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갈 길 먼 ‘농촌 거주 장애인 이동권 실현’

  • 입력 2023.05.28 18:00
  • 수정 2023.05.29 07:0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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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광주민중항쟁 4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민주시민사회 물 건너갔네, 열차타는 사람들, 5.18 광주에서 민주주의 외치다'라는 기조 아래 광주 지하철에서 이동권 실현을 위한 실천활동을 전개했다. 이날 광주송정역에서 전장연이 개최한 집회에 참가한 장애당사자들이 지역사회 장애인 이동권 차별 철폐 등 장애인 이동권 관련 구호를 들고 있다.
광주민중항쟁 4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민주시민사회 물 건너갔네, 열차타는 사람들, 5.18 광주에서 민주주의 외치다'라는 기조 아래 광주 지하철에서 이동권 실현을 위한 실천활동을 전개했다. 이날 광주송정역에서 전장연이 개최한 집회에 참가한 장애당사자들이 지역사회 장애인 이동권 차별 철폐 등 장애인 이동권 관련 구호를 들고 있다.

이동권. 장애인 인권의 첫걸음이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한 교육권·노동권·먹거리기본권 및 탈시설 등 나머지 기본권 확보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투쟁’으로 한국사회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농촌 지역 거주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농촌 거주 장애당사자들은 어떤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충북 옥천군 및 그 일대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최근 인구 5만명 선이 무너진 옥천군(2023년 4월 기준 4만9,292명). 옥천 인구의 10명 중 1명인 약 5,000여명이 장애인이며, 그중 약 1,200여명이 이동권에 제약을 겪는다. 옥천의 장애당사자들은 10여년간 이동권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왔다.

대다수 농촌 지역에서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이동수단은 사실상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등의 ‘특별교통수단’ 뿐이다. 저상버스의 경우, 옥천군 내에서 운영되는 29개 버스노선 중 607번 단 한 노선에서만 운영된다. 해당 저상버스는 2019년 말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옥천 중심부인 옥천읍(시외버스터미널 기점)과 대전시 대덕구 비래동을 오가는(즉 도시민 및 옥천 중심부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 노선 한 곳에 저상버스를 마련하는 것도 옥천 장애당사자들의 이동권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옥천에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외진 곳(예컨대 청산면·안내면 등)까지 운행하는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올해 초부터 새로이 개정된「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시행됨에 따라, 올해 1월 19일부터 전국 모든 농어촌버스 노선도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사실상 장식이다. ‘예외노선 신청’ 조항 때문이다. 예외노선 신청 조항이란, 운행여건 상 저상버스 운행이 어려운 노선에 대해 여객운수사업자가 지자체에 저상버스 도입을 유예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하게끔 담보한 조항이다.

예컨대 지형이 험해 저상버스가 다니기 어려운 구간, 도로 중간의 구조물 높이 및 경사도 변화 등의 문제로 저상버스 운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구간을 예외노선으로 신청하라는 취지인데, 문제는 해당 조항이 ‘저상버스 도입 연기 또는 면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옥천군은 607번을 제외한 나머지 노선을 전부 ‘예외노선’으로 지정했으며, 전국 대다수 지자체도 벌써부터 예외노선 조항을 ‘악용’하는 분위기다.

옥천 장애인 기본권 운동에 앞장서 온 주체 중 한 명인 임경미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옥천 장애당사자들은 10년 이상 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해 왔다. 그때마다 옥천군 측의 답변은 ‘지나갈 통로가 좁다’, ‘방지턱이 높다’ 등이었다. 저상버스가 지나기 좁은 구역은 공사로 넓히면 되고, 방지턱이 높은 곳은 낮추면 된다. 이러한 논리는 지금도 반복된다. 이동권 확보에 필요한 도로 정비 조치를 시민들이 10년간 이야기했음에도 안 했다는 뜻”이라며 “여전히 옥천군 버스는 607번 일부 차량을 제외하면 버스 탑승 시 계단을 올라야만 하는, 장애인은 이용 불가능한 ‘차별버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 콜택시 운영도 장애당사자들로선 불충분하다. 장애인 콜택시는 보행 중증 장애인, 65세 이상 고령자 등 이동에 제약이 있는 주민을 위한 교통수단이다. 최근 개정된 교통약자법은 인구 10만명 이하 시·군의 장애인 콜택시 확보 기준을 기존의 ‘150명당 1대’에서 ‘100명당 1대’로 바꿔 규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 콜택시 법정대수(지자체별로 확보해야 하는 최소 차량 대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지자체가 상당수다. 옥천만 해도 1,200여명의 장애인 콜택시 이용 대상자가 있는 만큼 최소 12대의 법정대수가 확보돼야 하나, 현재 옥천에서 운영 중인 장애인 콜택시는 8대뿐이다. 임 소장은 장애인 콜택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과 관련해 “예컨대 청산면 거주민이 옥천읍으로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8시에 콜택시를 부르면 (예약이 항상 차 있어서 장시간 대기해야 해) 9시에 온다. 청산면에서 옥천읍은 1시간 거리니 도착하면 10시”라며 “현 체계 하에선 장애인의 정시 출퇴근은 보장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옥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은 충청북도 국정감사 시 충북도 11개 지자체 중 8곳이 장애인 콜택시 법정대수(당시 기준은 150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제천시는 27대를 확보해야 하는데 11대만 운영 중이었고, 청주시 또한 82대의 법정대수 중 22대가 부족했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 콜택시의 ‘일상적 운영’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영동군의 경우 1주일 전에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해야 겨우 이용할 수 있는데, 달리 말해 영동의 보행 중증 장애인은 ‘매일 외출’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 한 달까지도 예약이 밀린다. 임 소장은 이 문제를 언급한 영동군 장애당사자들과 함께 영동군청을 방문한 바 있는데, 영동군에선 “예산이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장애인 콜택시 운영을 민간단체에 위탁한 보은군(장애인 콜택시 2대. 일단 법정대수는 충족)의 경우, 아예 콜택시의 정기적 운영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예약제도 이뤄지지 않아 운행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미리 물어봐야 한다. 당연히 상황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을 수도 있다. 그 밖에 진천군·단양군 등 충북 타 지자체에서도 상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는 사실상 없다.

지자체 간 이동이 어려운 문제도 대두된다. 광역버스도, 시외버스도, 기차도 장애인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임 소장은 “옥천역에 서는 상·하행 무궁화호 23편 중 장애인 탑승이 보장되는 열차편은 3편뿐”이라고 지적함과 함께 “옥천에서 대전·보은·금산 등 타 지자체로 이동할 시, 대전에선 그나마 (대전역에서) 기차 타고 돌아올 수 있지만, 보은이나 금산에선 돌아올 방법이 없다. 장애인 콜택시는 타 지자체로 이동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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