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관리 제대로 안 하고 책임에선 발 빼” 수해 농민들 분노

농어촌공사 청양지사•익산지사 향해 ‘책임 인정•피해 보상’ 촉구

농민들 “늑장 대처로 피해, 책임 피하지 말고 근본 대책 마련해야”

  • 입력 2023.06.23 09:58
  • 수정 2023.06.30 13:5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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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매년 농작물 침수 피해가 거듭되고 있지만, 물관리 당국인 한국농어촌공사(사장 이병호, 농어촌공사)가 배수체계 정비, 농가 피해 보전에 집중하기보단 오히려 책임과 보상을 두고 피해 농가들과 대립하고 있어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피해 농민들은 하나같이 침수를 막으려면 폭우 시 적기에 수문을 열고, 펌프시설을 가동해 원활하게 배수해야 하는데, 농어촌공사는 “이미 침수가 시작된 뒤에야 펌프를 돌리거나(청양), 하류 침수를 막는다며 아예 수문조차 열지 않았다(익산)”고 전했다. 지난 21일 충남 청양군 청남면사무소에서 침수 피해 지역인 청양(지난해 8월)과 전북 익산의 농민(지난달 28일) 5명이 모여, 농어촌공사의 배수 관리 문제를 꼬집었다.

이들에 따르면, 농어촌공사가 수문과 펌프시설을 제때 가동하지 않은 것은 물론 청양지사는 하천 바닥에 토사가 쌓이고 제초한 풀도 치우지 않는 등 평소 배수로 관리도 소홀했다. 익산지사는 대조천 수문을 수십년째 열지 않아 익산시 용동면의 침수가 반복됐다. 이에 지난 2월 용동면장 주관 간담회에서 상류·하류 주민, 익산지사가 유동적인 수문 개방을 합의했지만, 수해 발생 뒤 익산지사는 합의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수해 원인을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과 보상 문제를 결정하는 핵심이라 농민들과 농어촌공사가 각을 세우는 지점이다.

지난해 8월 청양군 청남면 메론 하우스가 침수된 모습.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지난해 8월 청양군 청남면 메론 하우스가 침수된 모습.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청양은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대책위), 청양지사, 충남지역본부가 합동 조사까지 했지만 결국 법정까지 갔다. 피해 농가 가운데 61가구가 현재 청양지사와 소송 중이다. 소송의 핵심은 당시 수해가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인가, 청양지사의 배수관리 소홀에 따른 인재인가다.

전수병 대책위원장은 “당시 청양지사장은 인재라 했고, 청양지사의 전무는 언론에 늑장 대처라고 인터뷰까지 했다”면서 “하지만 지사장이 본사에 다녀온 뒤 180도 바뀌었다. ‘본사와 보상 협의를 했는데 내부 규정이 없다며 현명한 선택을 하셔라’더라. 그래서 소송하게 됐다”고 했다.

농민들은 당시 수해가 인재라고 확신한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한재호 대책위 사무장은 “수문을 열고 펌핑해야 하는데 수문을 닫은 채 펌핑했고, 그나마 4대 가운데 3대는 고장 난 상태였다. 당시 배수장에 가보니 사람도 없고 잠겨있었다. 하우스가 침수되고서야 펌프 1대가 가동됐다. 바로 옆인 부여는 우리보다 비가 더 많이 왔지만, 수문을 열고 펌프까지 가동해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청양지사는 “배수문은 계속 열어놨다가 외수가 들어와 새벽에 닫았다. 배수문에 대해선 농민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라며 “배수장 설계 기준이 20년 빈도(24시간 내 70㎝까지 침수 허용)로 수도작 중심이다. 지대 자체가 낮아 논으로 써야 하는데, 농민들이 거기에 하우스를 해도 우리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펌프를 늦게 가동하긴 했다. 주 배수장인 인양배수장을 계속 가동하고 대흥배수장으로 이동하다 보니 약간 늦어졌다. 근본적으로 배수용량을 키우면 좋겠지만 재정 등 현실적 한계가 있잖나”라고 말했다.

청양군엔 지난해 8월 14일 하루 동안 135.5mm(기상청 자료, 청남면은 72.5mm)의 비가 쏟아져 배수가 시급했지만 청양지사가 관리하는 청남면 대흥리 배수펌프장의 펌프 1대는 청양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지고 3시간이 지나서야 돌아갔다. 농민들은 이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고 본다. 당시 폭우로 청양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고, 농업 피해 규모는 농경지 54.12ha(15억4,822만6,000원), 특작물 67만5,294㎡, 농약대(재해 발생 시「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복구비 품목) 적용 면적은 371만3,376㎡에 달한다. 이번 피해 보상 소송액도 2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8월 청양군 청남면 일대 하우스가 침수된 모습.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지난해 8월 청양군 청남면 일대 하우스가 침수된 모습.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대책위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이번 소송에서 한국수자원학회 자문을 근거로 “당시 폭우는 배수문을 모두 열고 펌프를 돌렸더라도 침수를 막을 수 없는 정도의 강우량”이라는 취지로 대응하고 있다.

한재호 사무장은 “처음엔 20년만의 폭우라고 했다가 한국수자원학회를 끌어들여 모의실험을 한 뒤 100년, 200년만의 강우량 수치라고 하며 침수 가능성을 배로 부풀렸다”면서 “2003년 대흥배수장 최초 설계 당시 배수로 크기를 기준값으로 계산했지만, 실제 가보면 지금은 높게 형성된 퇴적물을 전혀 준설하지 않은 상태다. 이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단순한 계산 결과로만 따진다면 (농민들은) 반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 “2019년 7월의 강우량이 지난해의 60% 수준이었는데 당시엔 거의 침수가 없었다. 비가 40% 더 왔다고 이렇게 침수된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며 지난해 수해가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전 대책위원장도 “수많은 증거가 있는데도, 결국 농어촌공사는 초창기 이 지역이 수도작 위주였으므로 그 기준으로 배수장을 지었으니 원예시설(하우스)은 인정이 안 된다는 식이다. 그게 대체 어느 때 이야기냔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지난해 8월 청남면 인양리 인양배수장. 원활한 배수를 위해선 제초작업 뒤 풀 찌꺼기를 치워야 하는데, 제초만 하고 베어낸 풀을 방치해 펌프 입구(펌프는 오른쪽 쇠창살 안 쪽에 위치)까지 떠내려와 쌓였고, 펌프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지난해 8월 청남면 인양리 인양배수장. 원활한 배수를 위해선 제초작업 뒤 풀 찌꺼기를 치워야 하는데, 제초만 하고 베어낸 풀을 방치해 펌프 입구(펌프는 오른쪽 쇠창살 안 쪽에 위치)까지 떠내려와 쌓였고, 펌프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청남면 인양뜰 수해대책위원회 제공

익산 용동면 일대는 수문을 열지 않아 수해가 반복되고 있다. 김종원 용동면 주민자치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수박 출하를 앞둔 시점에 똑같은 수해가 났고 당시 재해보험료만 42억원에 달했다. 수문이 3개나 있지만 익산지사는 30년 동안 열지 않았고 그 이유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익산지사는 수문을 열면 하류 지역이 침수될 수 있다고 하는데, 반복되는 상류지역 수해는 괜찮다는 말이냐. 수문개방 합의까지 번복한다”며 익산지사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를 전했다.

현재 농가 20가구가 익산지사에서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농어촌공사에게 △늑장 대처, 수문관리 부실 사과 △농작물 피해 보상 △수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청원과 주민감사청구까지 진행하고, 필요하면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농민들은 “단지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어디서 어느 때라도 일어날 수 있어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면서 “소송은 장기전인데, 농어촌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이바지(한국농어촌공사의 법정 설립 목적)한다는 농어촌공사가 몇 년간 농민들 진을 다 빼놓는 꼴”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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