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중 피부에 특별히 뭐가 난 것도 없는데 피부가 가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더 하신데요, 이미 겨울이 지나긴 했지만 피부가 건조하면서 가려운 피부건조증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피부에 특별히 눈에 띄는 발진이 생기지는 않으면서 가려운데, 피부를 만져보면 건조한 느낌이 납니다. 미세한 비늘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피부 균열이 보이기도 해서 오래된 자기 그릇에 금이 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약간의 붉은 반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이 긁게 되므로 긁은 흔적 같은 것도 보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건조하고 가려운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상태는 오히려 너무 깔끔하신 어르신들에게서 발생하기 쉽습니다. 목욕이나 샤워를 뜨거운 물로 오래 하거나, 샤워를 너무
면내에서도 작은 마을인 시곡 마을이 부자 마을 소리를 듣게 된 연유가 있었다. 본래 빈촌인 산동면 여러 마을 중에서도 시곡은 더 살림살이가 째는 마을이었다. 산동면 전체가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 흑싸리 껍데기 같은 곳이었다. 소백산맥 줄기라도 이름 있는 산도 없어, 근동의 사람들도 나이 어린 축은 알지도 못하는 장지산이니, 깨금봉이니, 태장골이니 하는 3,4백 미터쯤 되는 산에 이름도 없이 앞산 뒷산으로 불리는 낮은 산들이 엎드린, 어찌 보면 무색무취한 충청도의 작은 고을인 것이다. 내세울 것 없는 동네가 그렇듯 맑은 공기나 깨끗한 물 정도가 억지로 끌어다대는 자랑이면 자랑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소, 돼지를 대규모로 키우고 골프장까지 들어서면서 동네 개울에는 아예 발도 담그지 못하게 되어 그나마도 허
방풍나물은 허균이 살던 시대로부터 4세기나 지난 후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21세기의 세상에서 비로소 그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길동전 외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작가로 허균이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지만 나는 그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맛 칼럼리스트라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라 불리는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속 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음식의 재료와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의 다양함은 물론이지만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곳곳에서 나는 지역 특산물을 잘 분류했으며 그 자료는 요즘 보아도 결코 녹녹하지 않은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을 통해 세상에 나온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가 강릉에서 먹었다는 방풍
"한 방만 더" 영화보다 더 비극적인 현실을 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무서운 시상을 살았노라”고, 내겐 고모부 되시는 분이 세칭 부역자였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부역자가족을 즉결처분하는데 그 어머니가 설맞아 죽지 않고 고통스런 신음소리와 함께 내뱉은 단말마.제주는 지금쯤 감자를 다 캐내고 다른 작물을 심느라 손이 분주할 것이다. '지슬' -땅의 열매, 제주도민의 삶과 한이 서린 감자는 오늘도 그들의 삶의 중요지점이다. 한해농사는 전쟁이 나도, 아비가 죽어도, 태풍우가 쳐도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하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 그 땅에서 은밀하게 속삭이며 싹을 틔우던 지슬은 오늘도 그 기억의 꼭지마다 싹을 틔운다.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부러지고
봄은 찬란합니다. 그 찬란한 봄을 노래한 수많은 노래가 있습니다. 그 중에 저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백설희씨의 옛 노래 ‘봄날은 간다’를 제일 좋아합니다. 지난겨울 뼈에 사무치는 찬바람을 맞을 때,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흥얼대면서 이겨냈습니다. 봄은 그 생각만으로도 설레지요. 그러나 막상 봄날은 그렇게 생기가 돋는 좋은 계절인 것만도 아닙니다. 봄이 되면 온 몸이 마냥 무겁고 나른하고 이유 없이 피곤하며 졸음이 자주 오는 춘곤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아 진료실을 찾는 분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춘곤증은 겨우내 움츠렸던 인체의 신진대사 기능이 봄철을 맞아 활발해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피로증세로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입니
성황당은 윗말과 아랫말을 나누는 산굽이를 돌아 서 있었는데, 그 옆으로 약수터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바위틈을 뚫고 나와 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 맛은 잡내 없이 시원하여 여전히 놓여있는 표주박으로 목을 축이곤 한다. 그 전에는 약수라는 소문이 있어 먼 데서도 물을 뜨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몇 년 전에 시에서 약수터 수질검사라는 것을 한 다음에 음용 부적합수 판정을 내린 다음부터는 그만 졸지에 약수터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옹달샘 정도로 전락한 곳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약수터가, 그러니까 어찌된 연유인지 몰라도 오염되어 부적합수가 되기 한참 전인, 19세기 말엽에 영험한 약효를 발휘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때는 역사에서 임오군란이라고 이름 붙인 난이 일어난 1882년이었다. 군란을 당한 민비가
몇 년 전 이맘 때 한 후배로부터 택배 상자 하나를 받은 적이 있다. 마흔이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만난 후배로 어릴 때처럼 짧은 시간에 친해지기 쉽지 않아 아직은 서먹한 때였다. 그날은 마침 동기들과 우리 집에서 한약재를 이용해 머리를 맑게 해주거나 소화를 돕는 향기주머니를 만들어보고 있던 차라 여럿이 같이 궁금해 하면서 상자를 열었는데 라면이나 담겼음직한 그 큰 상자에는 처음 본 나물이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선배님, 이 전호나물은 제 시댁인 울릉도에서만 나는 귀한 것이니 맛있게 요리해 드세요.’라고 적힌 쪽지 하나도 같이. 한꺼번에 생나물이 너무 많이 왔기에 그날 같이 일 하던 동기들과 나누고 헤어진 후 그 나물 맛이 궁금해진 나는 참지 못하고 바로 조리해 저녁상에 올렸다. 그리
과수원 뒤로 언덕 같은 산이 있어 심심찮게 장서방댁네가 아침부터 골을 울리는 소리를 내지른다. “꿩꿩 장서방./ 자네 집이 어덴가?/이 등 저 등 넘어서/ 솔배닥 밑이 우리 집일세/ 무얼 먹고 사는고 /꼬진다리 이밥에 눈꼽재기 조밥에 /그럭 저럭 사네.” 장서방은 장끼를 의인화해서 부르는 말이다. 꼬진다리 이밥이나 눈꼽재기 조밥 같은 말은 지금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런 모양새나 느낌을 가진 특정한 품종을 그리 표현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부르는 구전동요로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심심풀이로 부른다. 모 방송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에 자주등장하기도 했다. 이제는 나이 들어 모두 돌아가시니 제소리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일부유치원에서 전래동요
헛기침 몇 번에도 좀처럼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정선택이 양만득을 향해 부르는 듯한 손짓을 했다. 알아차린 양만득이 마치 하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들었던 술잔을 얼른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가 정선택 쪽으로 두어 걸음 다가가자, 정선택이 다시 손사래를 치며 말리는 시늉을 했다. “아니, 오라는 게 아니고, 자네가 동계장이니께 말머리를 잡아서 회를 이끌라는 거시여. 이리 중구난방으로 떠들기만 할 게 아니고.” 그제야 아래 위 상에서 티끌처럼 일던 발부리들이 시나브로 잠잠해졌다. 갑자기 일어선 양만득이 무슨 말을 꺼내야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정선택을 바라보았다. 겨우 입을 떼어서는, “아, 예. 지가 생각은 허고 있었는디유, 상이나 줌 물리구 헐까, 그랬쥬.” 했는데, 말이 떨어져 고물도 묻기
시골에 살면서 느끼는 재미중의 하나는 품앗이나 물물교환 비슷한 경제활동에 있는 것 같다. 하동에서 양조장을 하시는 분께서 장 담글 메주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작년 늦가을에 만들어둔 메주를 조금 나눠드렸더니 빚이라 생각하여 벼르고 계셨는지 어제는 섬진강 하구로 벚굴을 먹으러 오라는 특별한 초대를 해주셨다. 초대를 받고 가는 길에 만난 섬진강은 봄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했는데 성삼재를 넘어가기 전 까지는 볼 수 없었던 봄기운이 구례를 지나면서는 노란 산수유꽃으로 왔고, 하동이 가까워지자 막 터지기 시작하는 매화꽃망울들이 곧 먹게 될 벚굴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었다. 섬진강에서 벚굴은 설을 전후해서 채취하기 시작하지만 벚꽃이 한창인 3~4월이 가장 맛있는 때라고 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들 때 스스로를 달래거나 포기하는 심정을 나타내는 말 중에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농사도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아서인지 그런 말을 듣지 못한다. 아마 그런 식의 말들은 세상을 경영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아 낙향하는 관리들이 ‘귀거래사’를 쓰면서 농사짓기를 남은 생의 일로 받아들인 것으로 비롯하지 않았을까 싶다. 청구영언에 이런 시조가 있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 도곤 어려 왜라 / 이후엔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 이괄의 난을 평정한 장만이라는 사람이 쓴 시조다. 풍파나 구절양장이나 당쟁의 어지러움을 나타낸 것이고 그 속에서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고 있다.
노인들이 많이 찾는 우리 병원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질환 중에 한 가지가 바로 대상포진입니다. 대상(帶像)포진은 어렸을 때 수두를 앓고 난 사람에서 잠복해 있던 수두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 되면서 나타나는 질환으로 통증과 피부병변이 특징적입니다. 초기에 얼른 진단하여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큰 후유증 없이 말끔하게 낫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는 통증이 남아 길게는 몇 년을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피부에 특징적인 수포가 보이면 진단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피부 증상보다 통증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 특징으로 2~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통증이 지속되다가 발진이 시작됩니다. 일반적인 근육통보다는 피부의 특정 부위가 갑자기 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통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