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용동면 수해 농가들 “농어촌공사가 벌인 인재”

"익산지사, 30년이 넘도록 똑같은 조치로 대응 ... 적절한 업무수행 맞나"

반복 수해 따른 합의·기반공사에도 불구 ‘관행대로’ 열지 않은 책임 물어

공사 전북지역본부 “공식적 합의로 볼 수 없어 … 지사 대응 적절했다” 

  • 입력 2023.06.14 18:34
  • 수정 2023.08.14 09:3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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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김종원 용동면주민자치위원장(왼쪽)이 지난 13일 열린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의 현장조사 결과에 항의하고 있다.
김종원 용동면주민자치위원장(왼쪽)이 지난 13일 한국농어촌공사 익산지사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의 현장조사 결과에 항의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최대 200mm가 넘는 폭우가 전북 익산시 북부지역을 덮쳤다. 익산시 용동면 일대를 중심으로 농경지 74ha·비닐하우스 100여동이 침수 피해를 겪었다. 상습적으로 수해를 겪고 있는 용동면 농민들은 최근 관련 기반공사를 해 놓고도 수문을 열지 않은 한국농어촌공사 익산지사에 의해 발생한 인재라며 보상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으나, 한국농어촌공사가 현지조사 이후 사실상 책임을 전면 부정하면서 갈등의 파열음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는 이번 피해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며 지난 13일 익산지사에서 피해농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이날 모인 피해 농민 30여명에게 ‘전북 익산시 용동면 원예작물 침수 민원 관련 현지조사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배부된 보고서의 내용을 읽은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설명회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용동면 농민들은 익산지사가 대조천에서 흘러오는 물을 망성면 지역으로 분산해줄 용성수문(3련)을 열지 않았음은 물론, 그간 용동면의 침수피해에도 불구하고 열지 못했던 이 수문의 개방을 위해 올해 초 성립된 용동면-망성면 간 ‘수문의 유동적 개방’을 위한 합의를 무시했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조사보고서는 익산지사가 폭우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침수피해가 발생했다는 농민들의 주장 전반에 대해 농어촌공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북지역본부는 해당 합의가 유효하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당시 대조천의 수위와 수문 개방 시 예상 침수면적에 대한 모의분석 결과를 토대로 용성수문을 개방할 경우 망성면이 입을 피해의 심각성을 예상할 수 없어 수문 개방을 결정하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용동면행정복지센터는 지난 2월 2일 용동면장 주관으로 ‘대조천관련 한국농어촌공사 익산지사장과의 간담회’를 연 바 있다. 익산지사 관계자 및 용동면 농가 대표 5명, 망성면 농가 대표 4명이 참석한 이날 간담회 뒤, 용동면장은 참석자들이 ‘집중호우 시 용성수문을 유동적으로 개방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동향보고의 형태로 익산시에 보고했다.

그러나 설명에 나선 이광희 전북지역본부 기반관리부장은 “현장에 가서 탐문조사해보니 망성면 주민들은 합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며 “한 간담회 참석자는 ‘100mm 이상 강우 시’ 수문을 절대 개방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전북지역본부는 사고 이후 탐문조사 때 만난 망성면 주민 3명 및 간담회 참석자들이 상류 하천수 유입에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간담회 역시 회의록이 없고 익산시로 보낸 문건이 동향보고에 불과한 점을 들어 대조천 수문 개방에 대해 망성면 주민과 공사가 합의한 사실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 농민이 받아든 현장조사 보고서에 담긴 용동면의 간담회 개최결과 내용. 
한 농민이 받아든 현장조사 보고서에 담긴 용동면의 간담회 개최결과 내용. 

 

이에 대해 김영재 익산시농민회장은 “이미 3년 전에 저 3련 수문 때문에 피해가 있어 행정에서 미리 예방하고자 이해 당사자들을 모았는데 주민들 전체가 모여서 합의는 못하니 대표성을 띤 주민들이 와서 합의를 한 것 아니냐”라며 “그것도 민간이 아니라 행정이 주관한 회의다. 주관자가 면장이고 시장에게 동향보고까지 갔는데 입맛대로 의견 듣고 와서 합의된 게 없었다라고 얘기하면 안 되는 거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참석한 황지중 용동면장도 항의했다. 황 면장은 “용동면 주민들은 저희가 모이라 했고, 망성면 주민들은 저희가 아니라 (익산지사) 망성지소에서 오시라 했다”라며 “용동면에서 일방적으로 모여 달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보고서를 보면 허위서류를 만든 것처럼 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농민들은 폭우 당일 용성수문 너머 망성면 지역에는 충분히 물을 더 들여도 될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비가 거세지기 시작한 28일 저녁 무렵 대조천이 이미 범람해  오후 7시 40분경 수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익산지사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수박농사를 짓는 농민 문해주씨는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화산배수장 가는 물길은 몇 년 전 배수로 공사를 했고 유속이 엄청 빨라졌다”라며 “당시 물 수위는 여기까지 반절이 남아있었고 그만큼이나 여유가 있는데 수문을 열지 않은 거다. 화산배수장에서 펌핑을 하면 여기서 더 빠질 수도 있는데 해보지도 않고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수해를 입은 하우스에 썩어 상품성을 잃은 수박들이 놓여있다. 황인호씨 제공
수해를 입은 하우스에 썩어 상품성을 잃은 수박들이 놓여있다. 황인호씨 제공

 

수해 당일 침수된 비닐하우스들의 모습. 이강우씨 제공
수해 당일 침수된 비닐하우스들의 모습. 이강우씨 제공

 

지난달 말 피해시점 당시 화산배수장으로 향하는 물길의 수위를 가리키고 있는 농민. 문해주씨 제공
지난달 말 피해시점 당시 화산배수장으로 향하는 물길의 수위를 가리키고 있는 농민. 문해주씨 제공

 

주민들을 규합해 피해농가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김종원 용동면주민자치위원장은 “관행대로, 매뉴얼대로 용성수문을 열지 않았다고 하는데 매뉴얼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라며 “설령 금강으로 빠지는 연동제수문(17련)이라도 빨리 열어 수위를 낮춰뒀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다”라고 분개했다. 

연동제수문은 대조천과 금강 본류 사이를 연결하는 산북천 하류에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설치된 대형 수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익산지사는 28일 20시 2련을 먼저 개방한 뒤 누적강수량이 57mm에 이른 29일 0시경 고장난 3련을 제외한 14련을 개방했는데, 전북지역본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농업용수 확보 및 기상경보 시점과 강우량을 고려했을 때 적정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피해주민들은 한국농어촌공사 익산지사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피해주민들은 한국농어촌공사 익산지사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설명회 뒤 지사장실을 방문한 주민들은 전북지역본부의 보고내용이 잘못됐다며 농민들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과 직접 면담해 피해사실을 보고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익산지사 앞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북지역본부 측 관계자는 당장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없으며, 공사와의 협의 및 내부 논의 후 대응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마침 회기가 시작된 익산시의회에서는 익산시의 관심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시정질의가 나오기도 했다. 조남석 익산시의원은 14일 열린 익산시의회 본회의에서 정현율 익산시장에게 “용성3련 수문의 설치목적 등에 대해 농어촌공사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대조천의 범람 때문에 만든 수문"이라며 "지난 2021년에 화산배수로 공사도 끝냈으면 한번쯤은 수문을 열어봐야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이어 “(이렇게 된 건) 행정과 농어촌공사가 협업을 안했기 때문이고, 또 어떻게 보면 방관한 것이다. 농가들은 이 부분을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는 거다. 농어촌공사는 원리원칙과 당시 수위만 보고 이야기하는데, 시장님께서는 농어촌공사의 조사결과만 믿지 마시고 농가 편에서 대응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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