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날이 추워진다 싶으니 노점이나 마트에 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군침은 도는데 신 걸 잘못사면 어쩌나 걱정도 됩니다. 귤은 언제 사먹어야 가장 맛있을까요?A: 바야흐로 감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감귤,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귤이라고 다 같은 귤은 아니랍니다. 10월부터 11월까지는 극조생귤,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조생귤이 나옵니다. 과일의 맛은 기본적으로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겠지만, 아무래도 출하 초기보단 뒤쪽에 나오는 게 더 잘 익었겠죠? 극조생은 10월 말 이후, 조생은 11월 말 이후에 구입하시면 당도가 좋을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농민소설가 최용탁님의 근대사 에세이를 1년에 걸쳐 매주 연재합니다. 갑오농민전쟁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대사를 톺아보며 민족해방과 노농투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일제는 1938년에 ‘간도특설대’라는 부대를 창설한다. 괴뢰국인 만주군에 속한 부대로 부대원의 다수가 조선인이었다. 이 부대의 목적은 만주 지역의 독립군, 특히 일제를 곤경에 빠뜨렸던 항일연군의 소탕이었다. 조선의 독립군은 조선인이 없앤다는 기치 아래 많은 친일군인들이 이 부대에서 활약했다. 소위 한국전쟁의 영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A: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할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어떤 나라가 선진국인지 개도국인지를 구별하는 기준은 특정 국제기구나 협의체의 결정이 아닌, 해당국가 스스로의 선언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사회의 인정 속에 자기선언이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스스로 개도국이라 선언한다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는 없겠죠.이처럼 스스로 지위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이유는 WTO에서 개발도상국가에게 특혜를 부여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은 누구일까. 어떤 의미로든 그 사람은 김일성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절반을 40년간 통치했고 아들과 손자로 이어져 지금껏 유례를 찾기 힘든 국가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김일성을 모르고는 우리 근대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김일성이 처음 대중적으로 등장한 것은 1937년 보천보 전투였다. 그 전부터 유격대를 이끌고 활동하던 김일성이 100여명의 부대로 두만강 근처 작은 마을 보천보를 습격했던 것이다. 독립운동이 지리멸렬하고 일제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독립군 부대가 국내로
어제 오후에 설악산 단풍이 오색 주전골까지 내려왔다기에 단풍구경을 갔다. 매년 보는 단풍이지만 금년에도 역시 고왔다. 파란 하늘, 기암괴석, 맑은 계곡의 물, 그리고 빨간 단풍나무가 일품이었다. 산천은 이렇게 아름답고 의구한데 그 아랫동네인 농촌은 황량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고속도로와 지방도로는 산 허리를 가로질러 볼품없이 허옇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고, 농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온갖 펜션과 호화 전원주택이 골짜기마다 용케도 자리 잡고 있다. 농막 하나 들여놓는 것도 쉽지 않던데 저런 거대한 건축물이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 참 대단하단
만주를 중심으로 항일 무장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1930년대에 유격대를 이끌던 몇몇 지도자들에게 민인들은 ‘장군’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유격대의 활약상을 풍문으로 들으며 언젠가 장군이 조국으로 쳐들어와 일제를 몰아낼 것이라는 염원이 담긴 호칭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속한 부대의 계급과 상관없이 실제로 유격대원들도 존경하는 지도자를 장군이라고 불렀다. 물론 아무렇게나 붙이는 칭호는 아니었다. 수많은 지도자 중에 그 영예로운 이름을 얻은 이는 많지 않다. 양세봉, 김무정, 최현, 김일성 등이 만주에서 장군으로 불린 이들이었는데
1930년대는 해외에서 일어나는 무장투쟁이 독립투쟁의 근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가 마냥 조용했던 건 아니다. 서울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조직과 투쟁에 나섰고 원산과 흥남 등의 공업지대에서도 각성된 노동자들이 강력한 대오를 형성하고 있었다. 30년대에 국내에서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킨 두 개의 조직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김일성 부대의 보천보 습격을 계기로 드러난 혜산사건, 혹은 조국광복회 사건이었고 그리고 다른 하나가 원산그룹 사건이었다.3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간
속초·양양 학교급식사업단 단장과 총무로부터 급히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겠다며 지금 낙산 카페에서 뵙자는 것이었다.사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나는 늘 새가슴이 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이 고민하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 가끔 만나곤 한다. 이럴 땐 꼭 양양시민사회통합위원회 이모 위원장님께도 연락을 드려 함께 만나곤 한다. 그분은 양양군 담당자들을 설득해 주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고마운 분이기 때문
A: 고구마 저장의 3대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온도·습도·환기입니다. 고구마 저장을 잘 하려면 앞선 조건이 유지되는 저장시설이 필요한 셈이죠.우선 저장에 가장 알맞은 온도는 12~15℃입니다. 고구마는 낮은 온도에 약하기 때문에 10℃ 이하의 조건에서 오래 방치될 경우 병균에 대한 저항성이 낮아져 썩기 쉽죠. 반대로 온도가 높으면 호흡이 왕성해져 싹이 트고 상품 가치가 떨어진답니다. 저온에 취약한 만큼 냉해에도 주의해야 되는데, 환경조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0℃에서 24시간, -15℃에서 3시간이 지나면 피해가 발생합니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오보는 1945년 12월 27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내용을 완전히 반대로 전하는, 오보를 넘어 의도적인 왜곡이 의심되는 기사를 내보낸다. 기사 제목인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은 해방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소위 찬탁과 반탁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라를 분단시키기에 이른다. 그와 비교될 정도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오보 하나가 큰 사회적 사건을 일으킨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만보산사건’이다.어찌 보면 언론에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자문: 농협중앙회 회원종합지원부]A: 농협중앙회의 무이자자금은 회원농협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고, 궁극적으로 농민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합니다. 물론 이번과 같이 태풍이나 가축질병 등으로 농민 피해가 발생한 경우도 지원합니다.농업협동조합법 134조에선 무이자자금을 조성·운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농협중앙회가 조성하는 무이자자금은 크게 두 가지로 조합상호지원자금과 이차보전자금입니다. 조합상호지원자금의 경우 농협중앙회와 회원농협이 공동으로 출연·조성합니다. 하지
1937년 4월 30일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는 호외를 발행한다. 한 인물의 검거 소식을 대서특필한 것인데 기사 제목은 ‘집요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궤멸되다’였다. 한 사람의 체포를 조선공산당의 궤멸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인물은 이재유였다. 사회주의 운동에 가혹한 탄압이 가해지던 30년대에 맹활약한 이재유를 빼놓고는 해방투쟁사의 커다란 구멍을 메울 길이 없다. 이재유는 누구였던가.1905년 함경북도 삼수에서 화전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재유는 고학을 위해 상경했다가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퇴학당하고
9월 말은 원래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를 수확하는 시기다. 지난해 영농일지를 꺼내보니 9월 21일 페이스북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올렸다. 3년만의 첫 수확이고 무농약 인증을 받은 것이라 자랑하며 문자나 댓글로 주문해 주십사하는 내용이었다.지인들과 제자들이 사줘 총생산량 500kg 중 상태가 괜찮은 것을 골라 200kg 정도 판매했었다. 1kg당 1만원씩 받았으니 총 200만원의 매출을 올렸었다. 적지만 내겐 큰 위로였다. 그래서 내년 4년차부터는 생산량도 톤 단위로 늘어날 것이고 매출액도 크게 오를 것으로 은근히 기대했었다.그러나 그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A.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닙니다. 즉, 인체감염이 없어 사람의 건강엔 무해합니다. 또, ASF 등 가축전염병에 걸린 가축은 전량 살처분·매몰처리됩니다. 도축장에선 검사관의 검사로 이상이 있는 돼지고기는 시중에 유통시키지 않고 있습니다.현재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ASF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방역기관과 한돈농가의 차단방역 수준은 타 아시아국가와 비교해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정부와 한돈농가가 ASF 방역행동요령을 철저히 준수하며 농가와 관련시설·차량 등을
1920년대 중반에 민족해방세력은 수많은 파벌로 갈라져 분열을 거듭했다. 크게 나누어서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였지만 그 안에서도 타협주의와 비타협주의, 통합파와 비통합파 등으로 분열되었고 크고 작은 단체들은 350여 개를 헤아렸다. 그 와중에 상해 임정이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외교중심론으로 인해 분열되면서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묶자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베이징에서 안창호, 원세훈 등이 민족유일당 운동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으나 그 배경은 훨씬 복잡했다. 우선 3.1운동 이후 민족주의 진영 내부에서 자치를 내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Q. 종종 기사로 LMO 유채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봤는데, LMO가 뭔가요? GMO와는 또 다른 건가요?A. LMO는 직역하자면 ‘살아있는 조작체(Living Modified Organism)’를 뜻합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선 LMO를 ‘현대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조합된 유전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생물체’라 규정합니다. 여기서 생물체란 ‘유전물질을 전달하거나 복제할 수 있는 모든 생물학적 존재(생식능력이 없는 유기체, 바이러스 및 바이로이드 포함)’를 뜻합니다.이 단어는 공식적으론 2000년 1월 체
독립투사들이 운명처럼 갈 수밖에 없던 곳이 식민지의 형무소였다. 이전의 조선은 실질적으로 감옥이 없는 나라였다. 죄를 지은 자들은 태형이나 노역형, 유배형에 처했을 뿐 감옥에 가두어 두는 징역형은 없었다. 사극에서 흔히 보는 감옥 장면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를 임시로 가두는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근대적인 징역형이 생기고 장기간 감옥에 갇혀 형벌을 받는 체계가 성립된 것이다. 이 낯선 감옥 풍경은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끔찍한 공간이었다. 일제는 전국에 총독부가 관할하는 22개의 형무소를 운
옥수수는 흰 수염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끝이 마르면 수확할 때가 다된 것을 의미한다. 농촌살이 첫해, 그러니까 2016년의 일이다. 봄에 옥수수를 파종하고 약 3개월이 지나 이제 수확을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다음날 아침 밭에 나갔는데 아뿔사 지난 밤에 멧돼지가 옥수수 밭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적이 있었다. 옥수수 대궁을 쓰러뜨리고 잘 익은 옥수수만을 용케도 골라 먹고 사라졌다. 전날 땄어야 하는 건데 하루 더 미루다 멧돼지에게 상납하고 말았으니 화도 나고 황당했던 기억이 새롭다. 멧돼지는 초겨울에도 지렁이를 먹으려고 사과밭을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마친 1918년 무렵 우리나라 총 경지면적은 500만 정보에 육박하였다. 불과 8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늘어난 농지가 농민들의 생활 향상으로 이어졌을까? 그렇지 않았다. 같은 기간 지주는 두 배로 늘어났고 특히 일본인 지주 9만명이 전체 토지의 37%를 소유하고 소작료를 받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전 민인의 80%가 농민이었으므로 농민들의 고통은 곧 모든 이의 고통이었다.새롭게 지주가 된 일본인들과 일제에 빌붙은 자들, 예를 들어 서울의 이완용, 공주의 김갑순, 광주의 현준호 등 지방마다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Q. 명절 때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선물 받거나 여유있게 구입하는 바람에 늘 고기가 남아요. 남은 고기를 신선하고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요?A. 냉동육은 색과 풍미가 변하고 해동 후에는 육즙이 손실되기 때문에 냉장육에 비해 맛과 식감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냉장육 상태에서 조리하는 것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하지만 당일 섭취가 불가능할 때는 냉장보관을 하고 빠른 시일 내에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요, 얇게 썰린 고기는 종이타월로 수분을 닦아내고 100g씩 나눠 밀봉하면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