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의 시대, 여성농민이 지켜온 가치에 주목하라② 토론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국회토론회

  • 입력 2023.11.17 16:00
  • 수정 2023.11.17 16:50
  • 기자명 권순창·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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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토론회가 열렸다.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여성농민의 가치를 조명한 최초의 토론회며, 9명의 국회의원이 공동주최자로 나설 만큼 정치권의 관심이 뜨거웠다.
땅과 생명을 지키며 농사를 이어온 여성농민들의 삶은 과학과 개발의 농법이 부추겨온 기후위기 사태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직 그 논리가 반듯하게 정리되진 않았지만, 논리를 만드는 첫 과정이라는 점에서 참가자들 모두 이 자리의 의미를 깊게 새기며 대화에 임했다. 여성농민들 스스로가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자각과 다짐의 장이 되기도 했다.
토론회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한국농정>·언니네텃밭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이 공동주관했으며 <한국농정>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정리 권순창·한우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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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의 시대, 여성농민이 지켜온 가치에 주목하라③ 인사말


여성농민이 겪는 기후 ‘재난’
[토론1]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여성농민들은 일을 많이 한다. 농사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있다. 가사 노동 시간이 평균 4.72시간, 즉 매일 다섯 시간이다. 남성은 얼마나 가사 일을 할까. 0.61시간이다. 그만큼 많은 시간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농사일에 있어서도 남자들은 주로 농기계를 다루는 ‘큰일’을 많이 한다. 한편 여성농민들은 아무리 날씨가 뜨겁고 비가 많이 와도 밭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을 한다. 작물의 시기에 따라 잡초제거도 해야 하고, 소규모 방제도 해야 하고, 물도 줘야 한다. 씨나 모종을 심은 이후 가꾸고 수확할 때까지 항상 여성농민의 손길이 닿는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뜨겁고 비가 많이 와도 밭에 나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상기후 시 정부에서는 폭염이니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알리지만 작물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새벽에 눈만 뜨면 바쁘게, 또 밤늦게까지 밭에 머물기에 노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기후의 영향에도 더 많이 노출돼 있다.

특히 요즘 사망자가 많이 늘고 있는 온열질환은 전년 대비 80.2% 증가했다.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80대 이상이 50%, 추정 사인은 열사병이 90.6%다. 사망자는 여성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특히 고령농민 중에서도 여성농민들이 기후재난에 더 취약하다는 결과를 볼 수 있다.

기후재난을 겪고 있는 농민에 대한 실태조사가 시급하다. 농민들이 겪는 재난의 정도, 또 그것이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기후재난 해결을 위한 여성농민들의 농생태학적 실천 및 토종종자 보호 노력 등을 높이 평가하고 여성농민을 농업의 주체·기후재난 해결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또 식량과 종자의 불안정한 수급을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외국농산물에 맡겨서는 안 된다. 농지를 확보하고 토종종자를 보존·활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재난으로 떠올랐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스마트팜·대체작물 전환은 절대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농민운동과 기후운동의 연결고리, 여성농민”
[토론2] 가원 체제전환을위한기후위기동맹 집행위원
 

기후운동가의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겠다. 우선,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농민의 삶을 붕괴시키는 요소지만, 기후위기 이전에도 이윤을 위한 농업 생산시스템은 농민과 자연을 수탈·착취해왔고 그 결과 기후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기후위기의 문제를 보다 체제의 문제로 맥락화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겨냥해야 한다.

그럼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농생태적 생산방식’으로 전환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농민과 농촌공동체는 쫓겨나고 토지와 숲은 기업에 팔려나가게 되는데, 이는 ‘탄소중립 녹색성장체제’라는 자본주의 권력의 기후위기 대응은 사실상 기업이 이윤을 쌓을 기회이고 농민의 불평등을 바꾸는 일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에 맞서려면 농민운동은 기후위기 정세에서 “생존권 보장”이라는 수세적 요구가 아닌 “자본이 독점하고 있는 농업 생산에 대한 권리와 통제를 농민이 쥐어야 한다”는 투쟁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농민운동이 무엇을 사회에 요구할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고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과 만나 사회적 투쟁으로 조직해야 한다.

덧붙여, 여성농민이 어떻게 기후위기 시대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하는 주체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소농이 역사적으로 쌓아온 농생태적 방식과 여성농민의 관계가 무엇인지 언어화했으면 한다. 최근 기후정의운동 동료가 “과거 농부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남성의 얼굴을 떠올렸는데, 기후운동을 하면서 기후위기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여성농민들을 만난 뒤 이제 농부 하면 여성농민이 먼저 떠오른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후정의운동은 농민운동과 별개의 운동이 아니라 자본주의 성장체제 하에 억압받는 이들의 싸움을 조직하는 운동이다. 농민운동의 요구를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로 재구성하는 데 여성농민들이 앞장서 주시길 기대한다. 기후위기동맹도 여성농민운동의 고민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로 만들어 가겠다.


“여성농민의 기후위기 취약성 연구해야”
[토론3] 정학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원환경연구실장
 

토론회 제목에 쓰인 ‘기후재난’이라는 용어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기후변화는 심화되고 있고 가속화되고 있다. IPCC 6차 평가보고서는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2040년 이내에 온도변화가 1.5도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지구 열대화라는 말까지 등장 하게 된 상황이다.

기후 의존성이 매우 높고 노령화된 농민이 많은 농업·농촌은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선 정확한 평가를 바탕으로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응 가능 품종을 개발하고 작목 시험을 추진하고, 기후별·지역별·작목별 맞춤형 대응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기후정보 정확성 제고에도 투자해 농가들이 사전 전달된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적응에 대해 ‘취약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취약성은 결국 기후변화에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달린다. 혹은 노출되더라도 적응력이 있다면 취약성은 크지 않게 된다. 한편 이것을 받아들이는 농민들이 빈농이냐 부농이냐에 따라서도 취약성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성농민의 농업생산 기여도는 50%가 넘는다. 그 기여가 식량안보와 연계된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기후위기 적응을 돕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하다. 여성농민은 기후변화에 대해 남성농민보다 불안의 정도가 크고 취약성도 더 큰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노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고령 농민 비중이 큰 여성농민을 위한 특별한 안전대책이나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앞으로 농업은 생태농업·저탄소·친환경 유기·경축순환 농업 등 환경부담을 줄일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가는 것이 맞고 이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여성농민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진다면 정부 정책의 지원에도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과연 여성농민이 기후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 정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피해 완화와 적응 측면에서 어떠한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할지 알아야 전략을 만들 수 있는데, 현재로선 특화된 정책을 제시하기 위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여성농민과 함께, 기후재난 극복할 수 있길”
[토론4] 우준 한살림소비자생협연합회 농산물위원장
 

한살림은 매해 정해진 시기,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양의 농산물을 공급하고 소비하기로 생산·소비자가 미리 약속한다. 그래서 가령 4월에 공급하기로 한 생산자의 물량이 늦어지면 5~6월 생산자들과 겹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올해는 그런 위기를 정면으로 직면한 해였다. 특히 7월 15일 괴산댐이 넘칠 땐 사일리지가 떠내려가고 사료공장이 중단돼 Non-GMO 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게 됐다. 하우스가 완전히 침수되고 집이 쓸려내려간 생산자도 있었다.

이번 수해를 겪으며 느낀 건, 농업엔 모두가 전문가지만 수해엔 전문가일 수가 없어 어떻게 지원을 요청하고 도움을 모을지 모른다는 거였다. 피해 생산자가 썩은 토마토를 집어내는 일에 (소비자조합원) 5명만 와달라 하셨는데 20명이 가서도 다 못하고 왔다. 그동안 조성해둔 생산안정기금을 올해 상당부분 쓰게 될 것 같고 가격안정기금은 쌀에 거의 다 사용했다.

이는 한살림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하고 있는 불완전한 노력들이다. 내부 대책을 고민하면서도 정부 정책에 요구할 부분도 고민하고 있는데, 기후위기 상황에서 농민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특히 재해 상황에서 피해 복구를 지원할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한살림의 소비자영역, 지역이사회와 연합이사회는 여성 비중이 높지만 생산자조직은 남성 중심으로 구성·운영되고 있다. 생산지에 가까이 가야 여성농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올해 수해지원 경험이 더 의미있었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더 많은 피해를 이겨내야 하는 건 살림과 농업을 더 많이 감당하고 있는 여성농민이라는 걸 실감했다.

수해로 큰 피해를 본 여성 생산자,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한 소비자들에게 식사를 준비해 주신 여성 생산자들께 죄송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이 컸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기후재난을 여성농민과 함께 견뎌낼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찾고 시도를 이어나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여성농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생협에 결합하셔서 여성 이사, 여성 지역대의원을 맡아 주셔야 논의가 활발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농생태적 토종농사도 재해보험 적용돼야”
[청중토론] 권태옥 더불어농원 대표(충남 논산)
 

토종씨앗을 지키려 토종콩과 팥 등 17가지를 심었다. 논산도 ‘바다밭’이 됐다. 벼를 심지 말라하니 콩과 팥을 심었는데 다 물에 잠겼다.

토종콩은 많이 걷는 게 문제가 아니다. 씨앗을 건져야 한다. 문제는 갈아엎어야만 재해보험의 보상 대상이 된다. 기르는 토종종자가 17가지나 되니 한 필지에 서너 종류를 한 번에 기르는데, 그렇게 한 논에 여러 가지를 심어도 해당이 안 된다. 또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농사에 비가 두 달 넘게 오니 제초를 할 수 없는데, ‘평균작’이 되지 않아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보험금을 못 준다고 한다. 토종농사는 재해보험이 전혀 쓸모가 없다.

다국적 기업 여섯 개가 씨앗의 58%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종자생산을 하기 위한 그들의 농경지에 올해 논산처럼 비가 많이 온다면? 돈을 줘도 종자를 살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이번에 씨앗을 30%도 거두지 못했다. 어떤 품종은 500평 정도 심었는데 1kg도 나오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씨앗과 정말 큰 관계가 있다. 종자가 없으면 농민의 노력도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전여농이 종자를 가꾸고, 지키고 나누는 이유다.


“기후위기와 여성농민의 관계, 계속해서 논의하자”
[좌장] 오미란 젠더&공동체 대표
 

이 토론회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기뻤다. 많은 의원들이 참여해 더욱 의미가 크다. 기후위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어려움을 주고 있기도 하고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기도 하지만, 농업에서의 기후위기는 또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식량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여성농민의 경우 대부분의 농작업을 야외에서 하며 기후위기에 지속 노출돼 있다. 훨씬 더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으며 남녀 농민의 유병률 차이로 이미 그것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오늘 토론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몇 가지를 논의했다. 토론에서 나온, 법 개정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내용은 빨리 정리해서 전달해야 하겠고, 그와 별개로 두 가지 숙제가 생긴 것 같다. 첫째로 ‘여성농민이 왜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인지’ 이 논리를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둘째로 기후위기와 관련한 여성농민들의 실천 활동을 정리해 재토론을 열었으면 좋겠다. 그때 다시 오늘 참여하신 분들을 비롯해 다양한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토론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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