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의 시대, 여성농민이 지켜온 가치에 주목하라① 주제발표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국회토론회

  • 입력 2023.11.17 16:00
  • 수정 2023.11.17 16:53
  • 기자명 권순창·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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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토론회가 열렸다.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여성농민의 가치를 조명한 최초의 토론회며, 9명의 국회의원이 공동주최자로 나설 만큼 정치권의 관심이 뜨거웠다.
땅과 생명을 지키며 농사를 이어온 여성농민들의 삶은 과학과 개발의 농법이 부추겨온 기후위기 사태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직 그 논리가 반듯하게 정리되진 않았지만, 논리를 만드는 첫 과정이라는 점에서 참가자들 모두 이 자리의 의미를 깊게 새기며 대화에 임했다. 여성농민들 스스로가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자각과 다짐의 장이 되기도 했다.
토론회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한국농정>·언니네텃밭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이 공동주관했으며 <한국농정>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정리 권순창·한우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관련기사>
‘기후재난’의 시대, 여성농민이 지켜온 가치에 주목하라② 토론
‘기후재난’의 시대, 여성농민이 지켜온 가치에 주목하라③ 인사말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기후재난과 여성농민’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에 열중하고 있다.


초국적 농기업과 고비용 농업의 반대편에서,
지구를 식히는 여성농민

[발제]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

발제문의 제목이 ‘지구를 식히는 여성농민’인데 토론회 준비팀이 같이 만든 제목이다. 가장 말하고 싶은 주제는 이것이다. 여성농민에게 토지·종자·자연자원·생물다양성 등을 보장하는 것, 정보접근권·참여권·발전권 등을 보장하는 것, 농업과 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불평등과 차별을 없애는 것이 기후위기를 완화할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농민의 삶 자체를 파괴하고 있는 당장의 문제지만, 성불평등 상황 속에 여성농민에겐 기후위기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정책 대상에서도 배제되고 있고, 건강에 있어 여성농민이 훨씬 더 불평등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가부장제의 지배 질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인간을 우위로 설정했고 땅을 돌보며 생태순환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의 노동을 비과학적이라며 농업에서 밀어냈다.

국내는 물론 국제연합(UN), 세계기상기구(IPCC) 등 국제사회에서도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데 온실가스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역대 가장 뜨거웠던 7~8월이었다. 올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로도 100년간 영향을 받는다.

농업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24%라고 한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연도별로 몇 %를 따져 ‘인간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얘기하지만 난 여성농민의 관점에서 그렇게 보고 싶지 않다. 인간활동이 아니라 누구에 의한 온실가스인지 정확히 말해야 한다.

통계를 보면 1950년대부터 지구 평균기온이 굉장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특히 가파르게 상승한 게 1990년대다. 1950년대는 녹색혁명이 일어나 엄청난 농약·비료·기계가 투입되고 전통적인 여성농민의 농법이 몰아내진 시기다. 1990년도는 자유무역이 본격화된 시기다. 온실가스 배출 경향과 일치한다.

세계 먹거리체계에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 먹거리가 소수의 초국적 농기업에 장악돼 있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씨앗·농약·비료·기계·항생제와 유통·소비과정까지 전 세계 몇 개 기업에 의해 통제되고 있고 이 기업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바로 농업부문 온실가스다.

누가 지구를 뜨겁게 하는가 하는 얘기를 분명히 하고 그런 생산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없다. 초국적 농기업 ‘네슬레’가 엄청 발 빠르게 ‘제로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 정작 아프리카 오지까지 뻗친 유통망은 거둬들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그린워싱’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농업인의 날 행사에서 스마트팜·IT·첨단농업을 얘기하며 “고소득산업으로 나아가자”고 했는데, 이게 지금 기후위기 시대 대통령의 인식이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식량주권의 관점에서 농업정책을 펴야 한다는 거다. 농생태적 농사는 훨씬 에너지와 물을 덜 쓰고 온실가스를 감축한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을 보장한다.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 우리의 대안이라 생각한다.

초국적 농기업의 수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전세계 여성농민들은 토종씨앗과 생태적 농업 생산방식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 감수성을 가진 게 여성농민이다. 여성농민은 수천년 동안 생태적 지혜로 땅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공동체를 돌보는 사람들이다. 이를 외면하고 기술과 자본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순 없다.

기후정의운동은 농민들의 참여와 상관없이 큰 물결이 됐다. 지난 4월·9월 기후정의행진에 이미 몇만명이 모이고 있다. 여기에 농민이 중심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책을 짤 건지 집단적 연대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식량주권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어야 하고, 여성농민의 권리가 기후재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절박함과 공포감은 생애 처음”
[기후 피해사례 발표] 유화영 충남 논산 채소농가(호우 피해)
 

귀농한 지 8년된 초보다. 미니단호박·감자·양파 농사와 함께 토종콩과 채소를 몇 가지 기른다. 단호박 두 동 600평, 노지 600평, 논 1,000평이니 소농 중의 소농이다.

그 2,200평이 손바닥만큼의 땅도 남지 않고 다 잠겼다. 일대가 전부 잠겼는데 강도 아닌 바다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하우스 바닥에서 허리에 차오를 때까지 현장에 있었는데, 이미 수확해서 널어놓은 양파가 수장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 많은 양파를 다 들어 집으로 옮겨 거실과 방, 비가 들이치지 않는 모든 공간에 들여놓고 말리는데, 비가 들이치기 시작하니 너무 공포스럽고 절박했다. 53세 생애 그런 절박함과 공포감은 처음이었다.

다음 작물을 들이기 위해 땅이 마르기까지 한 달 정도가 소요됐다. 농사를 새로 지으려니 생전 처음 보는 병해충이 생겨났다. 분홍색, 갈색, 검은색, 흰색 등 총천연색 벌레가 창궐했다.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됐지만 행정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고 감감무소식이다. 추석 직전에 한번 비가 엄청 내린 적이 있었는데 트라우마가 생겨서 밤 9시가 넘어도 하우스를 떠나지 못했다. 수로가 넘치지 않게 둑을 더 쌓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지만, 지자체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촉구하고 항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 오듯 떨어지는 사과에 무너져 내린 가슴”
[기후 피해사례 발표] 김태경 경남 거창 사과농가(탄저병 피해)
 

농사 지으면서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봄에 꽃이 폈는데 저온이 열흘 이상 지속됐다. 벌이 활동을 못하니 수정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4월 28일엔 된서리가 와서 중심과가 다 얼어버렸다.

여름철엔 비가 왔다 더웠다를 반복해 일소 피해가 왔다. 이후 처서가 지났는데 기온이 안 떨어지니 색이 나질 않았다. 탄저가 심해지고 썩음병·무름병도 심했다. 게다가 흡혈나방이라는 희한한 나방이 활동해 기존의 병충해보다 큰 피해를 줬다.

가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는데 햇볕 받은 윗부분이 탄저·무름·썩음병으로 다 떨어진 거다. 썩은 사과를 바닥으로 던지는데 비 오는 소리처럼 들리더라. 25년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신조가 ‘하늘이 하는 일에 감정 소모 말자’였다. 태풍이 와서 나무가 뽑혀도 다시 심을 뿐 감정이 동요한 적은 없었다. 헌데 그 비오는 듯한 소리에 감정이 형언할 수 없이 북받치더라. 농사가 무너지면 여성농민들은 저임금 노동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썩은 사과 던져놓은 것도 다 주워야 한다. 누가 하겠나. 남자는 술만 먹지 않나. 이런 모습을 보고 미래를 그리며 들어올 여성농민은 없다.

마지막으로 1,500평 400주에 보험금 받은 걸 말씀드리면, 보험료 880만원을 냈고 75% 피해산정을 받았는데 보험료가 1,000만원 나왔다. 낸 것보다 120만원 더 나온 거다. 재난의 모든 책임이 농민에게 전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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