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울릉도에서 날아온 선물, 전호나물

  • 입력 2013.03.22 09:02
  • 기자명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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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맘 때 한 후배로부터 택배 상자 하나를 받은 적이 있다. 마흔이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만난 후배로 어릴 때처럼 짧은 시간에 친해지기 쉽지 않아 아직은 서먹한 때였다.

그날은 마침 동기들과 우리 집에서 한약재를 이용해 머리를 맑게 해주거나 소화를 돕는 향기주머니를 만들어보고 있던 차라 여럿이 같이 궁금해 하면서 상자를 열었는데 라면이나 담겼음직한 그 큰 상자에는 처음 본 나물이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선배님, 이 전호나물은 제 시댁인 울릉도에서만 나는 귀한 것이니 맛있게 요리해 드세요.’라고 적힌 쪽지 하나도 같이. 한꺼번에 생나물이 너무 많이 왔기에 그날 같이 일 하던 동기들과 나누고 헤어진 후 그 나물 맛이 궁금해진 나는 참지 못하고 바로 조리해 저녁상에 올렸다.

그리고 그 진한 향과 맛에 놀라 잊지 못한 채 해마다 봄이 되면 먼 길도 마다않고 달려가 전호나물을 사다가 먹고서야 너무 짧아 늘 아쉬운 봄을 보낸다.

당근과 비슷한 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으며 산 속의 미나리라고 불리는 울릉도의 전호나물은 따뜻한 곳에 군락을 지어 살며 눈이 녹기 시작하는 2월이면 채취해 먹을 수 있다.

뿌리 근처의 줄기까지 채취해야 그 향과 맛이 더 진하므로 채취하는 순간부터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나물이다. 미나리과의 식물이라 그런지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과 특유의 향이 좋으니 깨끗하게 씻어 된장 양념에 생으로 무쳐 먹어도 좋고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같이 먹을 쌈으로도 그만이다. 

전호나물은 가래 등의 담을 없애고 기침을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는 뿌리약재의 잎과 줄기를 먹는 것으로 뿌리보다는 못하지만 뿌리에 준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맛은 쓰고 매우며 성질은 약간 차가우며 폐에 작용하는 전호는 주로 초기 감기에 기침이 잦고 가래가 많은 증상에 응용되며 폐열을 내리고 흉협부에 생긴 담으로 인한 답답함이나 거북한 속을 풀어 소화를 돕는 작용이 있으며 두통이나 노인의 야뇨증에도 이용된다. 

나는 서울에 가면 시간을 쪼개어 양재동에 있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들러 유통되고 있는 식재료들을 둘러보다 내려오는데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제도 습관처럼 그곳에 들렀다가 막 상자를 풀어 정리하고 있는 전호나물과 만났다. 얼마나 반갑든지 몇 단 사가지고 내려오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밥상에 올릴 생각을 하면서 마구 들떴고 몇 년 전 전호나물을 내게 보내준 후배 생각으로 잠시 마음이 훈훈해졌다.

다듬을 것도 별로 없이 깨끗한 전호나물을 손질해 살짝 데쳐서는 양념한 초고추장에 무치니 아직 산채 구경을 하기 힘든 산 속 우리 집 밥상에 봄을 올려놓은 것 같은 화사함이 입으로 들어온다.

잠시 전 어머니의 이웃 친구 분들이 놀러 오셨기에 전호나물 한 줌을 썰어놓고 밀가루를 풀어 전을 부쳐 대접해드렸다. 마당 한 쪽에서 막 움이 트고 있는 달래도 몇 뿌리 캐다가 다져 넣고 간장을 만들었더니 전호나물의 향과 달래간장의 향이 어울려 아주 맛나다고 무척 좋아들 하신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 덕분인지 봄볕 같은 이야기꽃도 같이 피어난다.  

하지만 전호나물의 향과 맛이 아무리 좋아도 전호는 우리 몸의 기를 아래로 내리는 작용이 있으므로 기나 혈이 부족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먹거나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는 것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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