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지역 속 살아가기’ 위한 방안, 사회적농업

장애인기본권 연재기획② 장애인 참여 사회적농업

  • 입력 2023.06.25 18:00
  • 수정 2023.07.01 23:2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촌에서 살아가는 장애당사자 주민의 이동권, 자기 생활방식을 결정할 권리, 사회참여를 위한 농(農)적 방안,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등을 한 번에 아우를 주제를 찾기는 애매하다. 분명한 건 이 문제 모두 장애인 기본권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농업·농촌·먹거리 담론과 연결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는 고민 아래, <한국농정>은 장애인기본권 관련 기획을 진행한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자립을 보장할 공간은 찾기 힘들다. 최근 몇 안 되는 사회참여 공간으로서 사회적농업 분야가 거론되고 있다. 장애인이 참여하는 국내외 사회적농업 현장의 전반적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적농업 관련 정책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는 2018년 사회적농업 실천조직 9개소를 선정한 이래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은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 지역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19조 4항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다. 해당 법 제19조 4항은 농식품부 장관이 농어촌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농업인 등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거나 농어촌에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인·조합·회사·농업법인 및 기타 비영리단체 지원”을 규정한다.

사회적농업 추진 조직 지원에 대한 법적 규정은 마련돼 있으나, 정작 사회적농업 그 자체 및 그 활동에 참여할 주체를 규정하는 법 조항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일단 제정 시도는 있었다. 2018년 12월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대표발의로 ‘사회적농업 육성법안’이 발의됐는데,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농식품부 장관은 사회적농업의 활성화 및 사회적농장을 이용하는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사회적농장 중 농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사회적농장을 지정해 경영지원 등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안 제10~11조 내용이었다.

여전히 장애인·노인·범죄피해 가족 등을 섣불리 ‘취약계층’으로 규정하는 등 관점 측면의 한계는 있었지만, 사회적농업 육성법 제정은 정부 사회적농업 지원사업의 더욱 확실한 근거로서 작용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당 법안은 2020년 제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내 장애인 참여 사회적농업 동향은?

2023년 현재 전국엔 92개소의 사회적농장이 존재한다. 이 중 장애인이 참여하는 사회적농업 실천현장에선 전반적으로 어떤 활동이 전개되고 있을까. 일부 사례를 살펴보자.

전북 군산시의 발달장애대안학교인 ‘산돌학교’의 경우 2020년 농업회사법인 산돌팜을 설립해, 발달장애 학생이 딸기 생산과정에 참여하도록 한다. 이 학교에서 교육받은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수행 가능한 일자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사회적 자립을 이뤄 지역사회 안에서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모(산돌학교 운영주체인 (사)산돌 누리집에서의 표현)”하고자 한다는 게 산돌학교 측의 입장이다.

충남 홍성군 ‘꿈이 자라는 농장’은 발달장애 청소년이 농사일을 통해 건강한 일꾼으로 성장토록 돕는 역할을 자임하는 사회적농장이다. 이곳에선 공교육 특수교사와 마을 주민교사가 협력해, 유기농업을 기반으로 한 생태교육 및 직업교육을 엮은 전인교육 과정을 실시하는데, 이 과정엔 발달장애 청소년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한다.

인천 강화군의 발달장애인 공동체 ‘큰나무캠프힐’은 농장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고, 공동체 내 ‘큰나무제빵소’에서 천연발효종으로 구운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이 모든 활동 과정은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진행한다.

경기도 용인시의 화훼업체 ㈜그리니쉬는 중증장애인 고용 연계형 원예 치유 프로그램을 통한 장애인 고용에 나서는 업체다. 전체 직원 27명 중 13명이 장애인이라는 게 그리니쉬 측의 설명이다.

정신장애인 탈시설과 함께 발전한 이탈리아 사회적농업

해외의 사회적농업 실천사례 중 이탈리아 사례를 우선 주목할 만하다. 이탈리아 연방정부는 2015년 세계 최초로 사회적농업 지원을 위한「사회적농업법」을 제정한 바 있는데, 이미 그 시점에도 이탈리아의 사회적농업 실천농장은 약 1,090개소였으며, 그중 사회적 협동조합이 약 40%를 차지했다. 이토록 이탈리아의 사회적농업이 발전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김정섭 연구위원 등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자들은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의 지방분권화 △국가 차원의 사회적 협동조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률 제정 △지방정부의 사회적농업 관련 법제 마련 등 여러 요인을 들었지만, 첫째 요인으로 1960년대 이래 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살리아의 주도로 전개된 ‘정신질환자 수용시설 폐쇄운동’과 그 결실로 1978년 제정된 일명 ‘바살리아법’의 존재를 든다.

바살리아법은 공공 정신장애인 수용시설을 폐쇄하고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도록 만든 법률이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로 소위 ‘정신병원’을 없앤 나라가 됐다. 이 법의 제정 및 정신장애인 수용시설 폐쇄운동에 앞장섰던 바살리아가 수용시설을 나와 지역사회로 복귀한 정신장애인의 사회재활을 위한 치료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의료진과 농촌 내 협동조합 간 협력이 이뤄졌다. 이러한 협력은 농민·정신장애인·의사·간호사 등이 함께 협동조합을 설립함으로써 조직 기반을 갖췄고, 이 사례는 이탈리아에서 현대적 의미의 첫 사회적농업 실천사례로 언급된다.

바살리아법 실행 이래 시설에서 나온 정신장애인의 재활·노동통합을 목적으로 협동조합들이 설립됐고, 이와 더불어 약물 중독자, 발달장애인, 난민 등이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는 협동조합들이 등장했다. 이탈리아 사회적농업은 보는 관점에 따라선 장애인의 ‘탈시설’ 및 지역사회 융화 시도와 함께 발전한 셈이다.

장애인과 농민, 나란히 서서 이야기할 시간부터

아일랜드 케리 카운티에선 ‘나란히 서서'라는 구호 아래 지역공동체 기반 사회적농업이 진행됐다. 케리 카운티의 농민과 장애당사자 청년이 농작업 중 농기계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케리 사회적농업(Kerry Social Farming)'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아일랜드 케리 카운티에선 ‘나란히 서서'라는 구호 아래 지역공동체 기반 사회적농업이 진행됐다. 케리 카운티의 농민과 장애당사자 청년이 농작업 중 농기계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케리 사회적농업(Kerry Social Farming)'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한편 김정섭 연구위원은 최근 국외의 주목할 만한 장애인 참여 사회적농업 실천사례로서 아일랜드 케리 카운티(Kerry County, 카운티는 아일랜드의 주(州) 단위) 사례를 들었다.

케리 카운티에선 유럽연합(EU)의 지원하에 지역공동체 기반 사회적농업이 진행된 바 있는데, 지역 내에서 사회적농업을 실천하려는 농민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사회적농장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으려는 장애인을 연결시켜주고 전체 활동을 조율하는 전담 코디네이터가 사업을 관리하게 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조직화됐다.

케리 카운티에서 추진한 사회적농업 프로그램의 구호는 ‘나란히 서서’였다. 우선 장애인과 농민이 함께 작업하며 ‘나란히 서서’ 이야기하고, 장애인이 농민의 작업을 조금씩 함께하고, 같이 밥 먹는 것이 핵심이었다. 장애인은 그렇게 농민, 그리고 농민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웃이 됐고, 농민은 난생처음 장애인복지관에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갔다. 그렇게 장애인과 지역 주민 간 관계가 형성되고, 장애인은 지역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유럽의 사회적 농업 정책>(2022)

나사렛대학교 산학협력단,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농업>(2022)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작성했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