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먹거리의 일상적 이용, 장애인도 보장받아야 한다

장애인기본권 연재기획⑤ 장애인 먹거리기본권(최종)

  • 입력 2023.10.29 18:00
  • 수정 2023.11.01 12:52
  • 기자명 강선일·장수지·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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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장수지·김수나 기자]

농촌에서 살아가는 장애당사자 주민의 이동권, 자기 생활방식을 결정할 권리, 사회참여를 위한 농(農)적 방안,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등을 한 번에 아우를 주제를 찾기는 애매하다. 분명한 건 이 문제 모두 장애인기본권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농업·농촌·먹거리 담론과 연결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는 고민 아래, <한국농정>은 장애인기본권 관련 기획을 진행한다.

서러운 밥상

“2년 전(2009년), 김포에 있는 석 모 시설(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나오기 전까지 눈칫밥만 먹었다. 시설 직원 노○○은 밥을 조금밖에 안 줬다. 간식을 잘 안 줬다. 똥 싼다고, 똥 싸면 자기가 치워야 하니까. 장아찌에 밥만. 국도 없었다. 물 말아 먹었다. 깨끗하게 못 먹는다고 엄청 구박했다. 반찬도 부실한데 구박까지 받으니까 더 서러웠다.”

노들장애인야학 소식지 ≪노들바람≫의 2011년 연간 기획 <평화로운 밥상을 위하여> 중 ‘당신이 경험한 최고로 서러운 밥상’ 편에서 소개된, 장애당사자들의 ‘서러운 밥상’ 이야기 중 하나다(노들장애인야학 기획 <노들바람>(봄날의책, 2023)에서 재인용). 이처럼 장애당사자들은 오랜 기간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먹거리기본권을 비롯해 인간으로서의 각종 기본권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왔다.

장애당사자들은 인간답게 살 권리의 쟁취를 위해 ‘탈시설 운동’을 전개해왔다. 그 과정에서 위에 거론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2021년 4월 문을 닫았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조금씩, 조금씩 장애당사자들은 시설에서 ‘사회’로 돌아오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환경정의는 최근 ‘시각장애인의 식품정보 접근성 실태조사’ 진행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먹거리정보 접근권 미보장 상태를 알리는 목적의 영상을 촬영했다. 한 시각장애당사자(오른쪽 앉은 사람)가 먹거리를 찾고 있고, 그 옆에서 활동가들이 영상을 촬영 중이다. 이 사진은 해당 장애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인용했다. 환경정의 제공
환경정의는 최근 ‘시각장애인의 식품정보 접근성 실태조사’ 진행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먹거리정보 접근권 미보장 상태를 알리는 목적의 영상을 촬영했다. 한 시각장애당사자(오른쪽 앉은 사람)가 먹거리를 찾고 있고, 그 옆에서 활동가들이 영상을 촬영 중이다. 이 사진은 해당 장애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인용했다. 환경정의 제공

그러나 시설 밖에서도, 장애의 종류를 막론하고 장애인의 ‘서러운 밥상’은 계속된다. 사회에서의 건강한 먹거리 이용을 위한 1차 조건인 ‘접근권’부터도 못 누리는 게 대다수 장애인의 현실이다.

먹거리 접근권 측면에서 제약이 많은 장애당사자 중 시각장애인을 빼놓을 수 없다. 환경정의(이사장 이경희)는 최근 ‘시각장애인의 식품정보 접근성 실태조사’ 과정에서 시각장애인 15명과 활동지원사 5명을 개별 인터뷰한 바 있다. 이때 나온 이야기 중 일부를 소개한다.

시각장애인에겐 철저히 시각 위주로 구성된 먹거리정보를 얻는 과정 자체가 험난하다. 식품 포장재 표면에 점자를 표시하자고도 하나,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사람 비율은 10%도 안 된다. 또한 신선농산물의 주요 포장재인 비닐엔 점자 표시가 불가능하다.

새로운 먹거리에 ‘도전’하는 게 두렵다 보니, 조사에 응한 시각장애인 다수는 매일 먹는 음식만 또 먹는다고 했다. 구매처도 한정적이다. 삼각김밥 등 편의점 식품을 많이 이용하거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온라인에서 먹거리를 한 번에 대량 구매하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의 먹거리 구매? 언감생심이다. 한 당사자는 마트 의자에 앉아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눈이 안 보여서 그런데 닭을 사고 싶다”라고 요청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먹거리를 사야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권의 미보장 상태는 다른 장애당사자라고 다르지 않다. 양경미 대구한의대학교 교수는 “발달장애인 다수는 인스턴트 식품 또는 배달음식을 많이 접하며, 당뇨·비만·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이 많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경우 2019년 기준 만성질환 유병률이 75.9%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접근성은 극도로 낮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 기대수명은 82.4세인 반면 전체 장애인의 평균사망 연령은 72.2세, 지적장애인은 50.6세로 훨씬 낮다는 게 양경미 교수의 설명이다. 이는 장애인의 건강한 먹거리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립형 식생활

양경미 교수는 성인발달장애인의 먹거리기본권을 위해 우선 ‘자립형 식생활 실천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다양한 실험을 추진해 왔다. 일례로 2019년엔 대구 동구 안심지역 주민들과 함께 ‘주부 영양관리 모니터링 평가단’을 구성해, 성인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건강식단 기반 요리실습 △장애인 맞춤형 영양소 특강 △영양표시제 익히기 수업 등을 진행했다. 식생활교육과 함께, 장애인이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도록 우유·달걀 등을 담은 밀키트를 보내기도 했다.

양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식생활교육 실시 전 교육 참가 장애인 11명의 식생활 상태는 ‘좋음’ 2명(18.23%), ‘보통’ 4명(36.4%), ‘나쁨’ 5명(45.5%)이었으나, 10회에 걸친 식생활교육 뒤 진행한 조사에선 ‘좋음’ 4명(36.4%), ‘보통’ 5명(45.5%), ‘나쁨’ 2명(18.2%)으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범국민적 식생활교육을 고민하는 조직인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상임대표 곽금순, 식넷)에서도 최근 장애인의 ‘자립형 식생활’ 관련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형주 식넷 사무총장은 “식생활·먹거리 취약계층이 스스로 자신의 먹거리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걸 할 수 있게 교육하자는 게 자립형 식생활교육의 취지다. 우선 시각장애인 대상으로 이 교육을 진행하려 계획 중”이라며, 자립형 식생활교육의 확대를 위해선 ‘대상자 분석’, 즉, 각 장애 유형별 식생활 현황은 어떠한지, 어떤 점에서 먹거리 접근성이 저해되는지 등을 살피는 사전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식생활교육 관련 제도 보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형주 사무총장은 현재「식생활교육지원법」에서 장애인은 교육지원 대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 상황을 지적한 뒤 “정부 부처는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데다, (장애인 문제와 식생활 문제는) 담당 부처가 (각각 보건복지부와 농식품부로) 갈라져 있기에 장애인 식생활교육의 본격적 추진이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안심마을의 지역먹거리 선순환 노력

대구 동구 안심마을 내 안심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지역먹거리 매장. 이 매장은 장애인들이 운영하며, 마을 내 장애인들이 이용한다. 안심협동조합 제공
대구 동구 안심마을 내 안심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지역먹거리 매장. 이 매장은 장애인들이 운영하며, 마을 내 장애인들이 이용한다. 안심협동조합 제공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확보를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일은, ‘장애인이 건강한 먹거리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다. 양경미 교수는 “장애인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선 건강한 식재료의 지속적 공급체계를 국가·지자체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급식 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반찬가게 등을 통해 장애인이 로컬푸드(지역먹거리)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순환’ 노력 사례 중 하나로 대구시 동구 안심마을 사례를 들 수 있겠다. 대구 동쪽 안심 1~4동 일대에 걸쳐 형성된 안심마을은 지역 내 마을공동체들을 중심으로 장애인 마을 통합돌봄(장애인이 마을에서 살며 기본권을 누리게 하는 돌봄 형태로, 사실상 마을주민 전부가 돌봄의 주체) 및 공동육아, 각종 사회적경제 활동이 이뤄지는 마을이다.

안심마을 내엔 지역먹거리 매장들이 있다. 각각 안심협동조합, 두레장터협동조합, 농부마실 등에서 운영하는 매장인데, 그중 안심협동조합(이사장 박인규) 매장의 경우 대구 동구 및 인근의 경북 영천·경산 등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한다. 이곳에선 장애당사자들이 직원으로 일하며, 안심마을 내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장애인 자립 지원 활동을 벌이는 조직)이 이곳에 수시로 식재료를 주문한다. 안심마을엔 마을밥집 역할을 하는 동네부엌도 존재한다.

장영훈 안심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안심마을 내에서 행사 또는 각종 요리수업 등이 진행될 땐 지역먹거리 매장 물품을 중심으로 사용한다”며 “매장을 이용하는 장애당사자들은 엄밀히는 건강한 먹거리 이용 목적보단 여기 (장애당사자) 동료가 있어서 오는 경향이 크다. 어떤 이유로든 매장에서 먹거리를 구매함에 따라 그들의 일상 식단에 건강한 먹거리가 더 많이 들어가는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노들야학의 무상급식

노들장애인야학의 식당. 이곳에선 장애당사자 학생 대상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사)노란들판 제공
노들장애인야학의 식당. 이곳에선 장애당사자 학생 대상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사)노란들판 제공

장애인 교육권 실현에 앞장서 온 노들장애인야학(노들야학)이 장애당사자 학생들에게 제공 중인 무상급식도 선순환 사례로 들 수 있다.

의무교육 과정에서의 무상급식은 현실이 됐으나, 다수의 장애당사자는 학교 건물의 구조적 문제 및 제도적 제한, 차별 등으로 학교에서 의무교육을 마치기 힘들다. 따라서 학교 무상급식도 다수의 장애인 학생들로선 언감생심이었다. 장애인도 교육권을 누리는 과정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 아래, 노들야학은 2014년부터 야학 수업을 듣는 장애당사자 대상 무상급식(급식 이용자 약 80~100여명)을 실시했다.

무상급식 식재료의 경우 한살림연합 등 생활협동조합에서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하거나, 때로는 한살림으로부터 친환경 쌀을 지원받기도 한다. 또한, 서울 대학로 노들야학 건물 옥상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채소를 수확해 최대한 반찬으로 공급한다.

야학 재정이 넉넉지는 않을 텐데 무상급식 운영은 어떻게 할까. 비용은 △1년에 한 번 진행하는 무상급식 후원행사에서 모은 후원금 △노들야학 내 카페 운영 과정의 수익 △교사 및 노들야학 방문객, 노들야학 주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의 급식 이용에 따른 수익(무상급식은 오직 장애당사자 학생 대상) △서울시·서울시교육청 등 관(官)측의 일부 지원 등을 통해 충당한다.

노들야학의 운영을 담당하는 (사)노란들판의 양현준 대표는 “건강한 먹거리를 학생에게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환경도 장애당사자 상황에 맞춰 바꿨다”며 “식탁의 경우 일반 식탁은 장애당사자에게 높이가 너무 높거나 낮아서 식사를 편히 하기 어렵다. 그래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식탁으로 다 교체했다. 장애인 신체구조에 맞게 식탁을 설치하고 편히 식사하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위한 과제는?

노들야학과 안심마을의 사례는 장애인 인권문제를 장기간 고민해 온 시민사회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온 사례다. 아직 국가 차원의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실현 노력은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장애인 먹거리기본권을 고민하는 주체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박인규 안심협동조합 이사장은 “국가·지자체 영역에서 친환경 급식을 장애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거나, 장애당사자가 바우처를 통해 생협 등의 매장에서 친환경먹거리를 이용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드나, 우리 사회가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관련 제도 형성까지 나아가기엔 아직은 먼 듯하다”고 한 뒤 “지역공동체 내에서 밥집·반찬집 등을 구성하거나 푸드뱅크 등을 통해 지역산 식재료로 만든 반찬을 마을 내 장애당사자에게 공급할 방안을 상상해 봤다”고 밝혔다.

양현준 대표는 장애인 당사자가 자기결정권·선택권을 갖고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환경이 갖춰져야 근본적인 먹거리기본권 실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운동단체들은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보장 및 그에 대한 국가·지자체의 책무 규정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인위원회(장애당사자 참여 보장) 설치 통한 장애인 정책의 통합적 접근 △장애인 권리침해의 제도적 방지 등의 내용이 담긴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먹거리운동진영의 고민과 관련해, 송원규 전국먹거리연대 정책위원장은 기존 학교급식 등 공공급식 영역과 함께 ‘먹거리돌봄’ 영역에서도 “각 집단·계층의 활동영역이나 특성에 맞게 먹거리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반찬·도시락을 배달하는 걸 넘어, 사회적으로 이용자들이 생활은 잘 하고 계신지,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같이 진단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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