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의 열쇠, ‘여성농민’

  • 입력 2023.11.17 16:00
  • 수정 2023.11.17 16:5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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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을 최전선에서 몸소 겪어내고 있는 여성농민은 말 그대로 ‘지구를 식히는’ 역할에서도 최전선에 서 있다. 전북 고창의 비탈진 밭에서 한 손에 호미, 한 손엔 양파 모종이 담긴 바구니를 든 여성농민들이 비어 있는 이랑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을 최전선에서 몸소 겪어내고 있는 여성농민은 말 그대로 ‘지구를 식히는’ 역할에서도 최전선에 서 있다. 전북 고창의 비탈진 밭에서 한 손에 호미, 한 손엔 양파 모종이 담긴 바구니를 든 여성농민들이 비어 있는 이랑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기후위기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통용된 건 2010년대 후반부터다. 불과 4~5년 사이 지구는 수십년 만의 폭염과 폭우, ‘봄서리’와 ‘가을태풍’ 등으로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농민들은 기후를 생계 밑천으로 삼는 이들이다. 기후위기를 최전선에서 가장 정통으로 체감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에도 가장 가혹하게 노출돼 있다. 올해는 기후위기의 절정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꼬리를 문 기상이변이 그간 축적해온 농민들의 농업지식을 무용케 했고 대응마저 무력케 했다. 수많은 농산물의 작황이 무너졌고 농가경제도 함께 주저앉았다. 절정이라고 표현했지만 기상이변은 이제 해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진짜 재난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농업은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산업이지만 가해산업이기도 하다. 1960년대 ‘녹색혁명’ 이래 우리 농업은 규모화와 기계화, 화학비료·농약 등 고비용 투입, 공장식 축산 등 생산성과 경제효율을 높이는 방식을 지향해왔다. 게다가 각종 농자재와 사료는 물론 일부 농산물에까지 수입 의존 구조가 고착되면서 농업·먹거리 분야 ‘탄소발자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식물을 재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온실가스를 마구 뿜어대는 오늘날의 주류 농업시스템은 결코 기후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기후위기가 현실화된 지금도 ‘스마트팜’·‘고소득작목’을 농업 청사진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으로 괜찮은 것일까. 수천 수만의 생물이 살 수 있는 땅에 유리·시멘트·플라스틱을 깔고 ‘멸균 농장’을 꾸리는 방식, 트랙터와 난방기구로 석유를 태우며 화학비료와 농약을 뿌려대는 방식. 이는 기후위기를 맞아 우리가 반성해야 할 지난 반세기 동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호미를 들고 흙과 잡초를 만지는 농사는 결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도 우리 농업의 실뿌리인 중소가족농이 농촌현장에서 영위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중소가족농의 중심은 여성이다. 여기저기 손이 많이 가는 채소밭 농작업과 수확 후 다듬기 작업, 농가 살림노동, 마을공동체 돌봄노동 등이 대부분 여성농민의 손에서 이뤄진다.

땅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농민 가운데 어찌 남성이 없을 수 있을까마는, 그 마음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집단이 여성농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농의 상징인 호미는 이미 여성농민의 상징이기도 하며, 대를 이어 전통 농경문화와 토종종자를 지켜온 것도 대부분 할아버지-아버지보단 할머니-어머니였다.

지난 수십년 우리의 무감각함으로 인해 기후위기가 도래했다면, 이를 극복하는 첫 단계는 정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땅과 결부돼 살아가는 중소가족농이 늘어난다면 대농·스마트팜이 확산하는 것보다 훨씬 온실가스를 줄여낼 수 있을 것이며 지역소멸·인구절벽 문제에까지 덩달아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필요한 자양분을 축적해놓고 있는 게 바로 여성농민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있어, 여성농민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열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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