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해 11월 26일을 시작으로 약 나흘간 내린 기록적 폭설에 경기 남부의 시설 기반 농축산업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그 뒤로 한 달이 흘렀지만 워낙 거대한 피해규모에 아직도 복구는커녕 정리조차 되지 못한 현장이 부지기수다. 이에 지난해 12월 27일엔 화훼단지가 밀집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의 농민들이 추가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피해의 복구와 회생을 뒷받침할 기존의 안전망이 턱없이 허술하니, 이를 신속하게 확충하고 당장 적용해 달라는 요구였다.
용인에서는 지난 폭설로 공식 집계 상 약 360억원의 농림분야 피해가 발생했는데, 피해농가의 90%가 채소·화훼 등 시설 농가다. 특히 화훼농가가 밀집한 처인구 남사읍은 시설하우스 가운데 성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진 것이 많았다.
풍수해 손해평가 완료는 언제쯤
남사읍에서 화훼를 하는 여동규씨는 아직도 천장이 무너진 하우스를 철거하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 중 한 명이다. 지금은 당시 사고를 당한 호접난 중 형태가 온전한 일부를 겨우 거둬 수용능력이 남아 있는 주변 농가들의 하우스 곳곳에 뿔뿔이 흩어트린 채 관리하고 있다. 여씨는 “여기서 하우스를 지은 지 20년이 넘도록 이런 ‘떡눈’은 처음이었다. 눈을 보고 저녁부터 밤새 불을 뗐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라며 “직원들하고 목숨 걸고 들어가서 더 못 쳐지게 파이프를 대서 살아 남은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호접난은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도 불가능해 폐기하는 만큼 그대로 손실로 이어진다. 현재 화훼에서 가입이 가능한 작목은 장미·국화·백합·카네이션 4종뿐이다. 여씨는 “12월 말, 1월 초가 인사철이라 가장 출하가 많을 시기인데”라며 “냉해 입을 게 뻔해서 살려봤자 안 될 걸 아는데, 기르던 거라 못 버린다”라고 허탈해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뒤늦게나마 완료되고 철거비·재난지원금 등의 지원이 시작됐지만, 여씨는 농가들의 영농 재개와 시설복구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풍수해보험의 손해사정인들을 만나 본 농민들은 시설 전체를 못 쓰게 돼 철거가 불가피한 지경에도 눈으로 보이는 피해의 정도만을 기준 삼은 ‘최소한의 보상’이 결정되는 건 아닐까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는 둘째 치고 조사와 산정이 언제쯤 완료될 거란 기약조차 없어 향후 계획을 세우기가 난감하다. 또 한 번 이런 일을 겪은 만큼 어떠한 ‘정책적인 보장’ 없이 하우스를 똑같이 다시 짓는 것 역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여씨는 “보험금이 결정 나기 전에 그냥 다시 지을 생각이다. 나는 그래도 50대 후반이라 다시 짓지만, 60대·70대이신 형님들은 그 결정이 쉽지 않다”라며 “지금 하우스들이 정부 규격(내재해형)을 지켜서 지었는데도 무너졌고 앞으로 10년, 20년 뒤를 생각하면 당장 강화해야 하지 않나”라며 답답해했다.
박승동 남사 폭설피해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보험 관련해 불안해하는 농민들이 많다. 농협에서 손해사정인이 와서 평가를 하는데 연동하우스의 일부가 살아 남아있으니 이것은 뜯어서 다시 쓰라고 하고, 그러니 지금껏 뜯지도 못하고 있는 하우스들이 있는 것”이라며 “또 재난을 대비해 농민 스스로 파이프 등의 자재를 더 좋은 것을 써서 새로 짓더라도 보상은 기준단가로 나오는 점도 불합리하다”라고 말했다. 남사의 농민들은 이외에도 영농이 정상궤도에 오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화훼업의 특성을 고려해 경영비를 지원하고 저금리 대출을 지원해 달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는 일단 지난해 12월 31일 경영자금·시설자금을 합쳐 총 200억원 규모의 1% 저리 융자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종계, 살았어도 사실상 전량 폐사”
이번 폭설은 축산업계에도 많은 피해를 남겼는데, 마찬가지로 비닐하우스를 주로 사용하는 가금류 농장의 피해가 컸다. 이 가운데 밀집도가 대단히 높으면서도 사육기간이 상당한 종계농장들은 시설 피해가 사실상 전량 폐사로 이어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예용 하우스와 달리 당장 가용할 자금이 없는 경우 철거도 어려워 가축재해보험의 피해산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화성 양감면에서 어머니와 함께 종계 1만4000여수를 기르던 한승화씨는 비닐하우스 축사 3동이 무너졌다. 이제 막 지출한 2억3000만원에 달하는 종계 입식 비용 전부가 그대로 빚으로 남았는데, 더 큰 문제는 아직 농장을 치우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죽은 닭과 아직 살아있는 닭이 축사의 옆면을 따라 그물에 갇힌 채 뒤엉켜 있는 모습은 참혹하다 못해 끔찍했다. 인기척이 들리자 축사 안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닭들이 부리로 철문을 쪼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씨는 “생활비 조금만 가지고 시작하던 농장이 이렇게 돼버리니까 당장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했다. 천장만 무너진 한 동과 달리 나머지 두 동은 옆으로도 쓰러지면서 닭들이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영농이 멈췄음에도 아직 철거조차 못하고 있는 건 대가축과 달리 통제가 어려운 닭을 아직 다수가 살아 있는 상태로 둔 채 시설을 철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거에 수반되는 비용은 닭들을 모으고 옮길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도 렌더링(사체처리) 비용만 3500만원의 견적이 나왔다. 당장 사체를 처리할 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한씨는 급한 대로 축사 주변을 그물로 두르고 매일 현장에 머물며 이탈하는 닭을 잡아내며 버티고 있다.
한씨는 “이런 식으로 축사가 무너져서 애들이 사료와 물을 전혀 못먹고 외부에 노출되면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봐야 맞다”라며 “보험사 손해사정인이 와서 드론 띄워서 전부 사진을 찍어가긴 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없다. 하다못해 ‘얼마쯤 나옵니다’, ‘전손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라고 얘기해주면 그 액수만큼은 나온다는 보장이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급전을 마련하려고 할 텐데 아무런 얘기가 없어 진행이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행 가축재해보험은 가금류에 대해 원칙적으로 풍수해 사고 발생일로부터 5일 이내 폐사한 경우에만 보상하도록 약관에 명시돼 있다. 5일이 지난 뒤 발생한 폐사에 대한 보상은 보험회사 재량의 영역이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닭이 워낙 작은 동물이다 보니 축사가 무너져도 압사해서 죽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이 겨울철 저온에 노출되면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사육기반이 무너졌는데 살아있다 해서 다른 데서 키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육계와 달리 64주를 길러야 하는 종계산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보험은 일률적으로 적용하다보니 피해의 정리가 늦고, 농가들의 어려움이 많다”라고 전했다.
예나 지금이나, 축사 내재해성 확보는 농가 몫
경기도 화성시에서 150두 가량의 젖소를 돌보는 A씨 가족은 지난 폭설로 우사의 절반 이상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다. 소들이 비좁게나마 머물 공간이 남은 건 그나마 위안이다. 소들이 500평도 안 되는 공간에 몰려 지내며 착유량이 15% 넘게 줄어드는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무너진 잔해와 폐기물을 정리하는 작업을 이제야 마치고 이제 새 축사의 기둥을 박아 넣기 위한 준비과정이 한창이다. 깨끗하게 정리된 축사 부지 바닥에는 기존 축사의 파이프 기둥이 박혀있었던 흔적만 남았다. 본래의 축사는 지은 지 불과 7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 축사가 눈에 무너질 거란 상상 자체를 할 수 없었다는 A씨의 아버지는 “업자가 짓는 방식대로 두긴 했는데 누가 이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겠나. 기존 축사 파이프 두께가 2T도 안 됐다. 축사를 20년 동안 지었다니까 어련히 잘 지을까, 했지”라며 당시를 회상하고, “(낙농이 지금) 조사료값이니, 관세 철폐니 벌어도 시원찮은 판에 4억원을 하루아침에 해 먹었다”라고 한탄했다.
공사 시작 소식에 A씨 가족을 찾아온 한 후계농은 이 농장처럼 무허가축사 양성화가 진행된 2010년대 말 무렵 지어진 농장들의 상당수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주변 농지가 원래 3000평에 2억5000만원 수준이었는데, 당시 싸게 나왔다는 가격이 평당 27만원, 28만원까지 올랐다. 여기도 아들이 후계를 한다니 아저씨가 무리를 해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땅을 사야 했는데 그 돈에 들어와서 축사를 지으려니 돈이 어디 있나”라며 “너무나 빠른 속도의 연속적 규제로 농장주들이 무리한 투자를 하게 되고, 그게 자연스레 부실공사로 이어졌단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일로 가족 중 한 명은 얼마 전 화병으로 쓰러졌다. 그래도 남은 가족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차분하게 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A씨는 “이전까지 굉장히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사실은 너무나 평화롭고 소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시청이나 주변 농민들도 너무 고마웠다”라며 “우리야 남은 걱정은 이제 축사를 짓는 것뿐인데 시설하우스 같은 곳은 피해가 이제 시작이니 어찌할까 싶다”라고 오히려 주변을 걱정하기도 했다.
A씨 가족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농장들도 무너진 사례가 수두룩하게 확인된 만큼 할 수 있는 최대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 같은 형태로 축사를 다시 짓되, 트라스(상판지지 구조물)와 기둥의 두께를 더욱 두텁게 하고 그 수도 대폭 늘릴 작정이다. 공사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마침 작업인력의 간식거리를 챙겨주려 방문했던 동료 농민들은 자재를 확인하고는 ‘예전 같았으면 정신 나간 놈이라는 소리를 했을, 말도 안 되는 두께’라며 혀를 찼다.
정부와 기관에서 검증한 ‘표준설계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스스로 공을 들여 내재해성을 꾀한 이유를 물으니 “비용적으로 현실성이 없다”고들 단언한다. 이번 사태 이후 정부는 폭설 피해 축산분야 대책의 하나로 인허가 간소화를 들며 ‘신·재축 시 축사표준설계도를 활용하면 건축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절차를 완료하도록 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A씨와 동료들은 이를 활용할 농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A씨는 “간소화 절차가 나왔다고 해서 보니 표준설계도를 따르라는 내용이 있는데 비용적인 측면에서 전혀 현실성이 없다”라며 “이를 그대로 따르면 우리 농장을 기준으로는 토지 비용까지 합해 (투자 규모가) 총 5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라며 “지으면서 농장이 망할 수준인데 신규 진입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