대가 주저앉았고, 내부엔 흙탕물을 뒤집어쓴 농작물이 나뒹굴며 썩고 있었다. 이번 폭우로 시설 농가들이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 수박․단호박․오이 등 출하 중인 작물은 물론 수확을 앞두고 나날이 씨알이 굵어 가던 멜론 등의 피해가 컸다. 침수 피해가 그나마 덜하다는 벼도 모내기 직후라 병충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일대는 지난 14일 오전 4시경부터 침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15일 밤 11시 42분경 청남면 인양리 지천 제방이 무너지기 전부터다. 이번 수해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데, 지난해엔 작물과 농기계 침수에 그쳤지만 올핸 청남면 대흥리 일대(인양뜰)에 집중해 있는 수박․멜론 하우스들이 대거 무너져 시설 피해까지 겹쳤다. 청남면의 농경지 피해규모(7월 18일 기준)는 매몰 약 5,139ha(비닐하우스 약 2,500동), 축사 80개 농가·3,982두다.

전수병 청남면 청소1리 이장은 수박 출하를 이틀 앞두고 잔금까지 받았지만 침수로 잔금을 모두 돌려줬다. 추석 때 출하할 멜론 하우스 1만5,000평도 모두 침수됐다. 하우스 15개동(3,600평)에 수박 농사를 짓던 한재호씨도 출하를 앞두고 받은 계약금을 토해내야 했다. 한재호씨는 “작물도 작물이지만, 하우스가 붕괴돼 피해가 더 크다. 재해가 반복되니 농사를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논산시 부적면, 논산천 제방을 따라 이어진 농지에서 하우스와 논밭 농사를 함께 짓는 배형택씨의 농지도 지난 14~15일 전부 물에 잠겼다. 이제 막 수확하기 시작한 미니단호박 하우스 2동(600평)은 절반 정도, 서리태(1,000평)․참깨(100평)․넝쿨콩(50평)․비트(50평)는 완전히 침수됐다. 배씨는 “단호박은 아직 3분의 1도 채 수확하지 못했다. 건져볼 수 있을까 해서 매달린 채 놔둔 거랑 새로 나온 열매도 2일 동안 물에 잠겼더니 다 썩어버렸다. (올해 농사는)끝났다고 봐야 한다”면서 “날마다 새벽에 나와 일하던 곳인데 순식간에 일이 없어진 거다. 뒤처리할 일만 산더미다”라며 침통해했다.

배씨는 “옆 농가의 하우스는 오이와 딸기인데, 오이는 수확철이라 피해가 크고, 딸기 하우스엔 작물은 없었지만 수천만원 대의 기계가 침수돼 피해가 막심하다”고 전했다. 인근 연무읍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지인은 딸기 육묘장이 무너져내려 당장 내년 딸기 농사가 막막해졌다.

부여군 옥산면에서 40년 동안 농사지어온 정효진씨(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지도위원). 백마강의 지류인 금천 옆에서 친환경 상추와 부추를 키우던 그의 200평짜리 하우스 9개동은 지난 14일부터 내린 비로 다음날 오전 9시쯤 침수됐다. 상추는 1번 수확해 출하한 상태였고, 여름내내 5번 정도 더 출하할 수 있었지만 “한번 (물)차면 끝나는” 작물이라 비가 그치고 나면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

그는 “그래도 이런 건(채소) 괜찮다. 뽑아내고 다시 심으면 서너 달이면 되지만 1년에 한 번 밖에 안 짓는 쌀은 문제다. 논이고 축사고 완전히 바다 같이 잠겼는데, 벼도 물에 한 번 잠기면 좋진 않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물에 잠겼던 충남 부여군 옥산면 한 시설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상추가 검게 타버린 채 썩어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기록적인 폭우로 물에 잠겼던 충남 부여군 옥산면 한 시설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상추가 검게 타버린 채 썩어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폭우에 이은 지천 제방 붕괴로 물이 범람했던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일대 시설하우스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지난 17일 인양리 들녘의 한 시설하우스에 진흙으로 범벅이 된 수박이 널브러져 있다. 한승호 기자 
폭우에 이은 지천 제방 붕괴로 물이 범람했던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일대 시설하우스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지난 17일 인양리 들녘의 한 시설하우스에 진흙으로 범벅이 된 수박이 널브러져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들 “부실한 치수정책이 수해 더 키웠다”

이날 농민들은 이번에 강우량이 상당했던 건 사실이지만 △평소에도 강우량과 크게 관계없이 지역 내에 침수가 반복되는 곳이 있는 점 △장마철이 임박했고 폭우가 예고됐지만 댐이나 저수지의 저수량을 미리 관리하지 않은 점 △물 흐름에 중요한 배수로 정비(수초 제거)를 제때 하지 않은 점 등을 꼽으면서, 당국의 치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전수병 이장은 “작년에 비해 일일 강우량은 올해가 두 배 정도 많지만, 시간당 강우량은 20~30mm로 지난해의 절반도 안 된다. 이렇게 점차로 비가 오면 지금 배수시설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농어촌공사 청양지사는 이미 침수가 시작됐는데도 펌프를 가동하지 않았고, 정작 가동된 펌프는 수초 더미가 물을 막아 제대로 돌지도 못했다. 장마 전부터 농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는데도 방치하다 피해를 키운 거다”라고 지적했다.

한재호씨도 “부여의 정동배수장은 인양뜰의 대흥배수장 펌프보다 1.5배 정도 규모가 크지만 유역경계가 여기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오히려 이곳(대흥배수장) 펌프가 더 큰 셈이다. 그런데도 여기선 피해가 매년 발생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라며 “지난해에도 수초를 절단만 해놓고 안 치워서 빈 펌프만 돌아가게 했다. 그걸 알면서 올해 같은 상황을 반복했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배수가 안 되니 제방 붕괴 전부터 침수가 시작됐고, 기왕 제방은 무너져버렸으니 수초 문제는 다 묻혀버린 셈이다”라고 일갈했다.

즉 배수시설 규모가 부족하지 않은데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피해를 더 키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재호씨가 지난 14일 새벽부터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이날 새벽 15~30mm 정도의 강우량이었지만 수초로 인해 펌프가 제대로 돌지 않아 침수가 이미 시작됐고, 이는 같은 날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재해 규모만큼 보상 수준 뒷받침 돼야

농민들은 이번 수해 규모가 상당해 복구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농민들은 빚을 내 올해 농사를 시작했지만, 수익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지만, 이미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만큼 재해 보상에 대한 구조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효진씨는 “지금까지 작물 보험은 안 들고 시설만 들었는데 이번 같은 일을 겪으니 그거라도 들어놓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면서 “재난지역 선포나 농작물재해보험이 있지만 실질적인 보장 내용은 너무 미미하다. 여긴 딸기가 주산지인데, 육묘 피해를 본 딸기농가나 벼농가는 1년 농사 버리는 거라 그게 가장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기후 문제가 점점 커지는 것에 비례해 농민․농업 지원정책도 따라가 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농정 당국은 늘 뒷북 치기고 농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구조가 문제”라면서 “재해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지금의 재해보험으론 감당할 수 없다. 피해 규모에 맞게 재해보험제도를 정비하고 근본적으론 농민이 어떤 재해가 일어나도 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재호씨도 “농민이 실질적으로 그나마 보상받을 수 있는 게 농작물재해보험지만, 그마저도 실질적 보상이 아니고 작물을 키우는 과정의 비용까지만 주는 셈이다. 출하까지 비용을 100으로 보면 많아야 30~40을 보상한다. 그러니 보험 들었어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정부의 특별재난지원금도 사실상 정치인들의 장난 같다”면서 “재해보험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보상액을 실질화하고, 정부의 재난지원금도 여기에 귀속해서 피해액의 90~100%까지 보상하도록 개선해야 농민이 농사를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농경지 수해는 전북 김제·익산, 충남 논산·부여, 충북 괴산․청주, 경북 예천·영주 등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20일 오전 6시 기준 정부 집계 피해현황은 농작물 3만4,583ha(침수 3만4,354ha, 낙과 229ha), 농경지 유실·매몰 574.1ha, 시설파손 58.9ha(축사 36.4ha, 비닐하우스 18.2ha, 인삼시설 4.1ha 등), 가축폐사 82만5,000마리(닭 76만9,100마리, 오리 4만4,900마리, 돼지 4,300마리, 소 400마리)다. 피해 규모는 전북·충남·충북·경북·전남 순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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