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의 주범 된 사괏값, 배후엔 ‘유통’ 장난질?

물량 감소 사실이나 가격 인상 폭 ‘커도 너무 커’
최근 거래 물량 대부분 한참 전 농민 손 떠나
농민들 “생산 안정 노력 필요, 시장 흐리진 말아야”

  • 입력 2024.03.22 09:00
  • 수정 2024.03.22 09:1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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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9일 경북 청송군 부남면 일원에서 농민 심상국씨가 사과 과수원 전정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경북 청송군 부남면 일원에서 농민 심상국씨가 사과 과수원 전정 작업을 하고 있다.

 

사괏값에 대한 온 국민적 관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사괏값 상승의 원인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높아지고 있다. 이상기후와 재해로 인한 생산량 급감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히나, 복잡한 유통구조와 이 과정서 따라붙는 마진에 대한 의문도 커지는 추세다. 또 줄어든 물량 대비 인상 폭이 너무 크다는 지적과 함께 경매에 국한된 거래제도의 다양화 필요성 또한 확산되고 있다.

사과 한 알이 1만원에 판매된다는 보도와 더불어 10kg 사과 한 박스의 경매가격이 사상 유례없이 9만원을 넘었다는 자극적인 소식 등이 쉴 새 없이 전해지며 사과는 어느새 값비싼 농산물의 대표 격으로 자리 잡았다. 특정 농산물 가격에 치중한 언론의 집중포화와 이에 장단 맞춰 정부가 쏟아내는 물가대책이 사괏값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오늘날 사괏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원인이 생산 불안정성인 만큼 농민들은 한목소리로 안정적인 생산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 필요성을 강조 중이나, 농민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언론의 관심과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손쉬운 수입과 유통업체 지원, 할인 품목·규모 확대에 치중돼 있는 실정이다.

 

생산량, 과연 얼마나 줄었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2023년 사과 생산량은 전년 대비 25%, 평년 대비 16% 감소한 42만5000톤 내외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거래된 물량의 감소 폭은 이보다 크다. 사과가 본격 출하되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8일까지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된 전체 사과 물량은 총 1만2483톤이다. 2022년부터 지난해 3월 18일까지 같은 기간 거래된 물량 1만8220톤 대비 약 31.5% 줄어든 셈이다.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8일까지 강서시장 경매제에서 거래된 물량은 총 3077톤으로 전년 4417톤보다 약 30.4% 감소했다. 시장도매인제에서도 같은 기간 거래된 물량이 6227톤과 4380톤으로 약 29.7% 줄었다.

 

진폭 큰 가격 인상, 원인은?

도매시장 거래방식인 경매제도의 특성상 공급량 부족은 자연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민들은 줄어든 물량을 감안하더라도 가격 인상 폭이 극심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전체 도매시장 사과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안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는 생산량 감소 및 수도권 도매시장 내 거래물량 감소 추세와 달리 거래물량이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농민들은 해당 현상이 오늘날 사괏값 인상의 배경에 생산량 부족 이외의 요소가 있다는 걸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8일까지 안동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사과 물량은 약 8만8836톤으로 전년 동기 8만6812톤 대비 약 2.3% 증가했다. 물량이 늘었지만, 가락·강서시장과 마찬가지로 거래가격은 큰 폭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8일까지의 사과 거래금액은 총 3857억2826만8030원으로, 전년 동기 1834억2264만6700원 대비 110%p 오른 셈이다.

이에 농민들은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생산량이 25~30% 줄었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양 또한 그 정도 줄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라며 “생산량 감소 소식에 중도매인 등 유통업체의 물건 확보 경쟁이 치열해졌고, 물건을 선점한 유통업체 등이 가격이 더 오를 것을 전망해 이미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음에도 시장서 사과를 지속적으로 사들여 가격을 올린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농민들은 “안동 시장에서 물건을 확보한 유통업체가 가락시장 등에 사과를 다시 내며 마진이 더 붙은 영향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확인 작업과 함께 도매단계에서 소매단계로 넘어가는 사과의 물량과 가격을 정부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농민들 “적정가격 원해”

경북 의성의 한 농민은 “대다수 농민들은 적정가격을 보장받고 싶을 뿐 지나친 가격 폭등을 바라지 않는다. 가격이 비싸다는 건 다른 농가가 농사에 실패했다는 의미인 만큼 농가의 실패를 전제로 한 가격 폭등을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라며 “급증한 사괏값으로 농민들 주머니만 채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까 우려되는데, 이미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과는 농민 손을 떠난 지 오래고 당시 농민들이 거래할 때만 하더라도 사괏값이 이 정도로 비싸진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또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뿐더러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상황이 아닌 만큼 이때다 싶어 가격을 올리는 등 시장을 흐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당 농민에 따르면 수확 직후 무렵인 10월부터 지난 1~2월까지 농민들의 손을 떠난 사과는 20kg 기준 10~12만원 선에 거래됐다. 평년 대비 20%가량 높은 수준이지만, 생산량이 50% 가까이 감소한 농가가 적지 않고, 재해 영향으로 추가된 농약대 등 증가한 생산비까지 고려한다면 농가 소득은 현상 유지 혹은 마이너스인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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