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소송

수해 책임·보상 둘러싼 청양군 농민들과 농어촌공사 간 소송전

공사, 책임 피하려 대형 로펌·모의실험 동원 … 버거운 농민들

  • 입력 2023.12.01 09:01
  • 수정 2023.12.03 18:12
  • 기자명 김수나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인양뜰 농민들이 한국농어촌공사 청양지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대형 법무법인과 한국수자원공사의 모의실험 결과로 대응하고 있지만 농민들로선 이를 감당하기 역부족이다. 이에 농민들은 “농어촌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농어촌공사의 배신”이란 토로까지 하는 지경이다.

2022년 8월 호우로 농경지가 침수되자 청양지사는 처음엔 “인재”, “늑장 대처”라며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보상에 대한)내부 규정이 없다’며 농민들과의 합의에 나서지 않았다. 피해 농가(61가구,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결성, 대책위)는 ‘농어촌공사의 배수시설 관리 부실’이 수해 원인이라며 지난해 10월 청양지사를 상대로 보상 소송에 들어갔다.

지난해 침수 당시 청양지사는 이미 침수가 시작된 뒤에야 펌프를 가동했다. 인근 두 배수장 가운데 대흥배수장의 펌프 4대 중 3개는 고장 난 상태이기도 했다. 특히 농민들은 당시 강우량(8월 14일 청남면 72.5mm)으로는 침수될 상황이 아니라며 △뒤늦은 펌프 가동과 고장 방치 △배수로 관리 소홀(토사 및 제초 뒤 수초 방치) 등 청양지사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판이 이어질수록 농민들의 시름만 깊어졌다. 농어촌공사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로펌(법무법인(유) 세종)과 한국수자원학회를 등에 업고 ‘배수시설이 정상 가동됐어도 70cm 침수는 불가피하다(당시 실제 침수 깊이는 80cm)’라는 취지로 반박에 나섰다. 즉 당시 강수량과 배수장 설계 기준상 ‘침수가 될 수밖에 없다’란 거다. 현재 배수장 설계 기준은 ‘20년 빈도, 1일 강우량 316.8mm, 24시간 내 70cm까지 침수(수도작 기준) 허용’이다.

대책위는 ‘계획홍수 빈도 20년이던 게 한국수자원학회의 모의실험을 거치자 200년 빈도(홍수가 200년에 1번꼴로 발생할 것을 감안한 배수장 설계)가 됐다’라며 ‘황당하다’란 입장이다. 한재호 대책위 사무장은 “원고 쪽(청양지사) 주장대로라면 지난 9월, 4시간 동안 175mm가 쏟아졌을 때 배수문을 모두 닫고 있어도 되는 상황인 거다”라며 “그러나 당시 확인하니 배수문이 모두 열려 있었고 펌프도 1대 가동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8월 청양군 청남면 하우스가 침수된 모습.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지난해 8월 청양군 청남면 하우스가 침수된 모습.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양측의 공방이 이어지자, 재판부는 농민들도 전문 감정을 받아보라 권했고, 2개월여 끝에 감정인을 섭외했지만 1억6,000만원이 넘게 나온 견적 금액에 고민만 더 깊어졌다. 올해 7월 지난해보다 더 큰 수해를 입어 ‘복구마저 빚내서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재호 사무장은 “이쪽(수리시설) 업계에선 밥줄이 걸린 문제라 농어촌공사와의 소송 건은 꺼렸다. 업체 특성상 대부분 관급 공사를 많이 하니까 기관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면 곤란하다고들 했다”라며 “어렵게 섭외했어도 비용이 너무 비싸서 선뜻 진행할 수도 없다. 복구도 빚내서 하고 있는데, 가구마다 많게는 1,000만원 적어도 몇백씩은 갹출해야 하니 너무 부담스러운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사무장은 “청양지사는 처음엔 최대한 보상하겠다고 해놓고 본사와 논의한 뒤로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막대한 비용이 들었을 모의실험 결과는 그 내용도 황당하지만 결국 농민들에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거다. 농민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도 밝혀내기도 어렵다. 농민을 보호해야 할 공사가 오히려 농민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 꼴”이라며 “대형 로펌과 모의실험 비용으로 차라리 보상했으면 다 해결됐을 것 같다. 그것도 결국 다 세금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대책위는 현재 다른 감정업체를 지정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한 상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