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제40회] 김일성의 등장
[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제40회] 김일성의 등장
  • 최용탁 소설가
  • 승인 2019.10.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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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은 누구일까. 어떤 의미로든 그 사람은 김일성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절반을 40년간 통치했고 아들과 손자로 이어져 지금껏 유례를 찾기 힘든 국가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김일성을 모르고는 우리 근대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김일성이 처음 대중적으로 등장한 것은 1937년 보천보 전투였다. 그 전부터 유격대를 이끌고 활동하던 김일성이 100여명의 부대로 두만강 근처 작은 마을 보천보를 습격했던 것이다. 독립운동이 지리멸렬하고 일제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독립군 부대가 국내로 진격해 들어왔다는 소식은 온 겨레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동아일보는 호외를 찍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당시 유명했던 잡지 <삼천리>에서는 기자를 파견해 김일성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비록 직접 인터뷰는 불발되었지만 기자는 비교적 상세한 취재를 해서 김일성에 대한 긴 기사를 잡지에 실었다. 일제 말기에 전설적인 ‘김일성 장군’신화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동북항일연군 부대원들(앞줄 오른쪽 두번째가 김일성).

김일성은 1912년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이른 나이에 부모와 함께 만주로 이주하였다. 아버지 김형직은 기독교 신자로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강반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 모태 신앙을 가진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 외삼촌인 강진석 역시 목사였다. 집안 전체가 민족의식이 매우 강렬했다. 김형직은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에 속했고 삼촌인 김형권 역시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서른한 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기도 했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이고 아래로 철주와 영주 두 동생이 있었다. 김철주는 형을 따라 유격대 활동을 하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불과 스무 살에 전사하였다. 막내 김영주는 김일성 사후까지 북에서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1927년 그는 길림의 육문중학교에 입학하여 ‘조선공산주의자청년동맹'을 조직한다. 당시 그의 활동에 관한 최초의 일제 자료에는 그가 1929년 조선공산청년회라는 조직의 주요 인물이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1929년 가을 반일공산주의 활동 중 중국 군벌에 체포되어 수 개월간 감옥살이를 했고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그가 본격적인 반일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한 때는 1930년부터였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중국과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만주 각지에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서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는데, 그도 1932년 4월 25일 안도현에서 조선인 동료들과 함께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한다. 그가 속해 있던 간도 지역의 항일유격대가 확대, 발전하여 1934년 3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로 개편되자 그는 그해 가을부터 제3단 정치위원을 맡았다.

이후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1936년 7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6사 사장이 되었으며, 1936년 5월 항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위한 ‘조국광복회’의 결성을 주도했다.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반파쇼 인민전선론'이 채택되자 당시 만주에 있던 공산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인민전선론'이 대두됐다. 이들은 인민전선 이론에 기반하여 ‘전민족의 계급·성별·지위·당파·연령·종교 등의 차별을 불문하고 백의동포는 일치단결 궐기하여 일본놈들과 싸워 조국을 광복시킬 것’이라고 선언하며 조국광복회를 결성했다.

유격대 동료들(왼쪽이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
유격대 동료들(왼쪽이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

조국광복회 간부들은 대부분이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 간부들로 채워졌으며 김일성이 회장을 맡았다. 이들은 군사활동뿐 아니라 국내 정치활동에도 주력해 기관지 <3·1월간>을 발간하는 등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반일 성향을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자, 천도교도, 지주까지 참가시켰다. 조국광복회의 파생 조직은 원산과 함흥, 성진 등지까지 그 규모를 확대했으며, 그중 가장 활동이 활발했던 곳은 갑산공작위원회였다. 갑산공작위원회는 1937년에 항일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되어 기관지 <화전민>을 발행하는 한편, 지하 조직 건설, 군사시설 파괴, 군사수송 방해 등의 항일투쟁을 벌였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된 박달, 박금철 등이 주요 인물이었다. 김일성에 대해서는 해방정국을 다루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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